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를 너무 사랑했던 ‘바보’들의 다짐

[리뷰] 14일 방송된 ‘MBC스페셜-내 친구 MBC의 고백’ 편…지난 7년 중 1년은 길거리에 있었던 MBC구성원들의 반성문

2017-12-15 09:07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어제가 최악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늘이 되면 어제보다 더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예요. … 정신적으로 정말 많이 무너져 내렸던 시간이었죠.” 14일 방송된 ‘MBC스페셜-내 친구 MBC의 고백’편에 등장한 문지애 전 MBC아나운서의 이 한마디가, 지난 7년간의 MBC였다. 떠난 사람, 쫓겨난 사람, 순응한 사람, 그리고 아무 말도 못한 사람…. 그들이 다시금 마이크를 되찾아 ‘공정방송의 귀환’을 알리는 반성문을 냈다.

▲ 14일 방송된 'MBC스페셜'의 한 장면.
이날 방송은 문지애 전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됐다. 그녀의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를 MBC에서 들은 게 얼마 만이었던가. 그녀는 2013년 쫓겨나듯 MBC를 떠났다. 이날 방송은 오상진, 김태호, 전동건, 김민식, 왕종명, 허일후 등 전·현직 MBC구성원들이 지난 시간 겪었던 자괴감, 불안, 반성 등의 감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냈다. ‘PD수첩’과는 다른 결에서, MBC구성원들은 직접 지난 7년간의 MBC를 솔직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MBC 구성원들은 가감 없이 자신들의 과거를 비판했다. 2016년 촛불집회 현장에서 MBC로고 대신 JTBC로고를 달았더니 응원을 받고 길이 열리더라는 MBC 운전기사의 인터뷰가 등장했고, JTBC를 환호하며 MBC에는 욕설을 퍼붓던 시민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화면에 담았다. 시민 인터뷰 중에서는 “MBC는 안 보면 그만”이라던 미용실 직원분과 “사과 퍼포먼스에 이용되는 느낌”이라던 故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가 기억에 남았다.

이날 방송에선 MBC의 재건을 다짐하는 구성원들의 설렘과 두려움, 자기반성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드러났다. 아마 지금 당장은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을 것이다. 보도도, 제작도 그럴 것이다. 빨리 정상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겠지만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제작현장을 떠났던 시간들이 적지 않았고, 수년간 공채를 하지 않아 조직 내 젊은 사원들의 창발성은 부족하다. 무엇보다 지난 7년간 MBC만의 조직문화가 거의 붕괴되며 ‘자기검열’과 ‘위계질서’, ‘의전’에 익숙해졌다.

그래서인지 이날 방송에선 오프닝과 엔딩에서 MBC의 방송 강령을 자못 비장하게 읊어낸다. 방송강령을 만들었던 첫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묵묵히 할 일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궤도에 올라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앞으로의 공정방송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영광을 갖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내가 놓치고 포기했던 삶의 무언가를 되돌려놓거나, 또는 쟁취하기 위한 자기투쟁이다. 이 작업은 불온했던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청산에서 가능하다.

▲ 14일 방송된 'MBC스페셜'의 한 장면.
요즘 밖에서 만났던 사람 몇몇이 최승호 사장의 MBC를 두고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MBC는 앞으로 이렇게 5년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냐’, ‘시용·경력기자들도 가족이 있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숙청은 너무하는 것 아니냐’, ‘배현진에게 클로징 멘트 할 시간 정도는 줘야 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최근의 인사와 조직개편은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체제 다를 것 없는 ‘점령군’식 차별과 배제 아니냐는 뉘앙스였다.

그들은 마치 지금껏 싸웠던 사람들이 승진을 위해, 보직을 위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싸웠던 것 마냥 MBC사태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한 명도 없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가 2010년 4월 김재철 사장에 반대하며 시작한 39일 파업 이래로 7년 넘게 지켜봤던 그들은, 결코 사장이나 보직간부 자리 따위를 바라보고 싸웠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MBC밖에 모르는, MBC를 가장 사랑하는 직원들이었다.

하지만 능력 없고 영혼 없는 이들이 정부권력의 입맛에 맞게 발탁돼 MBC를 망가뜨렸다. 자랑스러웠던 국장책임제를 빼앗기고 공정방송을 지킬 수 있는 단체협약을 잃었고 동료들이 부당 해고됐다. 리포트는 검열됐고 PD들의 제작 자율성은 땅에 떨어졌다. 누구는 스케이트장에서 눈을 쓸었고 누구는 자신을 아나운서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직원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자신이 청춘을 바쳤던 이곳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날 방송에서 등장한 양효경 기자와 손정은 아나운서의 눈물은 그간 MBC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차별과 멸시의 흔적이었다. 부당노동행위를 반복하고 반민주적 조직구성에 ‘어쩔 수 없었다’며 동조했던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면 그 결과는 더 큰 비극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MBC에서 벌어지는 일은 ‘복수’가 아니다. 저널리즘을 위한 ‘복원’이다.

▲ 14일 방송된 'MBC스페셜'의 한 장면.
“해고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오늘이 올 거라 의심한 적 없었다”는 이용마 기자는 감격에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복직 첫날, 그는 “마치 꿈을 이룬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2010년 39일 파업, 2012년 170일 파업, 2017년 72일 파업…. 그들은 지난 7년 가운데 1년 가까이를 길거리에 있었다. MBC를 너무 지키고 싶어 가장 소중했던 리포트와 카메라를 꺼버렸던 ‘바보’들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제대로 마이크와 카메라를 잡게 됐다.

지금 MBC는 직종과 연차를 넘어 사장부터 막내직원까지 ‘동료애’로 가득하다. 파업이 가져온 ‘선물’이다. 이제 그 에너지로 천천히, 뚜벅뚜벅 옳은 길로 나아가며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