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유죄 판결한 법원이 반성하라? 중앙의 어이없는 주장

조선·동아 “원세훈, 권력의 하수인…맹목적 충성” 중앙만 “정권따라 판결번복”…“오히려 중앙이 반성해야” 비판

2017-08-31 15:48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 댓글 대선개입 사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 파기환송 법원에 대해 중앙일보만이 “정권 따라 오락가락한 법원이 반성하라”고 비판하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중앙과 달리 동아일보는 원세훈 전 원장을 권력의 하수인이라 혹평했으며, 조선일보 논설위원도 칼럼에서 맹목적으로 충성한 것이 이런 사태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반성할 사람은 법원이 아니라 조작하고 누락한 녹취록을 제출했던 지난 정권이며, 시비거는 중앙일보가 반성할 일이 아닌지 되돌아보라고 반박했다.

동아일보는 31일자 사설 ‘‘장기간 조직적 대선 개입’ 有罪 원세훈 前국정원장’에서 국정원 심리전단이 매일 팀별로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올린 사이버 활동을 ‘명백한 선거운동’이라고 밝힌 재판부 판단에 대해 “원 전 원장의 탈법적인 정치·선거 관여 행태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대단히 충격적”이라고 평가했다. 동아는 “(원 전 원장이) 국내 정치 및 선거 관련 이슈에 친(親)정부 성향의 댓글을 달고, 정부 비판 글은 ‘종북 세력의 국정 방해’로 몰아세웠다”고 썼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동아는 원 전 원장이 직원들에게는 “쓸데없이 말하는 놈은 한 대씩 먹여버려라”, “언론이 잘못할 때마다 쥐어 패는 게 정보기관” “인터넷 자체를 청소한다는 자세로 종북좌파 세력을 끌어내야 한다” 같은 지시를 수시로 내려보냈다고 전했다.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서거 책임은 좌파에 있다는 것을 알리라”고까지 했다고 동아는 썼다. 동아는 “‘대북 정보 수집’이란 본업은 제쳐놓고 정치에 개입하고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친 원세훈 국정원의 악습은 다시 되풀이돼선 안 된다”며 “정보기관의 장(長)이 ‘권력의 하수인’이 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계일보도 같은 날 사설 ‘원세훈 중형 선고, ‘국정원 일탈’ 단절하는 계기 돼야’에서 원 전 원장의 형량이 항소심 때보다 무거운 4년형이 내려진 것에 대해 “법원이 국정원의 일탈행위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해석된다”고 썼다. 이 신문은 재판부가 증거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여론 왜곡 위험성을 높이고 국가기관의 정치 중립과 선거 불개입을 신뢰한 국민에게 충격을 안기는 정당하지 못한 처사’라고 꾸짖은 것에 대해 “백번 옳은 지적”이라고 평가했다. 언론이 잘못할 때 쥐어패는 게 정보기관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을 두고 세계는 “언론과 여론에 대한 삐뚤어진 인식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 30일 오후 징역 4년을 선고받으며 법정구속된 원세훈 (오른쪽) 전 국정원장과 판결 전에 법원에 출두하면서 지지자로부터 거수경례를 받을 때의 원 전 원장(왼쪽). 사진=연합뉴스

▲ 동아일보 2017년 8월31일자 사설
이 신문은 현 정부에 대해 “원 전 원장에 대한 유죄 선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정원의 어두운 과거를 끊어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까지 쓰진 않았지만 논설위원의 실명 칼럼인 ‘만물상’에서 원 전 원장을 비판했다. 최원규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만물상 칼럼 ‘원세훈’에서 원 전 원장이 촛불정국에서 국정원장으로 발탁된 배경을 두고 “그를 국정원장에 발탁한 건 충성심을 샀기 때문이라는 풍문이 돌았다”며 “정보기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가 수장으로 있는 동안 국정원에는 별일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2010년 국정원 직원들이 리비아에서 북한 정보를 수집하다 적발돼 외교 관계 단절 직전까지 간 일 △1년 뒤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사절단이 묵고 있는 호텔에 잠입했다 들통난 일 △다시 1년 뒤 직원이 진보 단체 회원을 미행하다 들켜 공중전화 부스에 감금되는 코미디 같은 일 등을 들었다.

최 위원은 “정보기관 수장의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은 독(毒)이 되기 십상”이라며 “2012년 대선 직전 터진 ‘국정원 댓글 사건’도 그게 원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위원은 “대통령이 국정원장 하라고 했을 때 그가 ‘내가 맡을 수 있는 자리인가’ 한 번만 더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며 “그는 행정에 뛰어난 공무원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권력의 단맛과 맹목적 충성심이 죄”라고 지적했다.

정치사회적 현안이나 사건에 있어 이른바 ‘조중동’의 논조가 종종 판박이처럼 유사했던 것과 달리 이 사건의 경우 중앙일보만 다른 주장을 펼쳤다. 원 전 원장을 비판하기 보다 되레 사법부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희한한’ 사설을 내놨다.

중앙일보는 사설 ‘정권마다 널 뛴 원세훈 재판…국정원 선거개입 끊는 계기 돼야’에서 “4년간 끌어온 이 재판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 과연 우리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공정한 판결만을 지향하는 곳인지에 대한 깊은 회의와 고민을 던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썼다.

▲ 조선일보 2017년 8월31일자 30면
이 신문은 이번 재판이 1심부터 파기환송심까지 네 번의 재판 동안 심급마다 판단이 바뀐 점을 문제 삼았다. 중앙은 원 전 원장의 선거개입 혐의에 대해 1심에선 무죄, 2심에선 유죄로 인정하고 법정구속한 점, 항소심(2심)이 선거개입 유죄의 증거로 인정됐던 한 트위터 계정의 증거능력에 대해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고, 파기환송한 점 등을 언급한 뒤 이번에는 “다른 증거를 강화해 유죄를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이 과정에서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는 댓글 사건 관련 각종 자료들을 공개하며 사법부를 압박하는 듯한 분위기도 연출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 “이런 사건일수록 법원이 중심을 잡는 모습을 보여 사법부의 신뢰를 재확인시켜 주기를 국민은 기대했다”며 “그러나 법원의 재판마저 정권에 따라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실망감을 주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이를 계기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뼈를 깎는 각성의 시간을 갖기 바란다”고 중앙은 주문했다.

하지만 정권에 따라 심하게 흔들렸다는 중앙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두고 1심과 2심 대법원까지 오락가락했지만 어디까지나 박근혜 정부 때였다. 항소심에서 원 전 원장이 선거법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구속된 것도 2015년이었다.

검사출신 국회의원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 같은 중앙일보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백 의원은 3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판사들이 헌법과 양심을 통해 내린 판결”이라며 “새로운 증거가 제출됐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 유죄판결을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밝혔다. 백 의원은 녹취록 원본, SNS 장악보고서를 보고, 상식과 양심을 갖고 있는 판사라면 선거법 위반이 명백히 성립된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증거가 사전에 제출됐다면 대법원 역시 유죄 판결을 했을 것이라고 백 의원은 전했다.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자료 공개를 통해 사법부를 압박했다는 중앙의 주장에 대해 백 의원은 “그건 정치적 의견표명이었다”며 “어차피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였고, 우리도 언론에 보도된 것을 정리해 의사표현한 것인데, 이 정도의 목소리도 못내느냐”고 반문했다. 중앙의 주장이 지나치다는 게 백 의원의 지적이다. 그는 오히려 그 전에 제출된 녹취록의 경우 문제된 부분이 삭제 누락되고, 조작 수준에 가까웠다는 점이 더 문제였다며 “이는 법원을 농단한 행위에 해당한다. 오히려 이런 행위를 한 (이전) 정부를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사진=백혜련 블로그
법원에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뼈를 깎는 각성을 하라는 중앙의 주문에 대해 백 의원은 “법원이 반성할 게 아니고, 진실을 은폐한 정부가 반성해야 했다”며 “제대로 제출됐다면 이미 유죄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중앙과 달리 동아일보 사설과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원 전 원장을 비판한 것에 대해 백 의원은 “상식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번에 나타난 증거자료를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헌법파괴행위라고 볼 수 밖에 없다”며 이 신문도 당연한 평가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내 적폐청산위원회 국정원 파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경민 의원(국회 정보위원회 소속)도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오히려 중앙일보가 반성해야 할 것 같은 주장”이라며 “원 전 원장은 되레 추가기소할 상황에 처해있고, 형량이 추후 더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반박했다.

신 의원은 “변론재개 요청에도 재판부가 판결을 강행한 것은 이미 유죄 판결의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며 “이렇게 잘 된 판결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시비거는 사람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신 의원은 “중앙일보 논리에는 승복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이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18대 대선이 무효화될 사유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