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을 출입했던 이형섭 한겨레 기자가 삼성으로 이직한다. 이 기자의 삼성행에 대해 한겨레 내부에서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과거 출입처로의 이직이라는 점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1년 가량 삼성을 출입하다가 지난 4월부터 한겨레 토요판 팀장을 맡았던 이 기자는 다음 달부터 삼성으로 출근할 예정이다. 그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일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자는 14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홍보팀으로 갈 가능성이 높지만 업무 파악도 해야 하고 교육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부서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삼성으로부터 먼저 이직 제안을 받았고, 이 제안을 받은 기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기자가 최근에 쓴 삼성 기사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나온 5월 26일자 <이병철-이건희-이재용 삼성의 굴곡사>다. 이 기자는 이 기사에서 이건희 회장 체제에 대해 “이 회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삼성그룹이 연매출 300조원이 훌쩍 넘는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는 시기 삼성을 이끌었다는 공로는 부인할 수 없다”면서 “이건희 회장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역시 1993년의 이른바 ‘신경영 선언’ 이후”라고 평가했다.

이 기자는 또한 “이와 동시에 삼성은 차차 ‘삼성공화국’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고, 그 그늘도 짙어졌다”면서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과 김용철 변호사 비자금 폭로 사건, 무노조 원칙, 삼성 백혈병 문제 등을 언급했다.

   
 
 

이 기자의 삼성 이직에 대해 한겨레 내부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겨레 한 기자는 “삼성을 출입했던 기자가 얼마 되지 않아 이직하는 건 기자윤리에 위반된다며 성명서를 내려는 기자들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나이가 40대 중반인 이 기자가 조직 내 자기발전 가능성을 고민하던 중 삼성으로부터 이직제안을 받았고, 이를 거절하다가 받아들인 것인 상황을 고려하면 기자윤리의 문제로 이 기자를 탓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한겨레 기자들이 출입처로의 이직에 대해 무감각하게 넘어가지 않고 원칙에 대한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서 “정치권이나 출입처로의 이직 문제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개인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기자는 언론의 사회적 책무를 지키기 위한 개인의 도덕적 실천이 중요한 직업이고, 한겨레 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지켜야 할 기자 윤리가 있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 출입처로 직업과 직장을 옮기는 일이 기자 윤리의 어떤 부분에 어긋나고, 어떻게 경계해야 할지에 대한 세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삼성 홍보팀의 주요 업무는 대 언론 관리이며, 우호적인 기사를 만들어내고 불편한 기사를 희석시키는 역할을 하는 게 사실인데, 현직 기자가 이런 수단으로 동원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형섭 기자는 안팎의 문제제기에 대해 “내가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자들의 삼성 이직은 드문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이준 TV조선 보도본부 부본부장과 백수현 SBS 보도본부 부국장, 서울신문·YTN·문화일보 등을 거친 백수하 MS 상무를 영입했다. 과거에도 이인용 MBC 보도국 부국장, 박천호 한국일보 기자, 박효상 한겨레 기자, 이수형 동아일보 기자 등이 삼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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