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불공정 관행 개선, 방송정상화 과제다

[언론포커스] ‘방송정상화’, 이제는 ‘우리 안의 적폐’를 없애야 한다…우리는 고 이한빛 PD를 기억하자

2018-01-28 15:00       이용성 민언련 정책위원·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media@mediatoday.co.kr
‘방송제작 불공정관행 개선 대책’이 나오기까지

지난해 4월에야 이한빛 PD의 죽음이 공론화됐다. tvN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 PD는 방송사의 외주제작인력에 대한 횡포 등 열악한 제작환경, 장시간 노동, 심각한 언어폭력에 맞서다가 2016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심적인 PD가 극단적인 한계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었던 비인간적이고 열악한 방송 제작환경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난해 7월에는 외주제작인력의 근로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독립PD 사망과 9월 MBC ‘리얼스토리 눈’ PD들의 독립 PD에 대한 인권 유린 사건이 이어졌다.

▲ 지난해 4월25일 ‘tvN 혼술남녀 고 이한빛PD 사망대책위’가 CJ E&M 앞에서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외주제작 인력이나 방송사가 직접 고용한 프리랜서들 대부분이 4대 보험조차 갖추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방송사와 PD들의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지상파방송과 통신사업자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주요 정책사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 왔던 방송통신위원회이지만 오래된 방송제작 불공정 관행에 대해서는 그동안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목숨을 잃고 이에 항의하는 움직임이 가시화하자 관심을 갖고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19일 국무회의에서 방송통신위원회 등 5개 정부부처가 합동으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종합대책’에 대해 외주제작사와 독립PD들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사 불공정 환경 개선 준수 여부(외주 제작비 합리적 산정이나 제작인력 인권보호)를 방송사 재허가 조건에 연계시키는 등 실효성을 강화한 측면은 있지만 불공정 관행은 즉각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고, 외주제작 표준계약 가이드라인은 2004년에도 대책으로 발표됐지만 법적 강제력을 담보하지 못해 가동됐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어쨌든 ‘종합대책’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외주제작 등의 고질적인 불공정 제작관행을 개선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이후 사건과 폭로는 계속되고

그런데 ‘종합대책’이 발표된 지 나흘이 지난 지난해 12월23일 tvN 드라마 ‘화유기’ 제작현장에서 무리한 작업 강행으로 제작인력이 중상을 입는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1월에는 ‘한겨레21’이 SBS가 촬영감독과 방송작가 등 프리랜서 방송노동자의 임금을 상품권으로 지불했다는 사실을 보도해 논란이 됐다. 이러한 관행은 SBS뿐 아니라 다른 지상파방송에서도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추가적으로 밝혀졌다.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이며 상품권이 협찬의 일부라면 협찬제도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 SBS ‘상품권 지급’을 폭로한 시사 주간지 한겨레21 제1195호 표지.

지난 25일에는 ‘미디어오늘’ 등이 KBS 구성작가협의회 홈페이지에 한 작가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뉴스타파 ‘목격자’ 등에서 일하면서 경험한 차별과 폭언, PD들의 이중성을 폭로한 글을 보도했다. 해당 매체와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위상을 생각하면 충격적인 상황이다. 해당 매체들은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했다. 눈길이 가는 것은 이 작가가 폭로 글을 게재한 이유다. 이번 주에 문체부 장관이 방송작가들을 만난다고 하는데 이 내용을 전달해 달라는 것이었다. 여전히 ‘을’들은 해야 할 억울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것이다.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을지 모르는 불공정 관행들은 최대한 빨리 개선하는 것이 맞다.

[ 관련기사 : 한 방송작가의 폭로 “나는 커피 심부름꾼이었다” ]

방송사와 방송인의 자율적인 개선 노력 선행돼야

신속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방송사와 방송인 스스로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PD연합회는 입장문에서 “공영방송 정상화와 방송생태계 개선의 시대적 과제는 ‘관행’이란 이름으로 우리 안에 존재해 있는 적폐를 없애는 데서 출발”한다고 밝혔다. MBC 최승호 사장, 언론노조, PD연합회, SBS노조 등이 의지를 갖고 불공정 관행 개선에 주력하겠다고 했으니 지켜봐야 할 것이다.

MBC, KBS 파업과정 중, 일부 비정규직 제작인력과 프리랜서들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영방송 정상화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파업에 동참했던 일은 감동적이었다. 방송정상화에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하나이듯이 불공정 관행 개선도 방송 정상화이자 방송민주화의 과제이다. 그리고 비정규 방송제작진을 잊지 않았던 고 이한빛 PD를 기억하자. 지난 2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tbs 비정규인력의 단계적 정규직화를 선언하면서 고 이 PD가 남긴 유서 일부를 언급했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