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흑운장’의 MCN 성공기

[인터뷰] 게임방송 ‘흑튜브’로 인기몰이 중인 이성은 선수…MCN에서 ‘택뱅리쌍’을 넘어선 비결은

2017-10-02 11:32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7월30일, 스타크래프트가 출시 20년을 맞아 리마스터 버전을 내놓았다. 기자 역시 아내 몰래 리마스터 버전을 구매했다. 1998년 스타가 등장했을 무렵, 중학생이었던 우리는 처음으로 PC방이란 곳을 찾아가 헌터 맵에서 4대4 팀플레이를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음주→노래방→PC방 코스로 밤을 새우며 첫차 일정을 맞췄다. 승부조작 사건과 블리자드와의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며 리그가 사라지기 전까지 ‘스타’는 제법 많은 이들에게 삶의 일부였다.

스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과거 온게임넷과 MBC게임 채널 대신 이제 아프리카TV와 유튜브를 찾고 있다. 지금 그곳엔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이 개인방송으로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리그가 사라지며 몇몇 선수들이 MCN(멀티채널네트워크)으로 넘어온 것. 그런데 ‘스타MCN리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선수는 이영호도, 김택용도 아니었다. 프로시절 ‘흑운장’이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블록버스터 테란, 이성은이다.

▲ 이성은 선수가 운영하는 '흑튜브'.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잘라오겠다던 관우 운장처럼 “김밥이 식기 전에 게임을 끝내고 돌아오겠다”고 말해 기존의 별명 ‘흑인’과 합쳐져 ‘흑운장’이란 별명이 붙었던 이성은 선수는 선수 시절 승리 후 춤을 추는 등 상대에게 극한의 모멸감을 주는 논란의 세레모니로 인기를 모았다. 그는 임요환 만큼의 성적도, 홍진호 만큼의 인지도도, 택뱅리쌍(김택용·송병구·이영호·이제동)처럼 실력자로 군림하지도 못했지만 이들을 능가하는 ‘스타성’으로 팬을 사로잡으며 MCN계만큼은 최강자가 됐다.

이성은 선수를 지난 9월28일 만났다. 그는 지난해 10월 말부터 유튜브 채널 ‘흑튜브’를 시작해 1년도 안 된 9월 말 현재 채널구독자수 11만 명을 넘겼다. 한 달 평균 수입이 1000만원을 넘고, 협찬 요청도 점점 늘고 있다. 그의 방송은 아프리카TV와 네이버TV 등을 통해서도 나가지만 수입의 70%이상이 유튜브에서 나오고 있다. ‘흑튜브’는 올해 1월부터 폭발적으로 구독자가 늘었다. 시청자 연령은 과거 스타를 즐겼던 25~34세 비율이 제일 높다. 10대 시청자도 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흑튜브'의 한 장면.
“작년 8월부터 개인방송을 시작했다. 나는 후발 주자였다. 유튜브 라이브에 슈퍼채팅후원시스템이 적용되기 전까지는 아프리카TV만 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첫 3개월은 구독자가 2500명 수준이었다. 그러다 올해 초부터 시청자들이 커뮤니티 유머게시판에 내 방송을 홍보해주면서 구독자가 하루에 1000명 이상씩 늘었다.” 리마스터 출시 이후에도 일시적으로 시청자 유입이 늘었다고 했다.

그의 주력 플랫폼은 유튜브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 모두 유튜브가 설치된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유튜브는 어떤 플랫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접근성을 갖고 있다.” 그가 유튜브에 등장할 무렵 다른 선수들의 활동은 사실상 정지 상태였다고 했다. “스타는 유튜브에서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영상을 올려도 조회 수가 1000건 미만이었다. 본전도 못 찾는다고 했다. 하지만 길게 보고 들어갔다.”

유튜브 수입은 조회 수가 좌우한다. 조회 수는 선정성과 비례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흑튜브’에는 욕설이 없다. “욕을 하고 선정적으로 방송하면 조회 수가 잘 나온다. 그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걸 싫어하는 시청자들도 있다. 나는 원래 욕을 안 한다. 그래서 안 했는데, 욕을 싫어하는 시청자들이 내 방송으로 모이게 됐다. 나도 시청자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 '흑튜브'의 한 장면.
‘흑튜브’가 주목한 건 ‘시간표’였다. 그는 매일 밤 8시 무렵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수요일만 쉬었다. 시간대별로 스스로 콘티를 그려놓고 시작했다. 8시부터 10시까지는 스타크래프트 강의를 하고 이후에는 요일별 메인 코너를 운영하는 식이었다. 다 끝나면 보통 자정을 넘겼다. “제 방송의 기본이 되는 차별성은 시간표다. 정해진 요일에 방송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콘텐츠를 보여준다. 그리고 정해진 요일에 쉰다. 시청자와의 편성 약속이 기본이다. 시청자들에게 ‘이 때쯤이면 이성은이 방송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했다.”

시청자들은 욕설 없는 ‘흑튜브’를 틀어놓고 자기 일을 한다. 그래서 채팅창은 비교적 한산하다. 여기에 아나운서 같은 정확한 발음과 특유의 유머감각이 ‘흑튜브’ 접속을 늘렸다. 여기에 화요일 코너 ‘시키면 한다’를 통해 누워서 스타하기, SCV와 메딕만으로 이기기 같은 엽기 전략을 선보이며 스타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입소문을 탔다.

▲ '흑튜브'의 한 장면.
물론 어려움도 있다. 게으름이다. “수익도 늘고 시청자도 늘다보면 게을러진다. 내가 게을러지면 바로 통계 창에 드러난다. 유튜브 통계가 나온다. 그래프가 우하향하면 정신 차린다. 영상 제작과 편집을 담당하는 애인과 함께 매일매일 콘텐츠 회의를 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그 부부분이 굉장한 힘이 된다.”

한때 게임계를 주름잡았던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은 리그 멸망 이후 다양한 삶을 선택했다. 이성은 선수에게도 리그 멸망은 현실로 찾아왔다. “언젠가는 와야 할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스타가 100년 할 게임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왔다. 사실 그 때는 아쉬움보다 이제 뭘 하지, 그걸 알아보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 대부분 게이머들이 은퇴하고 할 게 없다. 극소수의 선수만 감독·코치·해설가로 갔다. 방황하는 친구도 많았다.”

이성은 선수는 해설자와 팀 감독까지 경험한 뒤 지금은 개인방송에 집중하고 있다. 10년 전 선수시절과 지금은 플랫폼의 변화와 함께 선수들에게도 다른 삶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현역 선수 시절에는 팬들이 프로선수들을 접촉할 수 있는 곳이 적었다. 경기장에 와야만 선수를 볼 수 있었다. 편지도 많이 받았고 숙소까지 찾아오는 팬도 있었다. 지금은 ‘이 많은 선수 중에 오늘은 누구를 골라서 볼까?’와 같은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갖고 있었던 스스로에 대한 가치, 뭐랄까 과거의 기준을 내려놓아야 했다. 지금은 ‘와주세요’, 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

선수시절 ‘흑운장’의 경기는 항상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쉽게 GG(패배선언) 치지 않았다. 그는 버티고 버텨, GG타임을 몇 번이나 보내며 스타리그 공식전 2000번째 경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내가 GG치기 전까지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설령 팬들에게 경기를 질질 끈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내가 그렇게 게임함으로써 100경기 져야 할 경기 중에 단 한 경기라도 이길 수 있다면, 쿨 GG는 없다. 내가 프로로써 가져야 할 당연한 자세였다.” 이성은 선수의 ‘흑튜브’ 성공비결이다.

‘흑운장’의 흑튜브 성공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유튜버로서, 길을 먼저 닦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동료 후배들이 이성은을 롤 모델로 크리에이터 활동을 할 수 있게끔 돕고 싶다. 지금은 개인방송이 말 그대로 개인에 머무르는데, 파티 플레이를 할 수 있게끔 뭔가를 해보고 싶다. 택뱅리쌍도 묶여야 강한 것처럼. 재밌는 방송을 하려고 많이 고민한다. 스타라는 게임을 가지고, 보여드릴 수 있는 즐거움은 몽땅 찾아서 보여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