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음수사원’ 휘호를 덮어버린 세월호 리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업무 복귀 후 MBC정상화 작업 나선 사원들

2017-11-21 15:26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21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 1층 로비에 걸려있던 ‘음수사원 굴정지인’(물을 마실 때에는 그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 휘호를 덮어버린 현수막의 문구다. 이 문구 위에는 세월호 참사 추모 리본이 그려져 있다. ‘음수사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였으며, 안광한 사장 재임 시절 MBC가 상암동으로 이전하면서 로비에 내걸린 김재철 체제의 상징 같은 문구였다. MBC 한 시사교양PD는 이날의 퍼포먼스를 두고 “권력의 MBC에서 국민의 MBC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이라고 말했다.

▲ 11월21일 언론노조 MBC본부가 사내 집회를 열고 상암동 1층로비에 걸려있던 음수사원 휘호를 세월호 추모 현수막으로 덮으려는 모습. ⓒ언론노조 MBC본부
김장겸 MBC사장 해임을 이끌어낸 72일 파업 이후 업무에 복귀한 MBC 구성원들이 MBC 정상화 작업에 나섰다. 김장겸 체제 보직간부들이 버티고 있는 보도부문은 파업참여 기자들의 제작거부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뉴스데스크’, ‘PD수첩’, ‘시사매거진2580’ 등 시사보도프로그램은 여전히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다른 프로그램의 경우 순차적으로 정상화되고 있다. 장기파업으로 라인업이 끊겨있는 프로그램의 경우 독립제작사 작품으로 편성을 이어가고 있다.

MBC정상화의 첫 신호는 ‘시선집중’이었다. 77일 만에 방송을 재개한 ‘시선집중’은 신동호 진행자가 하차한 가운데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가 되겠습니다’란 캐치프레이즈가 담긴 현수막을 걸고 방송에 나섰다. 첫 아이템은 MBC의 금기어와 같았던 ‘세월호’였다. ‘굿모닝FM 노홍철입니다’ 진행자 노홍철씨는 20일 방송에서 “제자리로 돌아온 멋진 사람들이 오늘따라 귀하게 느껴진다”며 소감을 밝혔다. 파업 이후 음악만 송출했던 라디오는 20일부터 대부분 정상화됐다.

▲ 20일 첫방송한 '변창립의 시선집중'. ⓒ언론노조 MBC본부
업무에 복귀한 기자들은 7층 보도국에서 보도국장, 센터장, 보직부장 등의 사퇴를 요구하는 피케팅을 매일 진행하는 가운데 이들이 내리는 업무 지시와 인사 발령을 거부하고 있다. 파업에 참여했던 MBC보도국의 한 기자는 “업무 복귀 후 보도국 내에서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파업에 나섰던 기자들이 완전히 보도국을 접수한 느낌”이라고 전한 뒤 “보직간부들은 위축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기자는 “경력기자들은 보도국에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무복귀에 나선 기자들은 팀을 꾸려 지난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보도 참사를 기록하는 백서작업에 나선 상황이며 조만간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한 편에선 특별취재팀을 꾸려 MBC보도국이 정상화 됐을 때에 맞춰 준비된 콘텐츠를 내놓기 위한 사전 취재에 돌입했다. 편성부문 PD들은 김장겸 사장이 내걸었던 ‘품격있는 젊은 방송’ 태그를 16일부터 내렸다. 현재는 뉴스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이 태그를 볼 수 없다.

‘PD수첩’의 경우 12월 중순 방송을 목표로 PD들이 취재 및 제작에 돌입한 상황으로, 새 사장이 온 뒤 곧바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내보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유배지 폐쇄 선언으로 ‘PD수첩’에 돌아온 박건식·김재영 PD도 아이템 준비에 한창이다. PD들은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의 업무 협의는 거부하고 있다. 조창호 국장은 자신의 방에 경비 인력을 배치했다가 사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철수시키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21일 발행한 언론노조 MBC본부 노보에 따르면 가장 빠르게 정상화가 진행된 곳은 경영 부문이다. 대부분의 간부들이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로, 홍보국의 경우 실무자들이 업무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상·미술 부문도 국장이 기본적 행정 처리만 하고 모든 업무를 실무자들에 위임한 상황이다. 영상 조합원들은 정상화국면이 올 때까지 보도·시사부문 불공정 프로그램에 대한 영상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기술 부문의 경우 ‘PD수첩’과 ‘100분토론’ 등에 대한 기술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MBC 아나운서들은 신동호 아나운서국장의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대한 법적 대응을 이어갈 계획이다.

▲ 11월15일자 MBC '뉴스데스크' 날씨정보 화면 갈무리.
이런 가운데 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 15일 포항 지진 사태 당시 MBC보도를 비판하며 “보도국 간부들이 재난 상황에도 녹화뉴스를 하고 보도국 일부 센터장과 부장들은 일찌감치 짐을 싸서 사무실을 나가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꼬집었다. MBC본부는 “재난보도를 포기한 무책임한 보도 행태는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 사태마저 단신 처리하는 보도참사로 이어졌다”고 지적하며 보도국 보직자 전원 사퇴를 재차 요구했다. 15일자 ‘뉴스데스크’ 날씨 정보에서 기상캐스터의 첫 멘트는 “어느 때보다 긴장되는 수능일, 수험생들은 따뜻하게 챙겨입으셔야겠습니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