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 위험성 공감 끌어내…원전 기득권 현실의 벽 못넘어”

[신고리 건설재개 반응] 공사중단측 “원전축소 과반응답 큰의미”…공사재개측 “탈원전 조사결과도 수용해야”

2017-10-20 15:42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40년 동안 핵발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교육을 받아온 사회에서 단 3개월 만에 이를 뛰어넘기란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

“이번 조사결과에서 핵발전의 위험성에 절반 이상이 공감하게 했다는 점은 큰 성과라고 본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원자력발전소 공사 재개로 권고 결정을 하자 그동안 신고리 원전 백지화를 촉구하며 참여해온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측은 원전 이해관계 집단과 언론의 편파보도라는 현실의 벽을 절감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설문조사 문항 중 원자력정책 방향과 관련해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견해가 시민참여단의 과반이 넘는 52.3%가 나온 반면, 확대해야 한다는 견해는 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에 대해서는 고무적인 반응이었다. 시민들이 핵발전 위험성에 경각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사 재개를 주장했던 측이 원전 축소 조사결과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고리공론화위원회의 설문조사 결과 시민참여단 471명 가운데 59.5%가 공사재개를, 40.5%가 공사중단 의견을 내놓았다. 시민참여단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그동안 원자력학계에 있으면서도 거의 유일하다시피 탈원전 또는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신고리 5‧6호의 위험성을 강조해왔다. 공론화 과정에서도 국내 원전 건설의 위험성에 대해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 신고리 5·6호기 공론 조사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19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공사 터. 사진=연합뉴스
박 교수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시민대표들이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적절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본다”며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될 지역엔 인구 400만 명이 살고, 원전이 10기로 늘어날 정도로 밀집하게 되는데도 건설을 재개한다는 결정을 한 것은 그만큼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위험하지만 원전에 딸린 식구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그냥 개인적 결정을 한 것도 아니고 여럿이 토의까지 했는데도 안전성과 과학성에 대한 고민보다는 전기요금과 같은 작위적 이슈에 판단이 휩쓸린 것인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원전의 안전성 보다는 경제성, 전기요금과 같은 이슈로 몰아간 공사 재개측 전략이 성공한 셈이라고 박 교수는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박 교수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안전성 이외의 이슈가 중요시된 것은 유감”이라며 “그런 논리로 결정할 것이면 탈원전을 무엇하러 하겠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논리에 맞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공론화위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정책에 대한 중립을 지켰는지 모르나 이 문제는 단순히 기계적 중립을 가질 사안이 아니었다”며 “정확한 정보는 전달하고 시작했어야 한다. 400만 인구, 다수호기 있는데 대한 안전성 평가를 하지 않았다는 점, 향후 수십년간 이 지역에 원전이 10기가 된다는 점, 한 기라도 문제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얘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얘기가 없었다면 공론화 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며 “단지 건설중단으로 매몰비용 2조가 날아가고, 전기요금, 일자리 만 중심에 두는 것이었다면 공론화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상희 녹색당 정책기획팀장은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사항을 잘못 설계했다는 얘기가 돼 버린 것”이라며 “공론화위원회 가동 결정도 대통령이 너무 갑작스럽게 말해 판이 벌어지는 바람에 ‘왜 공약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물을 새도 없이 공론화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공약을 뒤집은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실망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다만, 원자력정책 방향과 관련해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견해가 53.2%나 나온 것에 대해서는 고무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박종운 동국대 교수는 “결론적으로는 설문을 잘한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 탈원전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토론회는 안해도 될 정도의 결과이다. 신고리 재개 권고 결정 뿐 아니라 탈원전 조사결과에 대해서도 재개 쪽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팀 처장은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원전 축소가 과반수 이상 나온 것은 우리 시민들의 굉장히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며 “시민들은 지혜롭게 그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IT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경기지역 순회토론회'에서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이 소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양이 처장은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능력의 부족도 통감한다”며 “향후 건설이 재개된다 해도 시민참여단이 얘기한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제안한 것도 큰 의미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전투에선 졌지만, 전쟁에선 이겼다고도 했다. 그는 △수출 원전과 국내 원전의 안전 기준이 달라서는 안되고 보완이 있어야 하며 △한 장소에 여러 원전이 문제가 생길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시나리오를 세우고 △최대 지진 평가에 따른 안전성 보완 △한 장소에 10개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대책 마련 등 안전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 40년 동안 우리 사회가 핵발전 안정성 경제성에 대해 교육을 받아온 상태에서 단 3개월의 공론화기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그럼에도 탈원전 문제에 대한 공감을 얻어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탈핵정책이 더 가속화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상희 녹색당 팀장도 “시민대표단이 안전성을 강조하고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판단을 한 것은 유의미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김지형 신고리공론화위원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특히 시민행동 측 여러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시민참여단 분들의 다수 지지를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여러분은 원전 문제에 대해 시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그 자체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에 대해 언론의 집요하고 반복적인 편파보도와 원자력 업계 등 이해관계자 집단의 생존투쟁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박 교수는 “(조선일보를 비롯해) 중앙언론사의 편파적인 보도가 많은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본다”며 “10% 이상 영향은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홍보비 등 자금이 많고 조직이 큰 사람들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도”라며 “돈과 조직도 많은 데다 죽자 사자 매달리는 사람들에 대해 이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처음부터 판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원전 확대에 대해 일방적인 홍보를 하고, 언론환경 역시 지극히 안좋았다. 일방적 보도에 가짜뉴스까지”라며 “친원전측은 한수원과 현대건설, 삼성물산, 두산중공업과 같은 대기업이 모여있는 데다 원자력학회와 정부 출연연구소까지 결합해 독점하고 있던 정보를 쏟아낸 반면, 우리는 기껏해야 민간전문가의 재능기부로 하다보니 판이 기울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양이 처장은 “40년간 원전 안전 홍보를 해온 세력에 대해 한계를 절실하게 느꼈다”며 “이번 공론화 참여 과정에서 원전확대 정책에 이해관계가 있는 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반대로 재생에너지의 경우 비율도 2%에 불과하고 종사자도 적은 데다 시민들의 확신도 많이 약했다. 현실의 벽을 절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양이 처장은 “이 과정도 숙의할 수 있도록 충분히 전달해야 했으나 시간도 부족했고, 우리의 능력에 있어서도 여러 한계가 드러난 결과”라고 지적했다.

▲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사진=본인제공
이상희 녹색당 팀장도 “이해당사자이자 사업자인 한수원을 처음부터 배제시키려 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균형있는 구성이 되지 않았다”며 “정부의 역할 역시 부재했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조중동이 계속해서 잘못된 프레임으로 보도해 왔으며, 원전을 재개해 이득을 보는 집단들이 이겨낸 승리”라면서 “그들이 말하는 안전성, 수출효과에 피해를 보면서도 가려져 있었던 사람들, 송전탑이 건설돼 고통받는 주민들은 단 한 차례도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을 참담하게 느꼈다”고 비판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연대 대표도 “보수언론과 원전업계가 수출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궤멸적 상황에 들어간다는 식으로 몰아간 것이 결국 영향을 준 것 같다”며 “심지어 합숙토론 마지막 날엔 수출 담당자까지 등장시켜 자신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적극 설명에 나섰다. 막판엔 원전업계에서 공사 중단측에 대해 발표내용이 잘못이거나 거짓이라는 식의 네가티브 전략을 써 진흙탕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능력이 미흡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 나온 것일 것”이라며 “시민사회와 산업계 경쟁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