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의 무한도전

[비평] ‘무한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무모한 도전’을 계속해야했던 ‘무도’ 제작진의 분투…그들은 예능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줬다

2018-04-04 12:10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4년 11월21일. 기사로 담지 않았던 김태호PD와의 통화내용이 취재수첩에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요새 몸이 안 좋다. 병원 갈 시간도 없다. 이번 주도 평균 새벽 3시에 들어갔다. 능력 있는 외부 조연출은 올해에만 세 명이 빠졌다. 다들 JTBC로 갔다. JTBC가 공세적이다. 새로 조연출이 바뀌고 하다 보니 편집과정에서의 사고도 지난번에 발생했다. 노홍철은 본인이 본인의 행동에 책임진다고 했다. 언제 돌아올지는 우리도 모른다. … 올해까지는 갈 것 같은데 내년 라인업이 문제다. 노홍철이 빠지면서 많은 것들을 새로 짜야 한다. 10주년 특집도 생각했던 것들을 대부분 수정해야 한다. ‘여드름브레이크’ 시즌2도 못할 것 같다. 지금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멤버에 대해서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 MBC '무한도전'. ⓒMBC
“호평을 받았을 땐 ‘이번 주가 마지막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다음 주가 두려웠다.” MBC ‘무한도전’의 종영을 앞둔 지난 3월30일 기자간담회에서 김태호PD는 “몇 년 전부터 무한도전의 색깔을 지켜 가는 게 힘든 상황이 돼서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지고 자괴감까지 왔었다”고 말하며 자신을 두고 “탈탈 털어서 건조기에 건조까지 한 느낌”이라고 평했다. 그는 “그래서 다시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지쳐있었다. 10년 넘게 대한민국 예능 최강자의 자리를 지켰지만, 동시에 10년 넘게 메인연출을 맡으며 살인적 노동 강도를 버텼다. ‘왕관의 무게’는 그를 짓눌렀다. 그는 하루 평균 16시간을 일했다.

사실 김PD는 타이밍을 놓쳤다. 그는 더 일찍 떠나고 싶었던 것 같다. 2014년 10월 무한도전 400회 기자간담회에서 김PD는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기자는 “김PD가 생각하는 무도의 마지막 아이템, 마지막 장면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김PD는 “신파적으로 끝내는 것도 무한도전답지 않다. 축제적인 분위기로 끝낼 것 같다”고 답했다. “여느 예능프로그램들은 손가락질을 받으며 운명이 끝난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박수치는 분들이 있을 때, 박수치는 분들이 남아있을 때, 마무리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의 소망 또한 예능PD로서는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김PD는 2013년 3월26일 한 대학에서 진행된 멘토 특강에서 ‘무한도전’을 언급하며 “10년째 멋있게 콘서트하면서 퇴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멤버들을 위해서라도, 저를 위해서라도 그게 좋을 것 같지만 회사에서 허락을 해줄 진 모르겠다”고 밝혀 당시 ‘무한도전 종영설’이 확산되기도 했다. ‘무한도전’은 2015년 5월 10주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10주년에서 막을 내리지 못했다. 무한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무모한 도전을 계속해야 했다. 무한도전은 경영진에게 대체재가 없는 수익모델로, 절대 ‘종영설’이 확산돼선 안 될 운명이었다. 이는 김PD가 조합원으로 속해있던 언론노조 MBC본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무한도전은 시청자 여러분께도 특별한 프로그램이지만 MBC 구성원들에게는 특히 영원히 잊지 못할 프로그램입니다. 13년의 긴 세월 동안 대한민국 예능의 최고봉이었을 뿐 아니라 MBC의 생명력을 유지시켜줬다고 해야 할 프로그램입니다. 무한도전이 아니었으면 MBC는 아마 진작 잊혀졌을지 모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김태호PD와 멤버들은 쉼 없이 달리고, 또 싸움을 위해 프로그램을 멈춰야 할 때는 멈췄습니다. 2012년 파업 때 ‘무한도전을 보고 싶다’며 ‘공영방송 회복’을 외쳐 주시던 많은 국민들이 생각납니다. 10년의 긴 싸움 와중에 무한도전은 언제나 우리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최승호 MBC사장)

박근혜정부 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변했던 MBC에서 김태호 조합원은 파업했다고 차별받지 않는 사실상 유일한 ‘유대인’이었다. 그의 ‘건재함’은 파업에 나섰다 취재현장에서 쫓겨나 ‘잉여인력’으로 배제된 수많은 MBC 조합원들에게 힘이 되었다. 언젠가 재건해야 할 MBC의 브랜드를 지켜나가는 유일한 버팀목은 ‘무한도전’뿐이었다. 어쩌면 MBC노사 모두 이미 항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낡은 배가 되어버린 ‘무한도전’에게 항해를 강요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 김태호 MBC 예능PD. ⓒMBC
그는 숱한 압력과 회유에도 버텨내야만 했다. 2012년 170일 파업 당시 MBC경영진은 ‘무한도전’ 폐지설을 흘리며 복귀를 압박했다. 하지만 그는 ‘무한도전 파업특별편’을 제작하는 식으로 받아쳤다. 사상 초유의 24주 연속결방의 상처는 컸다. 2011년 1월부터 파업 직전인 2012년 1월까지 ‘무한도전’은 평균 16.6%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가구기준)을 기록했지만 파업 이후 9.8%(2월)→6.9%(3월)→6.0%(4월)→5.0%(5월)→4.8%(6월)로 추락을 거듭했다. 7월 첫째 주 방송에선 3.5%라는 굴욕적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파업현장을 지켰다. 업무 복귀 직후 김PD는 7월24일자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업무에 복귀하니 환영해주는 게 서글프다”며 도리어 제작현장에서 쫓겨난 동료들을 걱정했다.

김PD는 2016년 경영진으로 보직간부 제안을 받기도 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기 전이었다. 반기문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보직간부 제안과 함께 노조 탈퇴 요구를 받았다. 그는 당시 MBC노조의 사내 영향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였다. 김태호PD는 경영진이 회유를 위해 가장 애를 썼던 조합원이었다. 그가 노조를 탈퇴할 경우 동요할 조합원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PD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지난해 8월24일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스스로 간부자리를 원한 적도 없었을 뿐더러, 그때만 해도 노조가 회사의 부당한 인사와 징계로 맞서 싸울 힘이 부족한 풍전등화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탈퇴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2005년 4월23일 황소와의 줄다리기로 시작했던 ‘무한도전’이 종영했다. ‘무모한도전’ 26회, ‘무리한도전’ 26회, ‘무한도전’ 563회. 13년. ‘무한도전’은 인간적이었다. ‘무한도전’에선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지금까지 예능은 오직 연예인만 등장했지만, 여기선 FD와 작가, VJ들의 땀과 웃음까지 보였다.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모습이 매일매일 진보를 위해 나아가는 공동체를 보는 느낌이었다. 1년 간 벼농사를 지었던 예능. 1년 넘게 온 몸의 피멍을 각오하며 수플렉스를 연습해 기어이 환상적인 레슬링 경기를 선보였던 예능. 무작정 알래스카에 김상덕씨를 찾아갔던 예능. ‘무한상사’로 직장인들을 웃기고 울렸던 예능. 차세대리더 선거로 시청자를 투표장으로 이끌며 민주주의를 알려준 예능. 그들은 예능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줬다.

▲ '무한도전' WM7특집의 한 장면.
▲ '무한도전' 차세대리더 선거 투표 용지.
김태호PD는 “예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자며 시작했다. 제작진의 자존심, 멤버들의 자존심이 우리를 가혹하게 몰아붙여 왔던 것 같다”(400회 기자간담회)고 말했다. ‘무한도전’은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끝없이 도전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쉼 없이 나아가야 했던 그들은 이제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다. 스스로 낡은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침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13년간 항해했던 배를 스스로 불태웠다. 김태호PD와 ‘무한도전’은 새로운 것을 위해 소멸과 해체를 택했다.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의 루크 스카이워커처럼.

2011년, 예능PD들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대해 취재하다 김태호PD·나영석PD와 통화한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시즌제를 강조했다. 김PD는 “우리도 이제 격주 연출이나 시즌제 도입 같은 방식을 고민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고, 나PD는 “프로그램이 잘 나가는데 시즌제를 할 경우 회사가 받아 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나영석PD는 얼마 안 가 시즌제를 할 수 있는 CJ로 떠나 날개를 달았다. 김태호PD는 ‘아우슈비츠’에 남았다. 그는 끝까지 ‘왕관의 무게’를 짊어지고 MBC 동료들과 ‘무한도전’ 시청자들에게 예의를 갖추고자 분투했다. 그가 오늘날 MBC재건의 순간이 오기까지 MBC 예능PD의 자리를 지켜내고 MBC본부 조합원의 자리를 지켜낸 것이, 그에게는 무모한 도전이었고 무리한 도전이었으며 무한도전이었다. 이젠 우리가 그에게 박수쳐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