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언론의 독자들

[기자수첩] 진보언론의 적극적 뉴스수용자들은 누구인가

2017-10-08 13:34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오늘날 소위 ‘진보언론’의 과제는 자신들의 적극적 뉴스수용자를 이해하는 일이다.

포털사이트 기사에 댓글을 달기 위해 로그인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기사 링크를 걸고 논평하는 사람들,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며 한줄 평을 남기는 사람들, 이들이 여론을 형성하는 적극적 뉴스수용자다. 국가정보원을 제외하고, 오늘날 온라인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한국의 적극적 뉴스수용자를 ‘담론공중’으로 명명하고 그 규모를 100만 명대로 추산하고 있다. 담론공중은 1970년대 말 이후 출생해 1987년 민주화에 대한 기억이 없는 40대 이하 성인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또한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데, 이들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나 기성세대와 다른 미디어 소비 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고정형PC에 의한 콘텐츠 소비에 익숙하고, 콘텐츠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도 사회적 유용성보다는 개인의 유용성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이들은 무엇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직접 뉴스를 생산·유통하고 언론보도에 대한 피드백에도 익숙하다. 기자보다 사안에 밝은이들도 상당수다. 이로 인해 분단위로 오보와 왜곡보도를 검증한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한 장면.
이들에게 중요한 건 종이신문 1면 톱에 배치된 기사가 아니다. 9시뉴스 첫 번째 리포트도 아니다.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팩트와 구체적인 내러티브가 있느냐다. 그것이 텍스트이든, 3분짜리 영상이든 웹툰이든 형식과 플랫폼은 상관없다. 페이스북, 온라인 커뮤니티, 팟캐스트, 유튜브…종이신문과 고정형TV는 그저 여러 플랫폼 중 하나에 불과하다. 

JTBC가 가장 높은 신뢰도·영향력·열독률을 기록하는 이유는 전국 고정형TV 15번에 편성되는 종합편성채널이어서가 아니다. 뭔가 ‘다른’ 뉴스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 뉴스수용자들이 원하는 건 높은 전문성이다. 이 전문성에는 일관성과 객관성도 포함된다. 이들은 자극적이고 왜곡된 언론환경에 자주 노출되고 있는 만큼 무언가 ‘다른’ 콘텐츠를 원한다. 하지만 속보-출입처 중심 뉴스룸 구조로는 언론이 이들의 바람을 따라가기가 벅차다. 포털은 장기적으로 언론사 고유의 브랜드 정체성마저 잠식했다.

이런 적극적 뉴스수용자들에게 한겨레는 대안언론이 아니다. 1987년 이후 언론민주화 열망에 따라 탄생한 대안언론 한겨레의 창간을 기억하는 적극적 뉴스수용자는 소수다. 한겨레는 조선과 중앙에 비해 젊은 층 독자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대다수는 50대다. 

1987년 이후 세대에게 한겨레는 ‘주류언론’이다. 무노조 경영하는 기업에서도, 보수 성향 정부에서도 조선일보와 함께 꼭 구독하는 신문사가 한겨레다. 한겨레를 비롯해 경향신문·오마이뉴스는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속해있는 주류매체로 가끔씩 조선일보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언론사로 인식되고 있다. ‘가난한 조중동’이라는 프레임은 모욕적이지만 스스로 ‘주류들의 권위주의’를 내비친 적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 문재인 대통령과 진보언론.
오늘날 진보언론의 독자를 이해하기 위해선 또한 최근의 시민혁명을 복기해야 한다. 2017년 한국판 명예혁명에서 시민들은 박근혜라는 왕을 무너뜨렸다. 왕을 감옥에 보낸 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의 ‘힘’을 인지하고 있으며 참여의지로 충만하다. 이들은 새 시대에 자신의 힘을 바람직한 곳에 발휘해 진정 세상이 달라지길 원한다.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더욱 표출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혁명 이후에는 늘 언론이 늘어나곤 했다.

구체제에 존재했던 기존 언론은 ‘너넨 뭐 했냐’는 비판을 받으며 구체제를 유지했던 데 따른 불신과 심판의 의미까지 더해져, 혁명의 시기 위기를 맞곤 한다. 2017년 한국은 어떤가. 시민혁명이 탄핵→합법적 정권교체로 마침표를 찍었다면, 혁명주도세력의 제1목표는 새 정부의 성공이다. 그래야 자신이 광장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결실을 맺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존 언론이 새 정부를 흔든다고 판단한다면? 그 언론이 우파냐 좌파냐는 중요치 않다. ‘복고왕정’이 두려운 혁명주도세력은 누구든 단두대에 세울 수 있다. 진보언론의 적극적 뉴스수용자 상당수가 시민혁명의 주체들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진보언론’에 대한 과격하고 민감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독해능력이 떨어지는 일부 뉴스수용자들의 반지성적 행위만 보고 자신들의 뉴스룸을 정당화하다가는 적극적 뉴스수용자들을 순식간에 적으로 돌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