진보진영이 진보하기 위해 버려야 할 3가지

[진보진영 이대로는 안된다]무능력함, 분열주의, 낡은 운동 방식에 국민 외면

2013-01-26 09:22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여대생 이지민(가명·25)씨는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다. 평소 사회적기업 쪽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안 후보가 기업인 출신임에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모습에 매료됐다고 한다.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가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나라 정치가 더 깨끗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다.

사실 이씨는 원래부터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보정당과 진보적 학생운동에 대한 반감이 컸다.

“대학에서 진보적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진보세력에 대한 편견이 더 생겼어요. 학생회는 우리를 대표해 일하지 않고 정당에 치우친 활동에만 전념하는 게 싫었어요. 우리가 뽑은 대표가 우리가 원하는 학내 복지에 관심이 없고 온갖 이명박 정부 비판, ‘MB아웃’만 외치는 데 정신이 없더라고요”

정치적인 구호와 정권 비판에만 혈안이 돼 있는 진보정당과 진보세력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 국민 행복을 위해 일해 줄 것 같은 안 후보를 지지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경기도 김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호철(가명·31)씨도 원래는 통합진보당을 지지했지만 지난 대선에선 안철수 후보 쪽에 기대를 걸었다. 기성 보수·민주 정당 기반에서 탈피한 안 후보가 새롭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서였다.

김씨가 진보정당에서 돌아선 이유는 지난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를 비롯해 북한의 정권 세습에 대한 통진당의 ‘침묵’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저 역시 헌법에도 나와 있는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존중하지만 북한 정권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비판할 땐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통진당은 3대 권력세습에 전혀 비판을 하지 않아서 싫어지더라고요”

2030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세대가 지금의 진보정당들을 지지하게 될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 이들에게 진보는 더 이상 새롭지도, 깨끗하지도, 피부에와 닿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능한 진보, 국민의 믿음 저버린 지 오래”

지난 대선 결과를 두고도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진보가 뼈를 깎는 쇄신과 자기반성이 없다면 다음 어떤 선거에서도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전준범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은 진보진영의 이번 대선 행보를 두고 “2008년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 당권을 장악한 세력은 반MB 야권연대를 내세우며 무능한 민주세력의 뒤를 쫓았다”며 “통합진보당은 반MB 야권연대에 헌신하기 위해 민주당보다 더 과격하고 원색적인 MB 비난을 자신의 역할로 상정한 듯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진보세력은 민중운동 전반의 우경화와 분열을 극복하는데 기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안적 이념, 사회적 영향력 측면에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전 위원은 또 “민중운동이 자신의 핵심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투쟁을 전개하기보다는, 야권이 설정한 의제를 중심으로 한 집회에 대중조직을 동원하는 행태가 반복됐다”며 “민주노총은 아무런 대선방침도, 투쟁계획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11월 28일 발표한 대선 시기 ‘민주노총 조합원 3대 대중운동 지침’은 △반드시 투표하기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투표참여 보장 운동 △좋은 영화보기, 투표참여 SNS 전파 운동이 고작이었다.

또다른 분석도 있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도 “통진당의 이정희와 진보정의당의 심상정은 의미 있는 지지율을 기록하지도 못했고,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내세우며 막판 후보 사퇴까지 했음에도 야권 후보가 패배하여 애초 의도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질책했다.

배 교수는 “과거의 ‘비판적 지지세력’이 이번에는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이라는 대중적 지지가 허약한 개량화된 정당으로 변질돼 나타나 노동자계급을 배신하고 야권연대의 틀에 스스로를 가둬버렸다”고 분석했다.

분열하는 진보, 패권과 독선이 불러온 비극

지난해 4.11 총선 이후 원내 제3 정당이 된 통합진보당에 겹친 악재 역시 국민들로 하여금 진보정당에 등을 돌리게 했다. 지난 총선, 야권 단일 후보 선출 과정에서 제기된 부정 경선 의혹을 시작으로, 총선이 끝난 2012년 4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자 선출 과정에서도 부정 경선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확산됐다. 결국 통진당 내부 갈등은 ‘머리끄덩이녀’로 상징되는 최악의 폭력사태로까지 이르게 됐다.

얼마 뒤 민주노총에서는 통진당과 결별을 선언했고, 옛 국민참여당 출신 통합진보당원 3000여 명이 집단 탈당하는 등 진보진영은 반목과 분열을 거듭했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의 난립 또한 진보진영의 분열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박은지 진보신당 대변인은 진보신당 내에서도 김순자 후보와 김소연 후보로 갈려 출마한 것에 대해 “안타깝고 부끄러웠다”고 털어놨다. 

지난 4.11 총선에서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을 받았던 청소노동자 김순자 후보의 경우 애초 당 후보가 없고 독자 선거를 하지 않는다는 진보신당 방침에 불복해 진보신당을 탈당한 후 무소속으로 대선 후보에 출마했다. 또 다른 정파인 ‘노동자대통령후보선출위원회’는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 출신인 김소연 후보를 내세워 후보등록을 마쳤다.

이에 대해 박은지 대변인은 “김소연 선본의 경우에도 득표를 위한 출마는 아니었고 결국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며 “양 후보 모두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독자 출마의 의사가 명확했으며 정치공학적 계산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진보’의 결과는 너무나 초라했다. 국민들은 김소연 후보에게 0.1%(16,687표), 김순자 후보에겐 0.2%(46,017표)의 지지를 보내는 데 그쳤다.

“진보는 20여 년간 단 한 번도 스스로 혁신하지 못했다”

기존의 낡은 운동 방식을 고집하는 관성적인 나태함도 진보진영의 뿌리 깊은 고질병이다. 가장 참신해야 할 학생운동 진영에서조차 아직 낡은 운동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부산의 모 대학 총학생회 선거 과정에서는 투표함을 바꿔치기하는 조직적 선거 부정 사실이 드러나는 등 매년 각 대학 운동권에서 크고 작은 부정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학생회 경력을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학생운동이 향후 사회진출을 위한 스펙 쌓기 수단으로 변질된 측면도 ‘악습의 재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청년유니온에서부터 시작해 최근엔 노년유니온 운동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 다양한 진보운동을 펼치고 있는 조성주 경제민주화2030연대 공동대표는 “진보진영은 낡은 운동 관성에 사로잡혀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스스로 혁신하지 못했다”며 “청년진보운동 측면에서 보면 80년대 이후 조직논리, 활동방식, 이념까지 전부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진보가 버려야 할 대표적인 낡은 운동 관성으로 △고질적 정파구조 △대중을 설득하기보다 자기가 옳다고 강변하는 80년대식 태도 △다음 세대를 육성하지 않고 늘 자기 조직만 지키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 진보는 젊은 진보 세대를 키우는 노력에 소홀했다”며 “2030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실질적으로 현실에 맞는 새로운 진보운동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 대표가 활동하는 경제민주화2030연대는 지난해 9월 청년들의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 생활안전망 확보 등 젊은 세대들이 당면한 실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뭉쳤다.

미미한 진보의 밑바닥은 어디까지 일 것인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지난 11일 한 라디오 대담에 출연해 진보정당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이 다시 합친다거나 봉합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는다”며 “새로운 질의 진보정당이 나타나야 하고 이 두 당 이외에도 여러 진보 신당 및 세력과 기득권과 폐단, 악습을 버리고 제2창당 수준으로 새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표가 말하는 모든 진보진영을 포괄하는 제2창당에는 정치적 걸림돌뿐만 아니라 감정적 골도 커서 어느 한 정당이나 세력의 의지만 가지고는 힘들다는 지적도 따른다.

이정미 진보정의당 대변인이 “진보의 연대를 위해 진보진영의 여러 세력과 폭넓게 만나가겠다”고 밝히 데에 반해, 박은지 진보신당 대변인은 “원래 같이 있던 사람들이 헤어지면 더 미워한다”며 “당 결정을 따르지 않고 탈당한 사람들에 대한 당원들의 감정은 여전히 민감하다”고 털어놨다.

민병렬 통합진보당 대변인도 “진보 정치의 출발이 노동 중심, 서민 중심 정치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했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신뢰가 무너졌다”며 “당분간 통합 논의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18대 대선 이후 진보진영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못해 안쓰러울 정도다. 앞으로도 진보는 어디까지 추락해갈 것인가. 2013년 1월 추락하는 진보는 저 아래 밑바닥에 아직 닿지 못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