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인사불이익·안정된 삶, 20년간 민주노조 외면”

[인터뷰] 정연용 KT 본사본부위원장 당선자, KT 민주노조 선택에 왜 20년이 걸렸나

2017-11-30 15:20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20년의 시간은 KT 회사나 어용세력의 물리적 탄압이나 개입 탓도 있었지만 이것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대기업 정규직으로서 나름 안정된 삶이 보장되는 측면이 있었다. 굳이 나서서 받아야 할 인사불이익 등을 감수하고 민주노조 활동에 나서기엔 장점이 없었을 것이다. 반드시 민주노조를 통해 내부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절실함과 절박함이 부족했다. 그래서 어용노조와 회사가 요구하는 삶을 넘어서지 못한 면이 있다.”

최근 열린 KT 노조선거에서 12개 지방본부위원장 가운데 본사본부위원장에 당선된 정연용 KT 민주동지회 사무국장은 왜 이른바 ‘민주노조’ 쪽 인사가 조합 선거에서 당선되는데 20년이 걸렸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KT는 지난 10여년 동안 회사의 부당한 노조 선거개입 의혹, 수많은 노동자의 자살, 회사비판 인사에 대한 인사불이익 등의 잡음에 시달려왔다. 경영진의 경우 남중수 전 사장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됐다가 유죄선고를 받았고, 이석채 전 사장에 대해서도 검찰이 수사를 벌이는 등 경영진의 비리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황창규 회장은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에도 연루됐으나 특검 수사망을 비껴가 올해 연임에 성공했다. 그런데도 정작 KT 내부는 극히 일부만을 제외하고 조용했다. 경영진을 견제하고 통신비용 남용을 감시해야 할 노조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KT 노조는 20년 동안 ‘어용’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다면 이른바 민주노조는 20년 동안 왜 이런 노조에 늘 패배했을까.

KT 내의 민주노조 파괴의 역사는 지난 한국통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연용 KT 노동조합 새 본사본부위원장은 2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그동안 KT 내부의 문제점과 이번 선거결과 의미 등에 대해 심경을 털어놨다. 정 위원장은 “이른바 한국통신 파업 사태가 있었던 1995년엔 한국통신 노조가 유덕상 위원장 집행부 시절로, 이 노조가 1994~1996년까지 임기를 마쳤다”며 “그러나 96년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계속 어용 집행부에 빼앗겨왔다”고 말했다. 민주노조는 유덕상 집행부의 계보를 잇는 조합원들이 중심이 되어 KT민주동지회 등을 결성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정 위원장은 “94~96년 민주노조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사측 뿐 아니라 국가에서도 현장과 조합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3년간 내부에 피로도도 쌓였다”며 “결국 당시부터 민주노조를 흡수할 역량이 없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후 사측과 가까운 노조가 늘 집행부를 차지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정 위원장은 이번에도 민주노조가 모두 승리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KT 노조는 선거를 통해 조합원 전체의 중앙위원장 1명, 12명의 지방본부위원장, 252명의 지부장을 선출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기존의 노조가 모두 승리하고 단 한군데인 본사본부위원장만 ‘KT 민주동지회’ 쪽이 승리했다. 더구나 정연용 본부위원장은 지난 17일 치러진 선거에서 50.6% 대 상대후보 47%로, 박빙 끝에 승리했다. 그럼에도 본사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이번 선거가 예사롭지 않다는 평가다. 조합원 전체인원 1만8000명 가운데 본사 조합원은 4600명에 이른다.

▲ 정연용 KT 노조 본사본부위원장이 지난 29일 경기도 의정부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본사본부 노조 선거에서 승리한 이유에 대해 정 위원장은 “기존 노조에 대한 불만도 있었겠지만, 젊은 조합원과 여성 조합원 비중이 높은 점, 지난해부터 시작된 촛불투쟁을 경험함으로써 이런 변화의 흐름이 KT 울타리를 넘어 우리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 위원장은 “관리자들이나 기존 노조의 지배력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한 면도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주된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과거 민주후보(민주동지회 소속)로 나서거나 이런 후보를 추천해준다거나, 아니면 투표소참관인을 했던 조합원들은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위축됐고, 선거에서 늘 패배했다. 그러나 그후 2002년부터 시작된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따른 복지축소, 고용불안에 늘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이번 선택을 낳은 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자신들을 ‘민주노조’로 칭하는 반면, 현재까지 집행부를 운영해온 기존 노조를 ‘어용노조’로 분류하는 이유에 대해 정 위원장은 “노조라면 노동조건 개선, 조합원의 경제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이 보다는 회사측 이해와 요구를 반영했기 때문”이라며 “특히 황창규 회장 시절인 2014년의 경우 4월8일 8304명의 명예퇴직을 결정한 것은 노조가 합의해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합의로 다수의 조합원들이 업무를 맡아온 현장개통 AS 업무를 외주화하고, 복지제도도 줄었다”며 “더 이상 회사에서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KT 사측에 대해서도 정 위원장은 지속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가 지지하는 후보가 아닌 후보를 추천하거나 참관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며 “임금 불만보다 타 부서로 전출되는 것을 더 힘들어한다. 그런 약점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하지만 이런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며 “전국사업장에 다 흩어져서 진행되는 일들을 모두 다 모아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 본인도 KT 본사의 업무지원단에 배치돼 경기도 의정부 사무실에 거주하면서 연천전곡 지역의 KT 가입자 셋톱박스 등 설치장비 회수 업무를 하고 있다. 그는 통신 분야로 1995년에 입사했다. 그가 속한 업무지원단 직원들은 지난 2014년 황창규 회장이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한 이후 명예퇴직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민주동지회 활동을 한 사람들, 업무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동료들과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한 조직(CFT)이다. 최근 명칭을 업무지원단으로 바꾼 것이라는 게 정 위원장 설명이다. 법정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KT는 이 인력을 잉여인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고 정 위원장은 전했다. 

이런 사측의 압박과 사측에 협조적인 노조에 소수의 저항세력(KT민주동지회, KT새노조 등)이 제대로 맞서지 못한 이유에 대해 KT라는 직장이 주는 안락함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년의 시간은 KT 회사나 어용세력의 물리적 탄압이나 개입 탓도 있었지만 이것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며 “대기업 정규직으로서 나름 안정된 삶이 보장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굳이 인사불이익을 감수할 만큼 민주노조 활동을 절박하게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절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차 소수화되다 보니 20년 동안 선거에서 이기지 못한 것이라고 정 위원장은 설명했다.

변화된 정치 사회 환경을 의식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정 위원장은 “20년 넘게 자신의 선택을 자율적으로 행하지 못해왔는데, 박근혜 국정농단을 심판하고 새 정권 하에서 진행되는 그릇된 적폐의 청산 흐름이 KT 안에도 불어오지 않겠는가 기대했다”며 “그러나 사측이 그런 환경을 의식했다면 이번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측의 개입의혹이 있어 검찰에 고발한 일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KT 노조의 복원을 통해 KT의 잘못된 문제를 견제하고 감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새로운 선택을 한 것은 노조의 기본적인 역할이라도 해달라는 바람과, 조합을 투명하게 운영해달라는 요구라 생각한다”며 “기본도 하지 못했던 노조를 복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KT가 내부적으로 제대로 감시와 견제를 받지 못해 국민들에게도 통신비 부담을 가중시키게 한 점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통신이 민영화된 이후 국민들이 통신비 부담을 느끼는데, 당연히 받아야할 서비스에 비해 여러 통신사와 경쟁 탓에 쏟아붓고 있는 중복비용, 마케팅비용 등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이는 결국 국민피해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조합 활동을 통해 이같은 KT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감시활동도 벌여나갈 것이라고 정 위원장은 밝혔다.

▲ 정연용 KT 노조 본사본부위원장이 지난 29일 경기도 의정부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차은택의 인사청탁을 받아들이고도 연임 중인 황창규 KT 회장에 대해 정 위원장은 “박근혜의 낙하산일 뿐 아니라 들어오자 마자 업무를 외주화하고, 직원 8304명을 떠나게 한 책임이 있다”며 “국정농단 부역까지 한 황창규 회장은 또다른 KT의 적폐이며, 회장의 자격이 없다. 퇴진해야 한다. 스스로 떠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어용노조라는 평가에 대해 현재 KT 노동조합 측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차완규 KT 노조 정책실장은 29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우리가 어용이라는 주장은 그 사람들 주장일 뿐이며, 선거는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어 승리하는 것”이라며 “노조 조합원은 본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12개 지방본부의 집행부도 있고, 우리가 주장하는 (승리한 이유에 대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차 실장은 “어용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조합원들이 우리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 위원장에 대해 “본사 전 조합원을 대변하려면 큰 그림을 갖고 해야 할 것”이라며 “작은 사상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한다면 많은 실망을 가져올 수도 있다. 잘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