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살았으면…

[연재기획(2)]

2017-12-20 09:47       정윤영 르포작가 media@mediatoday.co.kr

미디어오늘이 기업체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종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번 연재는 ‘정의당 비상구’를 통해 진행된 노동 상담 사례를 정윤영 르포 작가(‘숨은 노동 찾기’ 공저자)가 당사자 인터뷰 등을 통해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 뜨거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갑질’은 물론 임금체불 등 불법·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편집자주

① 제빵 기사 10년 만에 진짜 세상 만났다

② 내 딸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살았으면…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입사한 지 이제 일 년째, 재계약을 한 달 앞두고 시설관리직 전원을 용역업체로 전환한다는 국방부 발표를 들었다. 국방부는 용역업체와 계약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퇴사를 선택하라고 했지만, 월 50만원 삭감해도 일 할 사람은 하고 나갈 사람은 나가라는 일방적인 통보는 선택이 아니라 압박으로 느껴졌다.

시설관리직 A씨는 올 해 중학생이 된 막내딸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아이들 등록금과 이번 달 생활비는 어떻게 하나 생계가 막막했다. 같은 이유로 관리직 대부분은 퇴사를 ‘선택’했고 되는대로 다른 일을 찾았다.

170만 원으로는 아무리 쥐어짜도 생활이 불가능하기는 A씨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 취직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었다. 일자리 부족한 건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그가 살고 일하는 지방은 더욱 그랬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일 년 전 입사할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gettyimagesbank


회사도 없고, 그렇다고 농사짓기도 어려운 곳에서 하루하루 용역으로 먹고 사는 지방 사람들에게 국방부 직접 고용은 흔치 않은 좋은 자리였다. A씨도 시설관리직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서류를 접수했다. 면접을 보고 입사까지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경쟁률이 높았다. A씨 뿐 아니라 입사한 모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2년 후에는 무기계약으로 전환한다는 말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입사한 사람들이 많았다. 월급 220만원이 빠듯해 맞벌이 없이 힘들었지만, 안정된 직장이라는 사실만큼 만족감을 주는 건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보니, 군부대는 시설이 노후한 탓에 배수로부터 화장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필요한 자재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재를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예산은 정해져 있고, 필요한 자재는 끝이 없었다.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행보관에게 말해봤자 그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 없이 집에 있는 자재를 가져와 일하기도 하고, 개인 비용으로 장비를 구입하기도 했다. 장비 살 예산이 부족해 제대로 일을 못하는 동료들이나, 중간에서 난처해하는 행보관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오래 일 할 내 일터라는 생각에 허투루 일하고 싶지 않았다.

용역직 전환은 절박함 미끼로 월급 떼먹겠다는 것

‘부득이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해고’라는 갑작스런 통보는 황당함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정규직 전환 약속이 이렇게 쉽게 깨질 수 있는 건가 싶었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일했나 허망했다. A씨처럼 정말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만 남았다. 용역업체와 재계약을 맺고 삭감된 50만 원을 아르바이트로 메워야했다.

임금은 삭감됐지만 하는 일은 똑같았다. 억울함과 생계 걱정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남은 직원들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며 늘 그만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약해지 통보 뒤 직원들 절반 이상이 퇴사하자, 부대는 부리나케 사람을 새로 뽑았다. 입사자 전원은 국방부와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 소속이었고, 시설관리 경력과는 무관한 퇴역 군인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인원수를 채우는 데 급급하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 퇴역 군인들 ‘용돈벌이 할 일자리’를 마련해주려고 용역으로 전환한 건가 싶은 생각에 불만은 점점 커졌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생계가 절박한 사람들 월급을 깎고 장성 출신들이 그 자리를 채우는 걸 보면서 ‘참 별 수 없구나.’ 한탄만 할 뿐이었다.

노동법 수십 차례 위반한 군피아 업체와 수의계약 맺은 국방부

A씨가 정의당 비상구에 글을 올린 건 국방부와 직접 고용 계약을 해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홈페이지에 비정규직 상담창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곤, 두 번 생각 않고 글을 올렸다. 그가 올린 글에는 열심히 일한 대가가 용역전환이라는 서러움과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는 일은 똑 같은데 월급의 차이가 있고 부대와 직접 계약한 곳에서 불만 사항이 없는데 왜 용역 계약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10여 만 원 받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먼 사람들 배불리기 위한 것인지… 힘없는 사람은 이렇게 당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A씨가 올린 글에 먼저 움직인 건 김종대 의원실이었다. 때마침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와 맞물려 의원실에서 국방부에 군내 민간 노동자의 비정규직 현황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자, 국방부는 시설관리처럼 용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정부 가이드라인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의원실은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은 것은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정부 대책을 회피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계약해지를 강제한 점을 문제 삼았다.

문제는 또 있었다. 국방부와 계약을 맺은 공우ENC는 퇴역한 군인과 군무원의 생활안정을 목적으로 설립한 군인공제회 자회사로, 최저임금위반과 임금 체불 등 노동관계법을 수차례 위반한 업체였다. 국방부가 시설물 관리 업체를 굳이 수의계약으로 맺을 필요가 있었는지, 노동법 위반으로 입찰자격이 없는 부정당업체와 공정한 입찰을 피하기 위해 수의계약을 맺은 것 아닌지 캐물었다. 게다가 시설관리용역 사업의 70% 가까이 수의계약으로 이루어진데다 수의계약의 절반은 공우ENC와 같은 군 관련 단체라는 사실에서 미루어 볼 때, 퇴역한 군인들의 낙하산 취업을 목적으로 국방부와 수의계약을 맺은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김종대 의원실에서 국방부의 수상한 수의계약과 용역업체의 노동법 위반 사실을 지적하자, 언론에서도 정규직 전환 무력화하려는 ‘군피아’를 문제 삼으며 군 내 비정규직 민간 노동자 상황을 다루었다.

소수 정당, 작은 창구 하나가 노동자 삶 바꾸었다.

A씨는 비상구에 글을 올리고 김종대 의원실의 연락을 받을 때만 해도 자신의 글을 읽어줬다는 사실이 반갑고 고맙기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 내 민간용역과 관련한 기사들이 연달아 올라오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그리고 ‘좋은 일’은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되었다. 의원실에서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재심의해야 한다며 직접고용을 피하려는 공우ENC의 ‘로비 추진계획’ 문건을 입수해 언론에 공개하자, 국방부는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열어 군 내 민간용역 노동자 268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직접 고용됐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쓰긴 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으면 어쩌나 싶어 A씨는 처음엔 조바심이 났다. 정의당만 믿고 있다가 잘 안 되면 어떻게 하나 미리 실망하기도 했다. 정규직 전환 소식을 신문기사로 접한 뒤, 간절한 마음이 통했나보라며 그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 ⓒgettyimagesbank


“정규직 전환까지 이렇게 빨리 될 줄은 솔직히 몰랐어요. 제가 상담글 올렸다는 얘기를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거든요. 정규직 전환된다는 기사를 보고 속으로 혼자 조용히 탄성을 질렀죠.”

A씨처럼 정의당에 기대를 걸고 도움을 요청한 사람도, 별 기대 없이 무덤덤하던 사람도 정규직 전환 소식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소수 정당이고 작은 상담창구 하나지만, 비상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노동자 입장에 선 정당의 힘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고, 정의당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도 전과 달랐다.

그럼에도 A씨를 비롯한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먼저 퇴사한 동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직접고용이 확정됐다는 얘기에 기뻐하다가도 이래도 되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며 일하던 동료들이 용역직으로 전환돼 퇴사할 수밖에 없는 걸 보며, ‘용역 자체가 인력시장 노예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임금이 깎이더라도 용역에 남은 동료들을 보면서는 ‘빨대에 꽂혀 피 빨리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국방부 계약직으로 입사해서 일 년 뒤 용역직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정규직으로 전환되기까지 2년 동안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을 절감했다. 운이 좋아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직접고용대상이 됐지만, 대다수는 어쩔 수 없이 ‘더 힘든 일, 더러운 꼴’ 참아가며 비정규의 삶을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무겁게 남았다.

그러나 시설관리 노동자 한 명이 작은 창구를 통해 목소리를 낸 작은 용기가 정치인 한 명을 움직이고 결국 정규직 전환이라는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누구도 더러운 꼴 보지 않고 마음 졸여가며 일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목소리를 듣는 정치가 있는 한, 조금의 희망이 가능하다는 걸 비상구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공우ENC 시설관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 대상에 포함한다는 기사를 봤을 때도 A씨는 막내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딸은 정규직이 된다는 소식에 아빠가 더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 말에 A씨는 딸이 자기 나이가 되었을 먼 미래를 종종 상상하게 되었다. 아직 먼 미래지만 딸이 일하며 살 때는 누구라도 생계걱정 없이, 언제 잘릴까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자기 밥벌이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