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능하게 해준 방관자들, 언론은 자유로운가

[김창룡 칼럼] 언론도 그동안 가해자 병풍 역할을 하지 않았는지 자성이 필요하다

2018-02-21 11:54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cykim0405@hanmail.net
안태근, 고은, 이윤택, 조민기…

성폭력 피해자를 손가락질 하지 마라. 그들을 ‘꽃뱀’이니 먼저 ‘꼬리쳤다’고도 함부로 말하지 마라. 용기를 내 오만한 권력과 잘못된 관습에 온 몸을 던져 최후의 저항메시지를 보내는 위대한 고발자들이다.

서지현 검사는 법을 택하는 대신 미디어(JTBC 뉴스룸) 출연을 결정해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호소했다. 법집행자이자 법수호자인 검사조차 법이 아닌 미디어에 나와 성폭력 피해를 고백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충격이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가 법무부 장관을 모시고 상갓집에서 동료 검사들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성추행을 했지만 누구도 말리지도 문제삼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뒤에 그것을 문제삼자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줘 멀리 통영지청으로 쫓아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 현직 여성 검사가 1월29일 자신이 겪은 성추행 경험을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오후에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구체적 증언을 이어갔다. 사진=JTBC
서 검사의 용기있는 고백은 비슷한 처지에서 눈물과 좌절 속에 빠져있던 성폭력 피해자들의 입을 열게 했다. 연극계, 문화계, 학계 곳곳에서 피해자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가해자로 지목된 자들의 시인과 사과, 변명 등이 혼재되고 있다.

최영미 시인이 지목한 ‘괴물’ 고은 시인의 상습 성추행과 성폭력은 아직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고은의 시가 교과서에 실리고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기념사업까지 나서는 사이 그의 문화계 절대권력은 더욱 강고해졌다. 이번 파문이 계속 확산되고 있지만 그는 아직 해명이나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연극계 대부로 불리는 이윤택은 성추행을 넘어 성폭행까지 가해 피해자가 임신과 중절수술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수만 11명에 달한다고 하니 그를 악마로 부르는 국회의원까지 나왔다.

▲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가 2월19일 오전 서울 혜화동 30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피해자들에게 안태근, 이윤택은 악마이자 절대 권력자였다”며 “그들 옆에서 다 보고 듣고 알고 있던 방관자들 역시 공범이며 악마 권력자의 능욕과 범행을 가능하게 해준 조력자이자 방패막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사회 곳곳의 안태근과 이윤택을 다 밝혀내 단죄해야 한다”며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성학대 여성혐오 행위자들은 일제 성고문 범죄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영화계에서 학계로 진출해 주목받았던 배우 조민기씨 행태는 기가 막힌다. 조씨가 교수로 일하던 청주대 연극학과 학생들이 조씨에게 수년간 성폭력을 당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조씨 측은 “명백한 루머”라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경향신문이 전하는 성폭력 의혹의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특히 피해자가 한 두학생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경향신문에 증언한 이들은 2009년~2013년 입학한 재학·졸업생들이다. 피해자들은 조씨가 학교 인근인 청주 안덕벌에 마련한 자신의 오피스텔 등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상습적인 성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연극학과 졸업생 ㄱ씨는 “조민기 교수가 오피스텔로 나와 친구를 부른 뒤 술을 먹이고 침대에 눕힌 다음 가슴을 만지고 강제추행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강제추행 중) 너무 무서워서 도망쳤다. 당시 우리 나이는 고작 스물한 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민기 교수는 술에 취해 항상 여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피스텔로 5분(오피스텔로 5분 내로 오라는 뜻)’이라고 말했고, 전화를 안 받으면 계속 전화했다”고 했다.

안태근, 고은, 이윤택, 조민기 등 가해자들은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첫번째는 피해자들에 대해 절대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었다는 점이다. 가해자들은 사회적 권력을 이용해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배역을 바꿔버리거나 학점이나 학위에 치명적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었다.

▲ 배우 조민기씨.

두 번째 공통점은 가해자의 병풍노릇하는 주변 권력, 추종세력들이 일방적으로 가해자편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조직의 힘을 이용해 피해자 하소연을 인사불만, 배역불만, 학점불만, 명예훼손 등으로 매도할 수 있다. 

세 번째 공통점은 여성의 수치심과 은밀함을 교묘히 이용했고 피해구제시스템의 허술함, 허울 뿐인 법과 제도의 허망함을 악용했다는 점이다. 성폭력은 반드시 법적 처벌을 받고 사회적 응징을 당한다는 의식이 있었다면 이렇게 광범위하게, 이렇게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 어떤 내용이 더 터져나올지 알 수 없다. 일련의 사건들이 언론에 전하는 메시지도 가볍지 않다. 문화권력, 학계권력, 정치권력 등 이른바 우월적 위치에 군림하는 권력자에 대해 그동안 언론이 제대로 감시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계 기자들조차 그들과 술잔을 나누며 본의아니게 병풍노릇한 적은 없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물론 피해자들이 보도를 원치 않아서 보도를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해명으로 넘어가기엔 피해가 너무 광범위하고 너무 깊다.

피해자들에게 먼저 손가락질하는 풍토도 개선돼야 한다. 오죽하면 검사가 방송에 나와 피해를 호소했겠는가. 오죽하면 대학생이 교수의 성폭력을 피해 도망해서 쉬쉬해야 했겠는가. 성폭력 피해신고율이 0.6%라는 데이터는 절망적이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