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막가파식 이재용 판결 인정 못해”

참여연대·경실련 “노골적인 삼성 봐주기 못받아들여” … 안진걸 “충격 넘어 고통스러워”

2018-02-05 19:52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5인에게 상당부분 무죄판단과 집행유예 선고를 한 항소심 재판부에 대해 분노하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합의13부(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는 5일 오후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 및 집행유예 4년,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해 정경유착이 아닌 당시 대통령인 박근혜의 겁박, 측근 최순실 사익추구에 따른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일부 뇌물을 준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의 핵심인 ‘이재용 승계작업을 위한 부정한 청탁’에 대해 승계작업의 존재도, 부정한 청탁의 존재 모두 부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이 이재용의 지배력에 영향을 끼쳤다는 판단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효과가 확인될 뿐 그건 개별 현안의 진행에 따른 여러 효과들 중 하나에 불과하며 안정적 경영권 승계라는 목표성을 갖는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바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승계작업에 대해 박근혜-이재용 사이의 부정한 청탁이 되므로 합리적 의심없이 인정돼야 하지만 인정할 수 없으며, 승계작업이 존재한다 해도 박근혜에게 승계작업을 도와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대통령 박근혜가 승계작업을 인식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묵시적 부정한 청탁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박근혜-이재용 간 승계작업을 매개로 삼성의 승마, 영재센터,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을 한다는 묵시적 인식과 양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따라서 제3자 뇌물수수죄에 대응하는 뇌물공여죄로 기소된 이재용 등의 영재센터 지원, 재단지원행위 혐의는 모두 무죄였다.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 등에게 유죄로 인정한 것은 승마지원 용역대금 36억3484만 원과, 횡령혐의 일부, 범죄수익은닉 혐의 일부, 국회 위증혐의 일부만 인정됐다. 이밖에 미르‧K스포츠재단 204억원의 뇌물 혐의도 박근혜 최순실이 설립하려는 재단에 준 게 아니라 재단법인에 출연한 것이라고 판단해 전부 무죄였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이날 오후 논평을 내어 막가파식 판결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부도덕한 유착’이라는 이 사건의 본질 자체를 부정했다”며 “이번 법원 판결은 적폐의 청산과 사회적 갈등의 처리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 이후 20년 간 진행된 이재용으로의 삼성그룹 승계작업의 존재를 부정하고 수많은 사실관계를 애써 외면함으로써 증거에 눈감고 이성과 정의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판결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양심도 논리도 정의도 잃어버린 사법부의 기만적 행태를 강하게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삼성그룹 등 재벌대기업들이 각종 불·편법을 통해 축적한 부와 기득권을 유지하고 정치권력과 결탁해 그들만의 탐욕과 사익을 추구한 사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명백히 드러나 국민들이 정경유착과 재벌특혜 체제의 말끔한 청산을 호소했다”며 “그러나 오늘 항소심 법원은 이와 같은 정의로운 민심을 완전히 짓밟아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자금 횡령사실을 부인하면서 1심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횡령금액 80억 9095만 원을 항소심 결심 전날인 2017년 12월26일 개인 돈으로 변제한 것을 두고 참여연대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본인이 횡령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도 현재 범죄사실을 다투고 있는 돈을 모두 갚는다는 것은 자기모순의 극치이며, 본인의 유죄를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다”면서 “(그런데도) 사법부는 오늘 재벌총수 이재용‘만’을 위한 판결을 위한 내린 것”이라는 비판했다.

포괄적 승계작업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판단에 대해 이들은 “재벌 봐주기, 이재용에 대한 면죄부라 아니할 수 없다”며 “국민적 상식과 정의에 반하여 자본과 권력에만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또다시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오늘 판결에 깊은 분노와 유감을 표한다”며 “이재용이 저지른 범죄의 의미를 축소하고 사실관계를 엉뚱하게 해석하여 법이 정한 가장 낮은 형량을 선고하고 집행유예로 면죄부를 준 2심 재판부의 판단을 우리 국민들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사법부의 민낯을 확인시킨 난장이라며 국민들과 함께 이재용 등의 범죄행위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며, 대법원이 반드시 부당한 항소심 판결을 바로 잡아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5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봐주기도 이런 봐주기가 없다”며 “모두 다 무죄로 만들고 집행유예로 풀어주기로 작정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안 처장은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할 정도이며 엄청난 충격을 넘어 고통스러울 지경”이라며 “법관과 재판부가 정치 자본권력 등으로부터 독립해야지 상식과 정의, 이를 실현해달라는 국민의 열망으로부터 독립해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안 처장은 “모두가 정경유착이라는 것을 다 안다”며 “박근혜 최순실이 겁박했다 해도 이를 이용해 압도적 자금력과 정보력을 이용해 온갖 부당한 이득을 얻고자 의도하고 또한 누린 사건인데, 그것마저도 부정했다. 재판부가 이재용 앞잡이인지, 이재용 변호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이날 논평을 내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는 우리 사회의 경제정의와 사법정의를 무너뜨리는 실망스러운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부정하게 결탁하여 사익을 취하면서 한국사회의 근간을 훼손한 중대한 범죄이자 삼성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심각한 정경유착 사건이었다”며 “그럼에도 재판부는 1심과 다르게 판단할 증거가 없었음에도 특검의 주장을 불인정하며 감형을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것은 재판부가 국정농단의 주역인 삼성의 범죄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준 참담한 결정”이라며 “법은 모든 국민 앞에 평등해야 한다. 재벌총수라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주는 판결은 한국사회의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도 없어져야 한다. 특검은 여기에서 포기하지말고, 상고를 통해서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