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총살됐다던 현송월, 조선일보의 후안무치

[미디어오늘 1135호 사설]

2018-01-23 17:33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연인으로 알려진 가수 현송월을 포함해 북한 유명 예술인 10여명이 김정은의 지시를 어기고 음란물을 제작·판매한 혐의로 지난 20일 공개 총살된 것으로 28일 밝혀졌다.”

2013년 8월29일 조선일보가 6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내용이다. ‘김정은 옛 애인(보천보 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라는 제목의 기사다. 인터넷에선 ‘단독’이라는 타이틀까지 달았다. 현송월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이 지난 21일 사전점검단을 이끌고 방한한 이후에도 조선일보 해당 기사 제목에는 여전히 ‘단독’이 달려 있다. 

조선일보 2013년 8월29일자 6면
공개 총살됐다던 현송월 단장이 버젓이 살아왔지만 조선일보는 자신의 오보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정정도 없다. ‘김정은 옛 애인’도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불과했지만 조선일보는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사실상 기사 전체가 오보로 판명이 난 상황이다. 하지만 자칭 ‘1등 신문’은 지면과 인터넷에서 모르쇠로 일관한다. 후안무치가 따로 없다.

▲ 지난 2013년 8월29일 보도된 TV조선 ‘뉴스쇼 판’ 갈무리
6년 전 지면에서 현송월 단장을 ‘공개 총살’시킨 조선일보는 현 단장 일행이 남한에 머무는 1박2일 동안 그와 관련한 시시콜콜한 내용을 세세히 보도했다. 현 단장 일행이 강릉 스카이베이 경포호텔 식당에서 어떤 메뉴로 아침식사를 했는지, 어떤 의상과 구두를 신었는지 그리고 어떤 핸드백을 들었는지 자세히 전했다. 멀쩡한 사람을 지면에서 ‘공개 총살’시킨 언론이 공식적인 해명 없이 신변잡기식 보도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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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살’ ‘처형’ ‘죽음’이라는 단어와 함께 무책임하게 보도를 해도 그 대상이 북한이라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한국 언론의 북한 보도가 춤추는 이유다. 자신들 지면에서 ‘총살됐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면’ 이후 보도에 최소한의 신중이라도 기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대립과 갈등 부각, 트집잡기와 신변잡기식 보도에 치중했다. 반성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다.

조선일보의 북한 보도 문제점은 현송월 단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다. 북한은 지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을 참가시켰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경기를 참관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남북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와 사설을 배치했다. 그때 남북관계나 한반도 상황이 지금과 크게 다른가? 그렇지 않다.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전에도 북한은 핵실험을 했고 미사일을 발사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당시에는 ‘남북대화’를, 지금은 ‘강력한 대북제재’를 주문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는 박근혜 정부였고 지금은 문재인 정부이라는 것 정도다. 조선일보의 북한 관련 보도가 정치적이고 정파적인 이유다.

▲ 지난 1월17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진천선수촌에 방문했다. 사진=청와대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해 정치권과 언론이 힘을 모아 달라는 문재인 대통령 주문에 대한 조선일보 입장은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조선일보는 23일자 사설에서 “청와대의 요청이 북의 비위를 거스르지 말아 달라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자유한국당이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며 색깔론 공세를 펴고, 일부 언론이 이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를 ‘북 비위 거스르지 말라’는 취지로 해석했다. 조선일보의 독특한 해석 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조선일보는 “유독 북한은 남측 언론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북한 선전 기관들은 ‘괴뢰 보수 언론들의 악선전이 도를 넘고 있다’며 연일 비난하고 있다”(23일자 사설)고 썼다. 언론보도와 관련해 북한 입장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지금까지 조선일보의 북한 관련 보도가 얼마나 정확했고, 얼마나 신중했는지 따져볼 필요는 있다. ‘현송월 총살’과 같은 명백한 오보를 하고도 나 몰라라 하는 건 책임 있는 언론의 자세가 아니다. 북한의 ‘괴뢰 보수언론 악선전’을 문제 삼기 전에 어이없는 ‘현송월 총살’보도에 대해 정정하고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