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14년 간 달리는 열차 쳐다보는 게 가장 힘들었다”

[인터뷰] 철도노동자들, 긴 해고 터널 뚫고 복직 “이렇게 해고 길줄 몰라… 동료들이 도와줘 버텼다” “진보·노동 파트너십 세워야 보수포위 뚫어”

2018-02-14 14:20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해고된 이후 지난 14년 여 동안 사회보장의 사각지대 놓였다. 공무원연금을 적용받다가 연금이 박탈됐다. 지금까지 납부한 공무원연금의 50%를 돌려받았고, 2009년부터 국민연금을 붓기 시작하니 65세 이후 탈 수 있는 연금은 30만 원이었다. 많은 해고자들은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컸다” (최승우 철도노조 비정규조직국장-2003년 해고)

“파업 전까지 기차를 정비하는 분야에 일하다 해고됐다. 지나다니면서 기차를 볼 때마다 업무로부터 배제됐구나, 노동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저 달리는 기차를 내가 고치고 싶다,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고통스러웠다.” (홍덕표 철도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조직부장-2003년 해고)

“경제 문제 보다 주변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는 게 힘들었다. 한 명이 자살하기도 했다. 해고자들이 힘들어할 때 가족관계가 깨지는 것을 보는 게 힘들었다.”(김영준 철도노조 조직국장-2003년 해고)

코레일(사장 오영식)과 철도노조(위원장 강철)가 지난 8일 해고자 전원복직에 합의했다. 해고자 모두는 98명으로 이 가운데 40명이 지난 2003년 철도공사화 및 구조조정 반대 파업 때 해고됐다. 해고자의 절반 가까이의 해고기간이 14년 여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밖에 2007~2008년 구조조정 외주화 반대 현장투쟁에서 해고된 조합원이 4명, 지난 2009년 허준영 사장 시절 단체협약 일방해지로 파업에 돌입했다가, 해고된 조합원이 44명에 이른다. 또 박근혜 정부인 지난 2013년 ‘수서발 열차 분리’에 반대하며 파업했다가 해고된 10명 등이다. 이 가운데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이명박근혜’ 시절을 거쳐 14년 여에 이르는 긴 해고의 고통을 겪은 철도노동자 3인을 인터뷰했다.

최승우 현 철도노조 비정규조직국장은 지난 1994년 입사했다가 2003년 35세에 파업에 참가했다가 해고됐다. 올해로 50세가 됐다. 당시엔 서울열차승무지부 총무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당시 해고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직책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들은 공무원신분이었기 때문에 해고 무효 다툼을 당시 행자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신청했으나 기각돼 행정소송으로 바로 갔다. 이후 대법원은 정권이 바뀐 뒤인 2008년이 돼서야 확정판결을 했다.

▲ 지난 2016년 11월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관 앞에서 전국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회원들이 성과퇴출제 및 전경련 규탄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해고기간이 길어진 것에 대해 최 국장은 “언젠간 복직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측은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서 ‘사회적 분위기’, ‘윗선’ 등의 핑계를 대며 10년을 그냥 지나쳤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긴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에 대해 최 국장은 “계속 조합활동을 해왔다. 총무국장, 재정국장, 비정규조직국장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고생활을 정말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주어진 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늘 생계와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고 한다. 급여를 조합에서 적게는 120만 원 많게는 200만 원 넘게 지급해줘 근근히 버털 수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이 단체협상을 할 때 늘 해고자복직을 요구하는 등 조합원과 해고자 간의 신뢰와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절차에 따라 해고했는데도 복직결정을 한 것은 사법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조선일보 12일자 칼럼에 대해 최 국장은 “이것이 새로운 질서”라며 “철도의 민영화나 구조조정을 국민이 원하는 건 아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반대하다 해고된 사람을 복직시키는 것이야말로 잘못을 바로잡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새로운 질서”라고 평가했다.

홍덕표(54) 현 철도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조직부장은 지난 2003년 해고당시 40세였다. 철도노조 사무처장을 맡고 있었다. 홍 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부가 2003년 4월 철도민영화하지 않고, 노사정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한다고 해놓고 돌연 6월 의원입법으로 공사화를 추진해 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며 “해고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민영화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파업은 불가피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홍 부장은 이렇게 길게 해고생활을 할 줄은 몰랐다. 노조 활동으로 해고됐다가 합의에 따라 복직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임금인상 투쟁이 아닌 민영화 저지, 철도공공성 지키기를 요구하면서 한 파업이라 해고가 길지 않으리라 생각했다”며 “그러나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복직 가능성이 막혀버렸다”고 말했다.

그 역시 노조 활동을 하면서 긴 시간을 버텼다. 홍 부장은 “노조활동을 하고 현장의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지내왔다”며 “정권교체 등 정세변화의 요인이 있었지만, 조합원들의 힘이 컸다”고 평가했다. 다만 크게 줄어든 연금탓에 노후의 불안감은 여전히 크다.

오는 5~6월 복직을 앞두고 홍 부장은 “해고 기간 길어 실감이 안난다”며 “일을 잘할 수 있을지, 동료에 폐나 끼치지 않을지 불안한 생각도 들지만, 긴 시간 버텨준 가족과 동료들에 고맙다”고 말했다.

‘강성노조’를 비난하는 조선일보 주장에 대해 홍 부장은 “우리는 늘 파업의 목표가 민영화, 공공성 등의 문제였다”며 “늘 정당한 요구를 했다. 철도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정부 정책방향과도 맞다. 그렇다면 해고자 복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준(46) 철도노조 조직국장은 2003년 해고당시 입사 5년 차였다. 그는 당시 정부와 노동계의 충돌과정이 모두 미숙했으며 이제 긴 시간동안의 성찰을 통해 되풀이하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국장은 “지금으로 보면, 당시 노정 관계는 우리도, 정부도 미숙했다”며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에 포위되다보니 정부는 노동계에 조급증을 냈고, 노동계도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급급하다 벌어진 충돌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에 15년 학습을 했기 때문에 진보 개혁세력과 노동이 파트너십을 가져야 보수의 포위를 뚫고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해고 후에도 조합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노조들 보다 해고자 생활이 수월했다”며 “생계와 조합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을 제공했기 때문에 이명박근혜 정부 탄압 거치며 이겨냈다”고 말했다.

역무원인 그는 오는 5~6월 복직을 앞두고 “15년 동안 많이 변했고, 긴 세월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배워 적응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