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언론포커스] 언론 정상화, ‘원상복귀’ 그 이상이 필요하다

2018-01-11 11:31       정연구 민언련 이사·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media@mediatoday.co.kr
영화 ‘1987’이 화제다. 2016년과 2017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정국의 경험 덕에 묵직하게 흥행의 저력을 이어가던 차에 현직 대통령의 관람으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87년 1월14일 ‘탕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신문 지상에서 접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나온 동아일보 ‘김중배 칼럼’의 1987년 1월17일자 기사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를 읽고 또 읽으며 몇 날 며칠을 울컥거렸는지 모른다. 이런 기억 탓에 영화가 제대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전에 마음은 이미 평정을 잃었다. 그때 그 안타까움 때문인지, 이제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 때문인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해 영화를 보는 내내 울먹였다.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에서 칠판에 적힌 보도지침을 지우는 장면(좌)과 동아일보 ‘김중배 칼럼’의 1987년 1월17일자 기사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우)
혼자 외롭게 걷겠다는 결기 필요한 적폐청산의 길

영화를 보고 난 문재인 대통령은 가장 울림이 컸던 대사로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를 꼽았다고 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세상이 바뀌겠느냐는 핀잔을 뚫고 세상을 바꾸자 노력한 끝에 드디어 세상을 바꾸어냈다는 희열감에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이 말을 가장 울림이 큰 대사로 뽑은 이유도 세상을 바뀌었음을 자축하자, 누군가 노력하다 보니 이렇게 바뀌지 않았는가를 말하려고 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실제로 북핵과 같은 대외적인 문제로부터 적폐청산이라는 대내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문 대통령도 걱정해 마지않을 중차대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쩌면 앞으로도 예전처럼 그렇게 뚜벅뚜벅 함께 걸어가자는 제안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지금까지보다 더 크고 험한 장벽을 만났을 때 어떤 누구도 나서지 않으며 그런 일에 괜히 나서지 말라는 냉소가 횡행하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나 혼자서라도 뚜벅뚜벅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가자는 제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혼자라도 뚜벅뚜벅. 말은 참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영화 ‘공범자들’에서 김민식 MBC PD가 한 인터뷰 내용은 혼자 뚜벅뚜벅 걷는 일이 얼마나 비장한 일인지 잘 보여준다. MBC 본사 건물에서 “김장겸은 물러가라”고 외치는 것을 김 PD가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것을 본 김 PD의 아내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더라고 하며 울먹였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까지 외쳤는데도 주위 동료들이 아무 반응이 없다면 당신만 ‘돌아이’가 되는 거야.”

▲ 영화 ‘공범자들’에서 김민식 MBC PD가 한 인터뷰 내용은 혼자 뚜벅뚜벅 걷는 일이 얼마나 비장한 일인지 잘 보여준다. 사진은 MBC 본사 건물에서 “김장겸은 물러가라”고 외치는 장면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한 김민식 PD. 사진=김민식 PD 페이스북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퇴직자는 속출하고, 이유 없는 해고마저 남발하는 엄혹한 언론탄압의 환경 속에서 누구도 함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혼자 뚜벅뚜벅? 생각만 해도 오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의 제자리로 아니라 새 환경에 걸맞은 새 모습이 정상화

현재 언론계가 당면하고 있는 적폐청산이라는 과제는 어떤 성격의 일일까? MBC는 정상화의 초석을 깔았다고 하고 KBS도 강규형 이사를 해임함으로써 새로운 경영진을 꾸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적폐청산은 끝이 보이는 일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흔히 내 안의 적폐를 청산해야 하고 조직 내부에 깊숙이 침투해 있어 보이지 않는 문화적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옳다. 사람을 바꾼다고 절로 적폐가 청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생각과 문화를 바꾸어야 제대로 적폐를 청산할 수 있다.

그런데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와 싸워야 하는 적폐청산은 이유 없는 해고를 남발하는 몰상식한 상대와 싸우는 일에 비해 수월할까? 혼자 ‘돌아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느끼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일까?

▲ 북한과의 대화는 북핵 완성의 시간만 벌게 해주는 일이라고 떼를 쓰는 수준의 주장은 이제 더 이상 공론장에 들어설 수 없게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몰합리가 설 땅이 없을 정도의 건강한 공론장 형성도 ‘혼자 뚜벅뚜벅’의 결기로 온 힘을 다 바쳐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사진=중앙일보 1월3일자 사설 일부
아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한때 동지였던 사람들과도 각을 세워 때로는 처절한 투쟁을 해야 하는 고난의 길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점차 발전하는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매스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있는 환경에서 공영방송은 지금까지의 그 모습 그대로 공영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공영방송을 과거의 제자리에 올려놓는 것이 정상화가 아니라 공영방송을 새로운 방송환경에 걸맞게 새로운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 제대로 된 정상화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북핵의 기술적 진전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데 북한과의 대화는 북핵 완성의 시간만 벌게 해주는 일이라고 떼를 쓰는 수준의 주장은 이제 더 이상 공론장에 들어설 수 없게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몰합리가 설 땅이 없을 정도의 건강한 공론장 형성도 ‘혼자 뚜벅뚜벅’의 결기로 온 힘을 다 바쳐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기왕 두려운 마음을 이기고 이까지 온 거, 게까지 가봐야 하겠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