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광풍과 디지털 자본주의의 강탈성

[기고] 불로소득자들에 대한 과감한 규제와 강력한 과세가 필요하다

2018-01-22 11:02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media@mediatoday.co.kr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가 자본주의에서 일반적 화폐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은 거의 분명한 것 같다. 지불수단도, 교환 수단도, 가치 척도도, 가치 저장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화폐’라고 부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사실상 실질적 가치와 연결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투기적 성격이 많은 주식, 채권, 외환과는 또 달라 보인다.

현재 대표적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2100만개 한정된 수량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출렁거리면서 사람들을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만들고 있다. 이런 비트코인이 가치를 만든다는 주장은 ‘상품의 가격은 유통수단의 양에 의해 결정되고, 유통수단의 양은 화폐 재료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화폐수량설’의 최신버전이라고 비판받을 만하다.

좌파적 정치경제학에서 가치의 기준으로 보는 노동가치와 사회적 필요 노동 등에 의해 비트코인에 담긴 가치를 설명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즈아’, ‘으샤으샤’를 외치고, ‘존버’를 하는 게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은 아닐 것이다.

일부에서는 암호화폐가 탈중앙, 정보공유, 국가권력과 중앙은행의 간섭 없는 거래 등을 가능케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무정부주의적 이상보다는 국가나 사회가 간섭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는 시장주의의 유토피아와 더 비슷하게 들린다. 이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형태는 바로 2008년 금융 위기를 불러오고도 오늘날까지 여전히 살아남은 신자유주의이다.

▲ ⓒ gettyimagesbank


하지만 극단적 자유시장은 역사적으로 항상 독점과 온갖 부조리와 피해자를 낳았다. 상위 1%가 거의 90%를 소유하고 있고, 10대 채굴기업이 90%를 독점한 상황에서 거래소를 통한 거래가 압도적이라는 암호화폐도 마찬가지 길로 접어든 것 같다.

비트코인의 초기 개발자조차 자신들의 초기 이상과 다르게 소수가 시스템을 통제하게 된 현 상황을 실패라고 인정했다. 막대한 돈벼락을 맞고 있는 것은 채굴기업, 중개소, 투기자본, 검은 돈을 굴리는 큰손, 탈세를 노리는 부자들이고, 등록금이나 전세금을 날린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뭔가 다르고 유용하다는 주장도 의심스럽다. 아무리 뛰어난 첨단의 기술도, 그것이 무엇을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인류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경우는 이미 너무 많았다. 온갖 놀라운 첨단 기술들이 생명을 더 많이 더 효과적으로 죽이는 데 이용되는 군수산업이 대표적이다.

아무도 가치와 손해를 보증해주거나 책임지지 않는 암호화폐는 경제·금융 위기가 닥치면 폭발력과 희생자를 크게 부풀리는 구실을 할 것이다. 꿈과 희망을 찾지 못한 2030과 일부 노동자들까지 틈날 때마다 휴대폰으로 비트코인 시세를 확인하는 풍경을 전해 들으면 안타깝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욱 극심해진 삶의 불안정성과 모든 영역의 금융화가 그 배경에 있을 것이다.

우파 언론들이 이런 거품과 광풍을 더욱 부추기며 남북단일팀, 최저임금, 부동산 등을 엮어 오로지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떨어트리는 데만 눈이 벌개진 것도 어처구니없다. 정부가 젊은층과 서민의 꿈을 막는다는 비난이나, 심지어 북한이 해킹으로 비트코인을 폭락시켰다는 소문까지 부추기며 악선동에 열심인 일부 언론을 보면 기가 막힌다.

이런 오른쪽의 공격과 악선동을 통해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정부에 비판적인 좌파로서도 반갑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암호화폐를 규제, 단속하고 거래소 폐쇄 등을 추진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방향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지금 이 나라에서 코인판만큼 공정한 곳이 어딨냐’, ‘우리의 꿈을 빼앗아 가느냐’라는 반발이 일부에서 힘을 얻을까?

열심히 일해도 최저임금과 비정규직을 벗어나기 어려운데 자고나면 몇 억씩 올라가는 강남 땅값과 집값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수료로 엄청난 돈을 챙기는 은행들, 침대에 누워만 있는데 주식 가치가 몇 조가 오른 이건희, 수틀리면 달러를 멋대로 찍어내서 상황을 뒤바꾸는 강대국의 패권을 봐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나라에서 부동산 불로소득은 매년 수백조 원에 달한다.

이런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번다’는 물신숭배가 퍼지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이런 세상에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냉소나 ‘장래 희망은 건물주’, ‘희망은 로또밖에 없다’는 사람들만 탓하기도 어렵다.

나아가 돈이나 화폐가 모여서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본이 되면 착취와 강탈은 극에 달한다. 우리는 쌍용차에서 죽음의 행진을 아직도 기억하지만,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은 지금도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용산에서 재개발 이익을 위해 도시빈민들을 죽음으로 몬 참극이 일어난 게 벌써 9년 전이지만 아직도 책임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삼성 반도체의 기적적 수익 뒤에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을 위한 반올림의 노숙농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화폐가 ‘한쪽 볼에 핏자국을 띠고 이 세상에 나온다’면,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온다”고 했다. 더구나 생산적 투자와 비생산적 투기는 불가분하게 연결돼 있고, 그 상호작용이 일으키는 모순의 폭발은 또 다른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기 마련이다.

▲ ⓒ flickr_BTC Keychain


2000년대 초반 IT 거품의 붕괴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비롯한 금융 위기가 낳은 수많은 고통과 피해는 지금 비트코인 광풍과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처럼 투기와 거품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필수적 부산물이자 필연적 결과이며, 국가의 정책은 이걸 개선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하긴 어렵다.

따라서 그나마 생산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산업 투자나 국가와 중앙은행이 규제할 수 있는 제도권 내의 온갖 부동산이나 금융 투자들은 괜찮지만, 암호화폐 시장만은 더 특별하게 사기성이 크고 해악적이라는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릴지 몰라도 현실과는 별로 맞지가 않다.

개인적으로 <대부> 시리즈에서 가장 좋았던 건 3편이었다. 거기서 주인공 마이클 꼴레오네는 불법적인 마약과 매춘으로 돈을 벌던 마피아 두목에서 합법적인 투자자, 사업가로 성장해 가며 정치권은 물론 교황청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간다.

하지만 마이클은 ‘난 상층으로 올라가려고 온갖 애를 다 썼다. 그러나 위로 갈수록 내 손은 더 더럽혀졌다’고 고백한다. 마이클의 후계자인 빈센트를 만난 한 정치인은 ‘금융은 총과 같고, 언제 방아쇠를 당겨야하는지 결정하는 게 정치’라고 조언을 해준다.

개미들을 끌어들여서 판을 키우고 한몫 챙기려는 코인판의 사기꾼들도 문제지만, 자본주의적 생산과 금융 시장 자체가 훨씬 더 많은 개미들에 대한 착취와 강탈을 통해 유지되는 거대한 도박판이 아닐까. 더구나 이윤 창출과 축적에 도움이 된다면 자본주의는 암호화폐도 멀지않은 미래에 시스템 속으로 통합할지 모른다.

이미 중국 인민은행은 2014년부터 가상화폐 개발연구팀을 운용해 왔고,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자체 가상통화를 만들어 내부거래에 사용해 왔다. 앞서, 온갖 사기와 속임수로 구성된 파생금융상품들도 금융제도 속에 통합된 적이 있고, 디지털 경제로 나아가면서 자본주의의 지대추구적이고 약탈적인 성격은 더욱 뚜렷해져 왔다.

정부가 비트코인에 대한 규제를 넘어 재벌 대기업과 금융·부동산 시장의 큰손 등 더 크고 강력한 불로소득자들에 대한 과감한 규제와 공공적 통제, 강력한 과세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불만과 반발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