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개척단’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미디어 현장] 이조훈 영화감독

2018-03-20 10:17       이조훈 영화감독 media@mediatoday.co.kr
2013년 가을, 충남 서산시 인지면 모월3리의 백만 평 농지에서는 추수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이 풍성한 벌판에 선 농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곳에서 추수를 하던 농민 정영철 씨가 그 이유를 이야기했다.

“여기가 내 땀과 피로 만든 농지여. 20년을 갈고 닦은 땅인데 이게 내 땅이 아니란 말이여.”

정영철 씨를 비롯해 ‘서산개척단’에 단원으로 납치되거나 관리를 위해 파견 나오거나, 혹은 결혼을 위해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은 총 15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에 대한 사연은 지난 3월2일 방송했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간재생공장의 비극 - 대한청소년개척단을 아십니까?’ 편을 통해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5년간 취재를 하면서 알아낸 사실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60분 분량으로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내막이 숨겨져 있었다. 거기에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후 정권 안정을 위해 ‘사회명랑화사업’이라는 명분으로 국토개발사업을 활용한 군부집권세력의 정치자금 확보를 위한 철저한 기획이 존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정희 정권은 ‘서산개척단’과 같은 간척사업을 통해 미국에서 원조금 약 1조6천억 원(현 시세)을 지원받아 대부분 불법정치자금으로 유용했다.

1954년 미국의 공법 480조에는 ‘저개발국이 국토개발 사업을 할 때 양곡과 지원금을 원조하는 평화를 위한 식량 사업’이 있었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1961년의 대한민국은 미국의 법에 따라 저개발국으로 분류됐고, 이미 이승만 정권시절부터 이 사업을 통해 전국 몇몇 사업장에서 이 원조금을 통한 국토개발사업이 진행돼고 있었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기 직전인 1961년 5월1일, 강원도 산간 일대에서 ‘한국합심자활개척단’을 꾸려 이 원조금을 통해 개발사업을 시작했던 민간인 사업자는 그 유명한 ‘거지왕 김춘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사쿠데타를 성공한 박정희 군부세력은 이 사업의 유용함을 알게 됐고, 거지왕 김춘삼을 비롯한 민간 사업자들을 활용해 미국 원조금을 받아내는데 힘을 쏟게 된다. 이를 실행하는데 앞장 선 사람은 당시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종필이었다. 그는 이 사업을 추진하기위해 전국의 청년들을 끌어들이기 좋은 민간인 중계자로 거지왕 김춘삼을 활용한 것이다. 고아원 원장으로서 많은 부랑아들과 전쟁고아들을 거느리고 있던 그가 이 청년들을 국토개발사업장으로 데려가 일을 시키면 자연스럽게 개발단 단원이 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청년들이 국토개발사업장의 노동착취와 인권탄압을 견디지 못 하고 도망가 버리는 데서 발생했다. 자고 나면 도망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개발사업에 차질이 생기자 박정희 정권은 보건사회부를 통해 다른 형태의 개발사업을 추진하도록 했고,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이었던 정희섭이 전국의 140개 간척사업장을 미국 원조사업 대상 사업장으로 지정하게 된다. 그리고 군사혁명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총으로 위협하여 청년들을 납치해 강제노역을 시키게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산의 사업장으로 끌려온 사람들이 바로 정영철 씨와 같은 서산개척단 단원들인 것이다.

▲ 이조훈 영화 ‘서산개척단’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에서 관객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담아내지 못한 박정희 정권의 대국민 사기극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다. 감히 기대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