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상품권 페이’ 한 통의 제보가 시작이었다

[미디어 현장] 김완 한겨레21 기자

2018-02-07 10:13       김완 한겨레21 기자 media@mediatoday.co.kr
한 통의 제보가 시작이었다. 짧은 얘기였지만 방송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을 착취구조의 민낯,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르는 지옥도가 보였다. 그는 인간의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았다. 사물(카메라)이었다. 그 기이한 관행을 익숙하게 설명하는 그 목소리는 너무 차분했고, 그래서 더 서글펐다.

임금과 상품권. 언뜻 비슷하게 들리지만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말들이다. 방송가 갑을 구조를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지만, 상품권으로 임금을 준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놀라웠다. 임금은 명확한 법적 정의를 갖고 있는 개념이다. 근로기준법 제 43조는 임금 기준의 4대 원칙을 ‘통화로, 직접, 전액,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강력한 처벌 규정이다.

하지만 방송사에선 이 강력한 규정이 완전히 무용지물이었다. 위법과 탈법의 경계에서 방송가의 ‘갑’들은 ‘관행’이란 이름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왔고, 아무런 윤리적 부담도 갖고 있지 않았다. SBS ‘동상이몽’ 카메라감독이 돈 대신 상품권으로 6개월치 밀린 급여를 받았다는 사실은 단적이었다. 사실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비단, SBS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취재를 할수록 끝이 없었다. 방송사 전체 아니 언론 전체의 문제였다.

▲ SBS ‘상품권 지급’을 폭로한 시사 주간지 한겨레21 제1195호 표지.
‘방송계 갑질 119’에 올라온 제보들을 토대로 다양한 사실 관계를 확인해본 결과, 방송가에선 임금이 많은 경우 ‘상품권으로, 간접적으로, 일부 금액은 체납된 채, 한참 뒤에’ 지급되고 있었다. ‘적폐 청산’이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정의로 자리 잡은 이후 여러 분야에서 충격적인 일들이 드러나고 있지만 방송가의 이 오랜 관행이야 말로 온전한 사전적 의미의 적폐다. 이른바 ‘상품권 페이’를 받는 현장 스태프들은 흔한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한 채, 제대로 된 계약서 한 장 조차 쓰지 못한 채 프로그램 제작에 지금도 참여하고 있다.

불합리한 제작 관행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한빛 CJ E&M PD 사건, 지상파 방송의 ‘전파료’ 상납 관행에 저항하던 중 뜻밖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고 박환성·김광일 독립PD의 사연 등에서 느꼈던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화가 치밀었다. ‘상품권 페이’로 대변되는 방송사들의 갑질은 화려한 방송 산업이 구조적으로 착취해온 열정의 다른 이름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다수의 방송가 비정규직 취재원들은 고백과 증언만으로도 직접적 불이익에 노출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두려움을 딛고 용기 있는 고백에 나선 어떤 이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수십년 전 외침을 지금 방송사를 향해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개탄스러워 생존권을 걸고 나섰다”고 말했다.

‘상품권 페이’ 뿐만이 아니었다. 방송사와 종속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거의 모든 방송 스태프들이 만성적 갑질에 신음하고 있었다. 공채 출신 개그맨들은 노동 착취를 당했고, 지상파 방송 바깥에서 성취를 이룬 CJ E&M에선 ‘출연료 꺾기’가 만연했다. 방송사 주변에서 벌어지는 노동들은 모두 일그러져있었고, 하나 같이 아팠다.

▲ 김완 한겨레21 기자
다행스런 점은 늦게나마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단 점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방송사 노동 현장에 대한 실태 조사를 약속했고, 고삼석 방통위원을 반장으로 하는 5개 부처 대책반은 주요 9개 방송사와의 간담회를 열고 ‘외주제작사와 비정규직 스태프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 차원의 방송사 노동 현황에 대한 실태 조사가 시작되었고,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5개 부처(방통위,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등)가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 차원에서 관련 문제를 실행 조치 할 것을 방송 사업자들에게 통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희망은 오랫동안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숨죽여왔던 방송 비정규 노동자들이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자신들을 대변할 노동조합 등 권리 찾기에 나섰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