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장악’ 이명박-김재철 체제, 2814일 만에 무너지다

MBC언론인들, 김장겸 사장 해임안 가결 이끌며 2814일만의 승리를 거두기까지

2017-11-13 17:21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우리가 이겼습니다!” 

(김연국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장, 김장겸 해임안 통과 직후) 

“김장겸은 쫓겨났다 우리 회사 되살리자!”

(11월13일 방송문화진흥회 앞 MBC 파업 71일차 집회현장 구호)

김재철 체제의 상징이었던 김장겸 MBC 사장이 2017년 11월13일 해임됐다. 이로써 김재철-안광한-김장겸으로 이어진 김재철 체제가 끝났다. 굴종의 시간을 견뎌낸 MBC 언론노동자들은 2010년 39일 파업, 2012년 170일 파업, 2017년 71일 파업 끝에 김재철 체제를 끌어내렸다. 2010년 3월2일, 국가정보원의 ‘MBC정상화방안’이 작성된 날 취임한 김씨는 이명박 정부 MBC장악을 위한 아바타였다. 그 체제가 김재철 취임 이후 2814일 만에, 결국 무너졌다.

▲ 13일 오후 4시께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파업 71일차 결의대회를 진행하던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김장겸 사장 해임안 가결소식을 듣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재철 체제를 끝내기 위한 싸움의 분기점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던 언론노조 MBC본부(MBC노조)의 2012년 170일 파업이었다. 부장급 이상 고참 사원 135명이 사장 퇴진 성명을 내고 겨울과 봄과 여름을 거치며 각종 배임혐의와 공정보도 추락을 고발하며 버텨낸 사상 최장기 파업이었다. 하지만 김재철을 몰아낼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MB정부 국가정보원과 함께 움직였던 김재철에겐 스스로 물러날 자유도 없었다.

▲ 2012년 1월30일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MBC노조의 파업 첫날 모습.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5년 전 MBC노조는 “8월초 구성될 새 방문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가 방송의 공적 책임과 노사관계에 대한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노사양측 요구를 합리적 경영판단 및 법상식과 순리에 따라 조정처리 하도록 협조하며 이를 위해 언론관련 청문회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개최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여야 합의문을 받고 업무복귀에 나섰다. 다들 눈물을 쏟으며 ‘회군’했다. 그러나 합의문은 휴지조각처럼 버려졌다.

이번 파업에선 지난 파업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다. MBC 언론노동자들은 정치권에 기대지 않고 거센 퇴진 요구를 통해 방문진 구여권 추천 이사들의 사퇴를 압박해 방문진 여야 구성을 바꿔놓았다. 촛불시민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라는 정치지형의 변화를 간과할 순 없지만 김장겸 사장 해임은 김민식 PD의 “김장겸은 물러나라” 페이스북 생중계로 시작해 MBC 언론노동자들 스스로 거리에서 거둔 성과란 점에서 지난 파업과 의미가 다르다. 정치권에 빚진 게 없기 때문에 여야 눈치 없이 MBC정상화작업에 나설 수 있다.

▲ 7월28일 서울 상암동 돌마고 행사에서 김장겸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랩을 하고 있는 김민식PD. ⓒ이치열 기자
오늘의 승리는 170일 파업 ‘회군’ 이후를 떠올렸을 때 기적에 가깝다. 경영진은 사장 퇴진을 요구했던 직원 120명(서울 69명, 지역 51명)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파업에 참여했던 6명이 해고됐고 38명이 정직 등 중징계를 받았다. 경영진은 장기파업으로 부족했던 인력을 채우기 위해 파업 도중 경력사원 93명을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이중 보도국 인원은 54명이었다. MBC 경영진은 그해 4월2일 파업대체인력채용 반대 기자회견 취재를 방해하기 위해 출입문을 봉쇄했다.

노조집행부에 대한 경영진의 손해배상 청구액은 195억 원이었다. 법원은 사측 요구를 받아들여 집행부의 재산을 가압류했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노동조합은 더욱 위기에 몰렸다. 경영진은 보직이란 미끼로 조합원 탈퇴를 유도했고, 사내 블랙리스트 등을 통해 경영진에 비판적인 직원은 철저하게 배제했다. MBC 저널리즘의 상징이었던 손석희마저 MBC를 쫓겨나듯 떠나야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경영진을 비판·풍자했던 예능PD는 ‘본보기’로 해고당했다. 기자·PD·아나운서들이 비제작부서에서 ‘잉여’취급을 당하며 모멸감을 견뎌내야 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생존을 위한 굴종의 시간이 반복됐다.

2012년 파업 이후 2016년 말까지 MBC 부당징계 피해자는 110여명 수준이었으며 파업 전후 노사 간 소송건수는 82건에 달했다. 이 중 노조 승소율은 82%였으며, 부당징계 건 승소율 94%였다. 경영진은 법으로 가면 질 줄 알면서도 괴롭히기 위해 징계하고 소송에 나섰다. MBC를 비판하는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도 무분별하게 이뤄졌다. 방송문화진흥회 자료에 따르면 MBC가 201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소송비용으로 쓴 돈만 48억 원대였다.

김재철-안광한-김장겸으로 이어지는 MBC경영진은 과거 노동조합과 국장책임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MBC만의 사내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신입사원 채용을 멈추고 경력사원 중심 채용으로 노-노 갈등을 유발시켰다. 조합원 수는 800명 대로 줄었다. 그럼에도 MBC노조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김태호 PD는 노조 탈퇴를 조건으로 제안 받은 보직간부직을 거부하기도 했다. 해고무효소송을 통해서는 공정보도가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중요한 판례를 얻기도 했다.

▲ 국가정보원과 공모해 MBC를 장악한 혐의를 받는 김재철 전 MBC사장이 지난 9일 구속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모습. ⓒ이치열 기자

▲ 지난 8일 방송문화진흥회에 출석했다 발길을 돌리고 있는 김장겸 MBC사장. ⓒ이치열 기자
김재철 체제에서 정치부장-보도국장-보도본부장-사장을 역임한 김장겸 사장은 부당노동행위와 불공정방송으로 요약되는 김재철 체제의 상징과 같았다. 때문에 오늘 김 사장 해임은 단순한 사장 교체의 의미를 넘어 지난 2814간 지속됐던 ‘권언유착 MBC’ 체제의 끝을 의미한다. 이는 고대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KBS의 파업 사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시사주간지 시사인 여론조사에서 MBC는 가장 불신하는 언론매체 1위(22.4%, 중복응답)에 꼽혔다. 조선일보(20.7%)보다 앞선 순위였다. MBC는 2009년 시사인의 같은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1위(32.1%)를 기록했던 언론사였다. 신뢰 1위 방송에서 불신 1위 방송으로, 2814일간의 MBC를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다. 이 지표를 끌어올리기 위해 MBC 언론노동자들이 가야할 길이 멀다. 시작은 해직자 복직, 내부 적폐 인사 청산을 위한 신임 사장 선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