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이진동은 정말 ‘빅브라더’였나

고영태 “2016년 10월24일 이진동이 최순실에게 ‘정윤회카드’ 쓰라고 했다”
2014년 11월3일자 ‘최순실 의상실’ CCTV 영상 입수 이후 2년간 왜 보도 안했나

2017-12-08 14:18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TV조선은 2014년 12월 최순실이 대통령 박근혜의 옷을 고르는 일명 ‘의상실’ CCTV 영상을 확보했다. 이 영상은 2016년 10월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가 나온 다음날인 10월25일 ‘기다렸다는 듯’ 시청자 앞에 등장했다. TV조선은 이 영상을 왜 1년10개월 간 갖고 있었을까. 보도를 못한 걸까, 안 한 걸까. TV조선 최순실 보도의 ‘키맨’(KEY MAN)이었던 이진동 사회부장(현 기획취재부장)은 일부 박근혜 탄핵 반대세력의 주장처럼 이 사태를 조종한 ‘빅 브라더’였을까.

▲ 이진동 TV조선 사회부장(현 기획취재부장). ⓒ이치열 기자
‘[단독] 박관천의 황당한 ‘권력서열’ 강의’. 2015년 1월7일자 동아일보 기사 제목이다. 2014년 11월28일자 세계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불거진 정윤회 비선실세 논란은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박관천 경정이 사적 목적으로 문건을 허위 작성했다는 황당한 마침표로 종결됐다. 당시 정윤회 문건으로 수사를 받던 박관천 경정은 수사관에게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면서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당시 기사를 쓴 최우열 동아일보 기자는 “동아일보가 이 내용(서열 순위)을 처음 보도하자 검찰이 발칵 뒤집혔다.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이 격노해 수사팀을 질책했다”고 밝혔다. 돌이켜보면 ‘천기누설’이었다. 2014년 정윤회 사태는 이미 2016년 최순실 사태를 예고하고 있었다. 최순실의 이름이 권력서열 1위로 거론된 이 때, TV조선이 박근혜의 옷을 골라주던 최순실의 CCTV 영상을 보도했다면 그 파급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더욱이 이진동 사회부장은 언론인터뷰를 통해 2015년 1월 경 이미 최순실이 짠 문화융성사업예산 등의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출소한 고영태씨는 “2014년 말 정윤회 문건이 터졌을 때 그 국면에서 이진동 부장이 의상실 영상을 공개하고 2015년 문체부 예산 자료 등을 공개했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보도하지 않았다”며 “자료를 갖다 줘도 이진동 부장은 기다리라는 반응뿐이었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이 부장에게 최순실을 연결시킨 최초의 제보자다.

이진동 부장이 2017년 10월24일자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밝힌 ‘해명’은 이렇다. “보도를 안 한 게 아니라 다 했다. 다만 타이밍을 못 맞춘 거다. 의상실 CCTV를 갖고 있었고 최순실 인터뷰도 다 돼 있었다. 로드맵에 따라 어느 단계에서 최순실과 박근혜에 초점을 맞춘 방향으로 진행하려 했는데 중간에 청와대의 공격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힘들었던 게 동료 언론인들의 진영적 시각이었다. 보도에 대한 순수성, 진정성을 의심하기 때문에 당장 보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 부장은 “CCTV를 최순실과 박근혜 관계 부분에서 보도하려 했는데 태블릿PC가 나올 줄 몰랐다”고 전했다. 밑그림을 그려놓고 순차적으로 보도하며 올가미처럼 좁히려고 했는데 뜻밖의 태블릿PC보도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 하지만 고영태씨는 자신이 준 자료를 가지고 이진동 부장이 정치권으로 가기 위해 이용하려 했을 거란 의심을 갖고 있다. TV조선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에서 내부자들이었나, 아님 주변을 맴돌다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외부자들이었나.

이진동 부장이 ‘빅브라더’가 되기까지…고영태 “이진동이 최순실에게 ‘정윤회카드’ 쓰라고 했다”

이진동 사회부장은 폴리널리스트란 비판을 받은 인물이다. 한국일보·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2008년 총선에서 경기 안산 지역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그는 MB계로 친박계와는 섞일 수 없는 인사였다. 유명한 특종 기자였던 그는 낙선한 뒤 TV조선 기자로 복귀했다. 당시 이진동 선거 캠프에 있었던 사람 중 김수현씨가 훗날 고원기획 대표가 되며 고영태씨의 측근이 된다. 박한명 바른언론연대 운영위원은 “김수현을 고영태에게 소개한 이현정도 이진동 캠프에서 일했던 관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진동 부장은 2014년 10월 김수현씨의 소개로 고영태씨를 처음 만났다. 고영태씨는 이진동 부장과 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밥과 술을 함께했다. 일명 ‘김수현 녹취록’ 2016년 7월12일자 통화를 보면 김수현씨는 이진동 부장과 최순실의 거주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통화 닷새 뒤인 7월17일 TV조선은 차움 빌딩 지하주차장에서 최순실을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7월 말 고영태씨는 강남의 한 카페에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이진동 부장에게 소개시킨다.

그날 이진동 부장은 이성한씨에게 최순실과 관련한 녹취 일체를 달라고 요구했는데, 이씨는 “녹취분량이 너무 방대해서 정리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고영태씨는 “이진동 부장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며 이성한씨를 설득해 만났는데 이진동 부장이 이어폰으로 녹취를 조금 듣더니 갑자기 자기를 갖고 장난을 치고 있다며 크게 화를 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날 이 부장이 “검찰에 가봐야 정신 차리지”라고 말했는데 며칠 뒤 이성한씨는 실제 검찰조사를 받았다. 고소인은 최순실 쪽 대리인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진동 부장은 “내가 판단했던 낌새는 이성한씨가 취재를 무기로 안종범과 협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자신을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 여기에 더해 이 부장은 “이성한씨가 (당시) 재단 정상화와 명예회복을 원하고 있었는데 뇌물로 만든 회사(미르재단)가 정상화 될 수는 없으니 검찰 조사 받을 준비를 하라고 말했던 것”이라 설명했다. 어쨌든 이들은 이날을 계기로 사실상 멀어졌다.

이 부장은 ‘이진동 빅브라더설’의 발화점 같은 존재인 김수현씨에 대해 “선거캠프 말단 직원이었고 회계담당이었다”고 전했으며 2014년 말 고영태씨가 최순실과 싸운 뒤 힘들어하자 김수현씨가 과거의 인연으로 아는 기자가 있다며 자신을 고씨에게 소개시켜줬다는 게 ‘빅브라더’설의 전말이다. 그에 따르면 이 모든 건 우연이다. 이 부장은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취재과정에서 고영태가 그렇게 깊숙이 관여하는지 몰랐다”며 “재단 취재에서 고영태는 취재원이 아니었다”고도 밝혔다.

그를 둘러싼 애매한 지점은 또 있다. 고영태씨는 2016년 10월24일 홍콩으로 도피하기 직전, 이진동 부장을 만났다고 밝혔다. 자정이 다 된 무렵이었다. 이진동 부장은 고씨에게 “최순실에게 정윤회카드를 쓰라고 전해 달라”고 말했다. 정윤회카드란 무엇일까. 고씨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고, 이 부장은 “정윤회 카드라고 하면 아마 (최순실이) 알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는 최순실에게 이 부장의 말을 전했다. 고씨는 지난해 말 김수현씨로부터 “이진동 부장이 최순실과 접촉하려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진동 부장은 “지난해 9월20일 김수현이 찾아와 최순실을 만날 생각이 있느냐고 했다. 한겨레 1면에 최순실 이름이 나온 날이었고 나는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취재차원에서 접촉을 시도했었다는 의미다. 고씨에게 말한 ‘정윤회카드’에 대해선 “고영태와 수없이 많은 얘기를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정윤회 얘기를 던져서 최순실의 반응을 보라는 의미에서 말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보를 끌어내기 위한 취재기자와 취재원간 대화였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에 밝은 한 인사는 “이진동 부장이 말한 정윤회카드는 박근혜와 정윤회의 남녀관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진실이 뭘까. 언론보도를 통해 이권을 챙기려던 고영태씨 등에게 사건이 커질 것이라고 예고하자 더 이상 상황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된 고영태씨가 자신에게 강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는 게 이 부장의 설명이다. 자신에 대한 고씨 주장을 가려들어야 한다는 것. 그는 고영태·노승일·이성한 등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이들 모두 내부고발자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 부장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과 관련, “JTBC의 태블릿PC를 제외한 모든 걸 예측하고 있었다. 이 사건이 탄핵 요구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빅브라더’란 표현은 과하지만 그가 이 사건의 설계자로 불릴 정도로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2016년 7월17일 TV조선 취재진에게 촬영당한 최순실의 모습.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7월17일 이후 최순실의 선택과 TV조선의 선택

사실 ‘빅브라더설’보다 주목할 지점은 7월17일 이후 최순실의 선택이다. TV조선 카메라에 잡힌 뒤 최순실이 겪었을 심경은 예측가능하다. 이진동 부장은 “촬영 다음날(7월18일) 오전 고영태에게 연락이 와 촬영사실을 묻고 최순실이 난리가 났다고 전한 뒤 내게 귀띔해주지 그랬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고 이후 최순실 측은 조용했다는 게 이 부장 설명이다. “우리가 뭘 갖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다”는 게 그의 추정이다. 그러나 쉬이 믿기 힘든 대목이다.

과연 최순실이 TV조선 보도가 나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릴 만한 인물일까. 우리는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최순실의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짐작할 수 있다. 최순실은 TV조선, 또는 조선일보 측과 선이 닿을 수 있는 곳은 모두 동원해 어떤 보도를 하려는지 알아낸 뒤 그 보도를 막으려 했을 것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상식적인 추론이다. 더욱이 TV조선 취재진이 7월17일 최순실을 잡은 다음날, 공교롭게도 7월18일자 조선일보 1면 톱기사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겨냥하고 있었다.

TV조선은 7월26일자 ‘靑안종범 수석, 500억 모금 개입 의혹’리포트를 통해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미르재단의 문제를 언급했다. 27일에는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미르재단 좌우’ 리포트가 나갔으며, 8월2일자 리포트에선 K스포츠재단을 등장시켰다. 리포트는 분명 최순실을 향해 가고 있었다. TV조선은 3일자 리포트에서 “수상한 두 재단의 배후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최순실은 TV조선, 나아가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패’를 확인하려 했을 것이다.

이진동 부장은 “최순실 취재가 들어가고 7월18일 조선일보 우병우 관련 기사가 1면 톱에 배치되면서 청와대에서 당시 상황을 조선일보-TV조선의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해석했던 것 같은데 모두 우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청와대가 상황을 잘못 판단했던 것 같고 아마 제대로 판단했으면 대응도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그해 8월 말,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의 향응접대 건을 ‘진박’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폭로했고, ‘진박’ 방송사 MBC는 이석수 감찰관-조선일보 기자 정보누설 논란을 제기하며 조선일보를 ‘부패기득권세력’으로 몰았다. 우병우-최순실 보도를 멈추라는 BH의 경고였다.

하지만 이 부장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조선일보는 이미 총선 이후 박근혜정부와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일보는 BH의 반격으로 관련 보도를 멈췄다. 이 과정에서 양쪽이 어떤 ‘딜’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JTBC에 의해 ‘최순실 태블릿PC’가 공개되며 예상치 못했던 국면이 등장하자, 조선일보-TV조선은 그간 박근혜정부 편향보도를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묘하게 박근혜-최순실과 선을 그으며 내부자에서 심판자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10월25일 그날의 의상실 CCTV는 그들에게 ‘보험’과 같은 존재였다.

최순실 게이트 설계자가 이진동이라면, 명령자는 누구인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사태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왜 1년10개월간 최순실이란 이름을 TV조선이 공개하지 못했느냐다. 조선일보의 한 중견 기자는 “이진동 부장은 과거 X-파일 특종 때도 그렇고 어설프게 취재하면 되치기 당하고 회사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이 일을 꼼꼼하게 진행했을 것”이라고 설명하며 “그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관련 자료를 이용하려 했을 리 없다”고 확신했다. 이진동 부장 역시 “최순실측으로부터 어떠한 회유나 압력도 받지 않았다. 만난 적도 없고 우회적으로 연락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 일명 최순실 의상실 CCTV영상의 일부.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이쯤 되면 주목할 인물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다. 그는 과연 언제 최순실 CCTV영상의 존재를 알게 됐을까. 이진동 부장은 주용중 보도본부장에게만 영상의 존재를 보고했다고 밝혔다. 모든 정보와 권한이 사주에게 집중되는 조선일보 시스템 상, 해당 보도에 회사의 명운이 걸려있다면 더더욱 상식적으로 방 사장이 보도 전부터 영상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조선일보 수뇌부가 해당 영상을 ‘카드’로 활용하려 했을 가능성에 주목해보자.

우리는 조선일보의 ‘태세 전환’이 2016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며 시작됐다는 점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 우병우와 최순실 관련 취재도 정확히 총선 이후 시작됐다. 당시 보도로 조선일보가 ‘과거권력’ 박근혜와 선을 긋고, 비박계가 만든 제3지대에서 반기문을 맞이해 ‘미래권력’과 손잡고 정권을 연장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면, 당시 영상은 매우 효과적인 카드였을 것이다. 물론 이 시나리오는 JTBC의 태블릿PC보도로 쓸모없어졌다.

어쩌면 TV조선이 의상실 영상을 2016년 10월25일에서야 보도할 수 있었던 건 당연하게도 이진동 부장 본인의 의사와 무관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진동 부장은 “지난 8월 초 최순실 이름을 공개하는 것을 두고 윗선과 갈등이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부장은 “이름을 공개하고 나는 휴가를 가겠다고 했지만 윗선에서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초 월간조선 전 편집장 조갑제씨를 비롯한 박근혜 탄핵 반대세력이 ‘이진동 빅브라더설’을 제기하자 조선일보 경영진으로부터 청문회 성격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후 대선을 거치며 사실상 그가 사내에서 밀려났다는 게 TV조선과 조선일보 안팎의 증언이다. 유례없는 특종을 한 기자에게 보도국장은커녕 ‘푸대접’이 이어지고 있는 것. 대선 직후 이진동 부장은 건강상 이유로 TV조선에 휴직계를 내고 수개월 간 쉬기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에 밝은 한 인사는 “이진동 부장은 차곡차곡 진행하기 위해 보도를 미뤄왔다고 했지만 이진동 부장이 회사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서 보도를 할 수 있을지를 탐색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근혜정부는 40% 콘크리트 지지율을 갖고 있었다. 본인의 의지만으로 보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 이진동 부장이 최순실게이트의 설계자라면, 설계를 지시한 명령자는 누구인가. 실제 ‘빅브라더’는 이진동보다 더 위에 있는, 누군가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의 언론보도에 있어서 우리는 지금껏 한겨레·JTBC와 함께 TV조선의 공로를 일정부분 평가하고 인정해왔다. 지금도 TV조선의 당시 보도를 폄훼할 의도는 결코 없다. 하지만 보도가 등장한 시점과 배경에 석연찮은 대목이 많다. 만약 진짜 ‘빅브라더’가 이 영상을 매개로 보수의 새 판을 짜려고 했다면, 우리는 보도가 이뤄지기 전까지 그들이 갖고 있었을 ‘불온한 의도’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

사람들이 영화 ‘내부자들’을 보며 현실에 존재할 것 같다고 말할 때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일’이라 치부했던 이들은 언론인들이었다. 지난해 배우 이병헌은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에서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겨버린 상황”이라고 평했다. 2013년 9월 채동욱 검찰총장을 낙마시키며 박근혜정부를 살린 조선일보가 정권 말 최순실 보도로 새 판을 짜고 새 권력에 탑승하기 위한 타임라인을 잡고 있었다면 그것은 한 언론사의 행위를 넘어선 또 하나의 영화 같은 장면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