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삼성 외압 없었다”는 간부 해명, 다 거짓이었나

[기자수첩] 삼성 홍보팀으로 간 SBS 간부와 ‘이재용 보도참사’, 남은 자들의 부끄러움

2018-03-05 16:29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김의성 : 각 방송국, 혹은 언론사 안에 삼성의 X맨들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그런 얘기죠?

주진우 : 네 활약하고 있죠. 언론사의 데스크는 삼성이었던 거죠. 데스크의 데스크는 삼성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전체 언론의 데스크는 삼성이었습니다.

지난 4일 밤 방송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선 누구나 짐작하고 있었지만 모두 함구하고 있었던 삼성의 ‘언론 관리’ 실태가 또 드러났다. 언론사 극소수 기자·간부를 제외하면 알 수 없는 내부 정보를 삼성에 건네준 ‘X맨’들이 있었고, 삼성은 이들을 통제하며 사실상 ‘데스크(편집 책임자)’로 군림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2015년 6월23일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확산 사태에 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식 사과가 있던 날, 삼성은 지상파 3사가 어떤 보도를 할지 미리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지난 4일 밤 방송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방송화면 갈무리.
MBC ‘스트레이트’ 팀은 “이후 KBS와 MBC, SBS의 이 부회장 관련 보도는 이(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이 받은) 문자와 정확히 일치했다”며 “방송 전 MBC 보도국 기자가 기사 작성 단계에서 작성한 제목은 ‘이재용 부회장 사과’. 장충기 사장에게 문자로 보고된 제목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자진납세’했다. 이날 MBC ‘뉴스데스크’ 기사는 경제부 기자가 작성하고 배현진 전 앵커가 직접 리포트하며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이 과정에서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김장겸 전 MBC 사장과 최기화 전 보도국장이 장충기 사장과 밀접한 관계였음은 ‘스트레이트’ 팀 취재 결과 밝혀졌다. SBS 역시 비슷한 시기 이재용 부회장 관련 리포트 앵커멘트 수정 사실이 드러나 크게 파문이 일었다. [관련 기사 : SBS 이재용 비판 기사 수정, 외압 논란]

하지만 당시 해당 리포트를 직접 수정하라고 지시했다는 방문신 전 SBS 보도국장은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와 SBS 기자협회 측에 “삼성으로부터 연락받은 바 없다”고 해명했다. 해당 앵커멘트는 삼성병원 비판이라는 의도와는 무관하게 구성과 형식이 주는 이미지적 요소 때문에 제3자들이 ‘SBS가 이 부회장을 직접 겨냥한 의도가 뭘까’라는 억측 또는 잘못된 메시지로 전파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7월3일 SBS ‘8시뉴스’리포트 갈무리. 이날 뉴스가 끝난 뒤 신동욱 앵커멘트와 화면이 완전히 재편집됐다.
지난 1월 효성그룹 홍보실장(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당시 최영범 전 보도본부장 역시 “만약 (삼성 쪽) 전화를 받았으면 오히려 찜찜해서 고치지 못했을 것이고 항의나 부탁도 전혀 없었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SBS 노조와 기자협회가 제기한 삼성 외압 논란은 4일 ‘스트레이트’ 보도로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게 SBS 기자들의 반응이다.

SBS 내부에선 그때도 ‘삼성 측의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고 보도국장 등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방 전 국장은 보도국의 사기 저하와 명예 실추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누가 삼성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리포트 정보를 사전에 유출했는지까진 밝혀내지 못했다.

이후 SBS 기자협회는 “우리는 삼성 사내 방송인가. 참담하고 부끄럽다”로 시작하는 성명을 냈다. 기자협회는 “외압이 없었으니, 떳떳하다는 것인가? 외압보다 심각한 내부 검열을 마주한 것 같아 현장 기자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며 “앵커멘트의 비판 수위가 과했다는 ‘세심한 잣대’는 힘 있는 자들에게만 내어주는 편리한 ‘이중 잣대’로, 거대 경제 권력 앞에서 스스로 몸을 낮춘 초라한 결과만이 무겁게 남아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일 밤 방송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방송화면 갈무리.
SBS의 이재용 리포트 재편집 논란이 일었을 때는 사주인 SBS 미디어홀딩스 윤세영 회장의 영향력이 충분히 미칠 수 있던 시점이었다. 아울러 SBS 보도본부 부국장 출신의 백수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 팀장과 방 전 국장 등이 가까운 사이였다는 건 SBS 기자들 사이에서 삼성과의 ‘거래’를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정황이었다.

“문화일보,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물론이고요. 도와주십시오. 저희는 혈맹입니다.”

문화일보 광고국장이 장충기 사장에게 보냈다는 이 문자는 삼성과 한국 언론의 유착 관계를 보여주는 수치스러운 기록이다. 하물며 공공의 전파를 삼성에 헌납하다시피 한 지상파 간부들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으로 가는 현실이다. 그 무책임과 부끄러움은 남은 자들의 몫이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