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비서실장’이 송민순 장관을 질책한 이유는

김창호 전 홍보처장 옥중저서 ‘대통령의 발견’ “노무현, 국정원과 댓글홍보 협의말라 지시”…대통령 성공조건은 시민참여

2017-12-12 10:49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경험을 토대로 ‘옥중’에서 집필한 저서를 내놓았다.

김 전 처장은 지난 2015년 12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최근 내놓은 저서 ‘대통령의 발견’(더 플랜)은 옥중에서 집필했다. 그는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는 리더십을 재편하고 교체하는 일이며 민주적 리더십과 강력한 개혁이 결합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처장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서 살펴봐야 할 여러 사항 중 공무원 관료 네트워크를 꼽았다. 그 사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2007년 10월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질책한 상황을 소개했다.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을 앞둔 2007년 10월 청와대 안가 회의실이었다. 매일 저녁 이곳에서 정상회담에 관한 실무회의가 열렸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재인 실장이, 평소 그의 조용한 성품과 달리 송민순 외교부 장관을 큰소리로 질책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여 온 문 실장의 모습 중 가장 화가 난 상태였다. 또 ‘당신’ 또는 ‘외교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등 평소 그가 사용하지 않던 가장 험악한 용어들도 튀어나왔다. 문 실장이 송 장관을 질책한 것은 송 장관이 ‘월권행위’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남북 정상 회담에 마땅한 역할이 없었던 외교부는 6자 회담의 한국 측 대표를 정상회담에 배석시킬 것을 요구했다.”(책 173~174쪽)

김 전 처장은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 주로 경제협력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며 “다시 말해 북핵 문제가 발전적으로 해결되고 있는 만큼 남북정상회담에서 6자 회담 대표가 배석해 북핵 문제를 논의할 여지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고 썼다. 이 때문에 공식적인 의사결정 체계에 따라 6자회담 한국측 대표를 참석시키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김 전 처장은 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송민순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따로 찾아가 남ㆍ북 정상회담에 6자 회담의 한국 측 대표의 참석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라고 김 전 처장은 전했다. 그는 “대통령은 문재인 실장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문재인 실장은 송 장관이 월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이날 송 장관을 질책했다”고 썼다.

▲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지난 2015년 12월2일 검찰에 출두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 전 처장은 “관료 네트워크에 포획된 외교부 관료 출신 장관으로서 정상회담에서 외교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처의 요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는 관료 출신 장관들이 대통령의 정치적 어젠다를 수용‧실현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공무원 네트워크의 이해관계에 포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내용에 대해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질책받은 일이 없다는 취지의 반론을 폈다. 송 전 장관은 11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내가 쓴 ‘빙하는 움직인다’의 425, 427쪽 등을 보면,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김계관 북측 6자회담 대표를 불러 경과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며 “핵문제를 한국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 강조한 것이라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책에서 썼던 그대로. 그 이상은 얘기할 것이 없다”면서도 “다만 참여정부는 비서실장이 장관을 질책하는 정부가 아니었다.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는 내각 각료를 질책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김창호 전 처장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달리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그 사례로 국정원 차장이 2006년 한미FTA 댓글작업을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한 과정과, 노무현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재차 국정원과 협의하지 말 것을 강조한 사실을 소개했다.

김 전 처장은 2006년 7월19일 한 호텔 중식당에서 국정원 차장을 만나 홍보 댓글 작업을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했다며 “당시 국내담당 책임자는 내게 ‘FTA댓글 작업을 하도록 대통령께 보고드려 달라’, ‘댓글을 달게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국정홍보처장인 나는 ‘국정원이 개입하면 정책의 정당성이 무너진다’는 설명으로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고 썼다.

김 전 처장은 책에서 “며칠 후 국무 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걸어나오면서 이런 사실을 대통령에게 구두로 보고했다”며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승용차에 탑승했던 대통령은 점심 식사가 끝난 1시30분경부터 전해철 당시 민정수석,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등 여러 사람을 통해 한미 FTA 홍보를 국정원과 협의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처장은 “이는 국정원을 국내 정치에 일체 개입시키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걸어가면서 받은 보고에 대해 대통령 자신의 결정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대통령의 불안감 때문이었다”며 “즉흥적으로 받은 보고를 식사 내내 곰곰이 생각한 결과, 자칫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의사가 잘못 전달되어 국정원이 댓글 작업을 하는 등 국정에 개입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 송민순 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지난 4월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외부로 나가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 전 처장은 “노무현은 항상 기록을 담당하는 비서나 담당 수석 등을 배석시켰다. 특히 권력 기관의 장을 독대하는 것은 철저히 배제했다”며 “과거와 같은 국정원장 독대 관행을 없애 버렸다”고 밝혔다.

김 전 처장은 지난 촛불혁명에 대해 국회와 정당, 헌법재판소, 언론 등 제도 영역들이 정상 작동했기 때문에 유혈충돌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면서도 이들 제도가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재편‧개혁에 순기능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오히려 제도를 앞세워 저항이 일상화될 것임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시민들로부터 우리 사회 재편과 체제 개혁을 위임 받은 대통령으로서는 엄청난 인내가 요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대통령의 성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인식과 참여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시민들의 참여와 소통을 보장할 수도 없으며,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을 지켜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전 처장은 옥중에서 이 책을 쓴 심경에 대해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런 기간 동안에 쓴 것”이라며 “저는 커다란 정치적 좌절을 겪는 가운데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기술했다. 그는 “퇴임 후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 집필을 보좌하면서 대통령의 서거를 가까이 지켜보았던 필자는 대통령이 다하지 못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며 “하지만 어떤 정치적 성취도 이루지 못한 채 견디기 힘든 좌절을 겪어야 했다. 이 책은 그 좌절과 고통을 잊기 위해 집필하기 시작했다. 중지에 물집이 생기고 굳은 살이 박이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하루에 원고지 약 40여 매 분량을 매일 꼬박꼬박 써 내려갔다”고 전했다.

▲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저술한 대통령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