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검사, 징계취소 확정판결에 “불행한 시대 저문거죠?”

대법원 “과거사 무죄구형, 지시불이행‧위신손상 징계안돼” 임은정 “어둠 빛 이길수 없어…부끄럽지 않은 검사 될 것”

2017-10-31 18:42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지시에 반해 무죄를 구형했다는 이유로 검찰로부터 정직 4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아 논란이 됐던 임은정 서울 북부지검 검사가 대법원으로부터 징계취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지시불이행, 위신손상이라는 부당한 사유 등에 맞서 5년 간의 법정 투쟁을 벌인 임 검사는 검찰이라는 조직을 상대로한 힘겨운 싸움을 이겨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주심 대법관 이기택)은 31일 임 검사에 대한 징계처분(정직 4개월)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피고 법무부장관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판결 요지에서 ‘고(故) 윤중길 진보당 간사의 유족이 청구한 재심 사건’을 맡았던 임 검사 대신 다른 검사에게 이 사건을 담당하게 하라는 공판2부장의 직무상 지시에 대해 검사장의 구체적인 위임 또는 명확한 위임 규정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하다며 이 같은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한 검찰 내부게시판에 글을 게시한 행위에 대해서도 “검사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를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근무시간 위반의 점만을 징계사유로 인정할 수 있는데, 그 징계 사유만으로 정직 4개월의 징계처분을 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여 위법하다’는 이유로 원고에 대한 징계처분을 취소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임 검사는 앞서 지난 2012년 12월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소속 검사로서 자신이 맡게 된 ‘고 윤중길 재심사건’(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서 등을 토대로 재심결정된 사건)과 관련해 상급자인 공판2부장이 ‘법과 원칙에 따른 선고를 해달라’는 이른바 ‘백지구형’의 지시에도, 적극적으로 ‘무죄구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공판2부장이 이 사건을 같은 부의 다른 검사가 맡도록 지시(직무이전명령)했다. 그러나 임 검사는 다른 검사가 법정에 들어 오지 못하도록 검사 출입문을 잠그고 이 사건 공판기일에서 무죄 의견을 진술(무죄 구형)하고, 내부 게시판에 자신의 행동 경위와 심정 등을 토로한 글을 예약 게재한 뒤 일찍 퇴근했다고 대법원은 소개했다.

이후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지난 2013년 2월 5일 정직 4월의 징계를 의결했다. 첫 번째 징계사유는 공판2부장이 같은 부 이아무개 검사에게 이 사건을 맡도록 지시했는데도 임은정 검사가 2012년 12월28일 오전 11시경 법정에서 무단으로 공판에 참석해 무죄를 구형해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징계사유는 당시 법정의 검사 출입문을 잠가 이아무개 검사의 법정 출입을 막아 구형을 못하게 해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검사. 사진=임은정 페이스북
세 번째 사유는 검찰이 부당한 구형을 하고 과거사에 대한 입장도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징계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 글이 이프로스(검찰 내부게시판)에 공개된 뒤 외부로 전파되도록 해 검찰 조직 내부의 혼란을 초래하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게 하는 등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시켰다는 것이다.

네 번째 징계사유는 오후 2시 이후 반일연가를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무단으로 구형하고 법원에 머물다가 오후 반일연가를 이유로 12시 경 법원에서 바로 퇴근해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앞의 세가지 사유는 모두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지시불이행 여부에 대해 대법원은 “검찰청법의 개정취지와 목적, 규정 체계에 비춰볼 때 검찰청의 장이 아닌 상급자가 검사의 직무를 다른 검사에게 이전하려면 검찰청의 장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위임이나 ‘검사 직무 이전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한 위임규정’ 등이 필요하다고 봐야 한다”며 “(검찰이 주장하고 있는) 대검 예규인 ‘사건배당지침’이나 서울중앙지검 위임전결규정의 직무분담은 그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의 개별 위임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임 검사에 대한 공판2부장의 직무이전명령에 대해 “권한 없는 사람(공판2부장)에 의한 것이어서 위법하므로 이를 따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며 “따라서 이 사건 직무이전명령을 따르지 않았음을 징계사유로 하는 제1, 2 징계사유는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임 검사가 검사출입문을 잠가 이아무개 검사의 법정 출입을 막은 것에 대해 대법원 재판부는 “법정 출입문을 잠금으로써 원고의 직무를 이전받은 다른 검사의 직무를 방해한 행위만을 포함하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원고가 ‘백지구형’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거나 무죄구형을 하였다는 사실까지 징계사유 내지 핵심적 양정사유로 삼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임 검사의 무죄 구형은 징계사유로 삼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1심 판결에서는 백지구형 지시를 따르지 않아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이 같은 제1심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는 징계 관련 청문 절차나 소송 과정에서 ‘백지구형’ 지시 자체의 적법성에 대해 다퉜다고 볼 자료도 없다”며 “일부 잘못이 있다 해도 그 잘못은 징계사유에 포함되지 않은 행위여서 판결에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검사의 위신을 손상시켰다는 징계사유에 대해 재판부는 “검찰 내부게시판(이프로스)에 글을 게시한 행위는 그 게재 경위,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검찰조직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거나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여 검사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결을 본 임은정 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 글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평가했다.

임 검사는 법무부가 지난 2014년 11월 징계취소 판결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주장한 내용을 소개했다. 공판부장의 직무이전지시와 백지구형 지시에 불복하고 무죄구형한 임 검사의 행위에 대해 법무부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하고도 근원적인 위험을 발생시킨 행위”라며 “원고의 행위로 인해 촉발되는 헌법적 가치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험성과 더불어 계속하여 갈등을 심화시키기만 하였던 일련의 행위, 그로 인해 검찰이 입은 신뢰 상실 등의 피해를 모두 종합하면, 징계사유가 모두 인정되고 정직 4개월이 적정하다”고 주장했다고 임 검사는 전했다.

▲ 임은정 검사가 지난 2013년 산마을학교에서 강연한 사진. 사진=임은정 페이스북
이를 두고 임 검사는 “상고이유서를 읽으며, 저들이 배운 헌법과 내가 아는 헌법이 다른가, 우리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가… 싶어 황당하고 참담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임 검사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불의는 정의를 범할 수 없다”며 “저는 포기할 수 없었고,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5년 많이 고단했고, 힘겨웠지만, 많은 분들의 기도와 응원으로 견뎌냈다”며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는 “검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직을 걸어야 했던 불행한 시대가 이제 저물었다고 믿어도 되겠지요”라며 “60, 70년대에나 일어날 법한 일이 2010년대에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너무도 참혹한 비극 같은 현실이었지만, 그 잘못을 바로잡는데 제 몫이 있었던 것은 영광입니다”라고 감사해했다. 임 검사는 “대한민국 검사.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