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캔 스피크 “위안부 합의 무효”

[시시비비] ‘위안부 이면합의 공개’ 비판하는 조중동이 우려스럽다

2018-01-03 10:51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media@mediatoday.co.kr
새해에도 한국사회는 박근혜 정권 뒤치다꺼리에 애를 먹을 듯하다.

위안부 협상은 뒤치다꺼리 중에서도 난제다. 지난해 12월27일 외교부 산하 태스크포스의 발표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의 전말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 측의 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요구를 수용한 듯이 해석될 여지가 있는 내용을 비롯해 몇몇 민감한 사안을 이면합의 해주었다. 제3국의 위안부 기림비 설치를 정부가 지원하지 않겠다거나 ‘성노예’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는 등 일본 측 주장이 대부분 관철된 모양새다.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협상의 “중대한 흠결”을 확인했으며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예견된 일이다.

▲ 2015년 12월28일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끝난 뒤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굴욕적인 이면합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분노는 일본 정부의 반발을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온라인 공간에 터져 나오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일본의 오만한 태도와 함께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거짓말을 질타하고 있다. 위안부 합의 직후부터 흘러나온 이면합의 의혹에 대해 박근혜 정권은 거듭 국민을 속였다. 관련 부처 장관들은 국회에 나와 이면합의는 없다고 단언했고, 청와대 홍보수석은 “사실과 다른 보도”,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유언비어”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박근혜 씨는 청와대에서 기자로부터 이면합의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합의 내용을 자꾸 왜곡해 문제를 일으킨다’며 노기 띤 얼굴로 답하기도 했다.

조중동이 애써 외면한 ‘박근혜의 거짓말’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시민들은 박근혜 정권 사람들의 거듭되는 거짓말에 상처받았고 이 상처는 분노로 폭발했다. 그런데 위안부 협상마저 속였다니! 어쩌면 시민들은 이면합의의 존재 자체보다 국민을 속이면서 일본과 통한 박근혜 정권의 부도덕성에 더 화가 났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부 발표 후 나온 몇몇 신문의 사설들은 박근혜 정권의 국민 기만행위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이면합의 공개’를 문제 삼고 있다.

“비공개 합의 내용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외교 교섭에서 비공개 부분이 있는 경우는 흔하다. … 일본이 먼저 나쁜 선례를 만들었지만 외교 교섭 과정을 뒤늦게 공개하고 심지어 비공개 약속까지 뒤집는 것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볼지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12월29일 조선일보 사설 ‘한‧일 관계는 이렇게 해도 괜찮나’)

“정작 큰 문제는 경위 조사란 이름으로 외교상 넘어선 안 될 선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30년 동안 비밀에 부쳐야 할 외교문서가 2년 만에 까발려졌다.” (2017년 12월28일 중앙일보 사설 ‘위안부 합의, 협상도 경위 조사도 잘못됐다’)

“(문 대통령의 발표는) 향후 국가 간 약속을 어긴 모든 책임을 한국이 지겠다고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2017년 12월29일 중앙일보 사설 ‘북핵 앞에서 한·일관계 파국까지 가려 하나’)

“이번 TF 조사에서 비공개로 관리돼야 할 외교문서가 다수 공개된 것은 국제사회에 한국의 신뢰를 떨어뜨릴 빌미를 주었다는 점에서 아픈 대목이다.” (2017년 12월28일 동아일보 사설 ‘위안부 합의 이면(裏面) 공개 유감…더 유감인 日 반응’)

▲ 2017년 12월27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 결과에 대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사설들은 협상에 잘못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면합의는 있을 수 있는데, 이를 공개한 것이 문제’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한‧일 관계를 망가뜨린다고 질타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가 이면합의는 없다고 거듭 국민을 속인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거대신문 “이면합의 공개는 잘못” 주장, 일본에 악용될까 걱정

‘외교 관례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옳다. 그러나 외교 관례보다 더 큰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들이 있다.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이면합의도 아니었다. 피해자들을 배제하고 국민을 속이면서 졸속으로 거래된 위안부 합의에 ‘외교 관례’만을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외교관례에 따라 위안부 합의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앞에서는 “이면합의는 없었다”고 거듭 국민을 속이면서, 뒤로는 이면합의에 따라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옮겨달라고 시민단체를 설득해야 하는 것인가?

조중동이 “이면합의 공개는 잘못”이라고 정부를 비판하고, 한일관계를 망칠 셈이냐고 다그치지 않아도 국민은 문재인 정부가 ‘선택한’ 안팎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정부는 일본 측의 거센 반발도 극복하고 위안부 피해자들과 대다수 국민이 납득할만한 해법도 내놓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은 더욱 “일본이 어떻게 나오든 이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조중동이 무슨 사설을 쓰든 이제 큰 걱정이 없다. 더는 시민들이 조중동의 주장을 쫓아다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위안부 협상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의 이면합의 공개를 비판하는 조중동의 목소리가 ‘한국언론의 주장’으로 일본 측에 악용될까 걱정스럽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