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의 실마리, 검찰이 밝혀야 할 ‘조선일보 방 사장’

장자연이 만난 인물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동생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장자연 모친 기일에 방상훈 아들 ‘방정오’도 만나… 방정오 “나는 전혀 무관”

2018-04-03 22:14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지난 2일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가 2차 사전조사 대상 사건 5건 중 하나로 지난 2009년 불거진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선정하면서 당시 검·경 수사가 미진했던 부분을 재조사로 밝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검찰 과거사위는 “지난 2월20일부터 이날까지 4차에 걸친 논의 끝에 과거사 정리의 의미와 사건의 중대성, 국민적 관심 등을 고려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에서 신중하게 2차 사전조사 대상 사건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장자연씨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지난달 28일 종료된 이 청원에는 무려 23만5796명이 서명에 참여하는 등 국민적 관심이 높았다.

과거사위는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 대해 “검찰이 관련된 인권 침해 또는 검찰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소위 말하는 ‘장자연 문건’에 31명 정도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중에 실제 기소로 이어졌던 사람은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 둘뿐이었다”며 “하지만 강요죄나 강요방조죄 등은 전부 무혐의였다. 과연 이런 사람들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한번 짚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故 장자연씨 영정이 그의 발인인 지난 2009년 3월9일 오전 성남시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장자연 문건 ‘조선일보 방 사장’은 방상훈 사장이 아니었다

앞서 ‘장자연 문건’ 관련 인물로 지목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의혹 제기자들에게 건 소송 사건 변호인이었던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제 검찰도 답변할 때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3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이 의원은 특히 장자연 문건 등장인물 중 ‘조선일보 방 사장’과 관련해 “문제가 됐던 조선일보 대표는 우리가 관련 서류를 보면서 실제 소환조사가 이뤄졌는지를 좀 유념해서 봤다”며 “그런데 통상적인 소환조사 방식이 아니라 별도의 장소이거나 아니면 서면조사 방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민적 관심이 높고 그야말로 조선일보라는 유력 일간지의 실명이 달린 문제에 진짜 결백하다면 오히려 더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했어야 관련된 오해가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나온 언론 보도와 이 사건을 추적해 온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장자연씨가 남긴 자필 문서에서 적힌 ‘조선일보 방 사장’은 조선일보 대표이사인 방상훈 사장이 아니라는 게 합리적 결론이다.

지난달 28일 KBS 보도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지목된 방상훈 사장에 대한 방문조사와 통신조사를 벌인 결과 방 사장이 문건 속 ‘조선일보 방 사장’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경찰은 ‘조선일보 방 사장’은 장씨가 스포츠조선 A 사장을 착각한 것이라며, A 사장에 대해선 강요방조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2008년 7월 만난 ‘조선일보 사장’은 조선일보 전직 기자

또 장자연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2009년 8월 방상훈 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후 내린 불기소이유서를 보면 장씨의 소속사 대표였던 김종승씨는 2008년 7월17일 스케줄표에 ‘조선일보 사장 오찬’이라고 기재했다. 검찰은 이 ‘조선일보 사장’은 스포츠조선 사장을 지칭하는데, 비서가 잘못 기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김종승 대표가 장씨 등과 함께 만났다는 ‘조선일보 사장’은 스포츠조선 사장도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겨레21은 지난 2일 기사에서 “그날 김 대표를 만났던 이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도, 스포츠조선 사장도 아닌 조아무개 조선일보 기자였다”며 “김 대표의 비서가 메모를 잘못한 기록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수사를 한 경찰은 스포츠조선 사장을 조사하며 “2008년 7월17일 스케줄에 나온 식당에서 홍아무개 회장, 이아무개 칼럼니스트와 같이 3명이서 점심식사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확인됐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은 “검·경은 김종승 대표의 비서가 조아무개 조선일보 기자를 ‘조선일보 사장’이라고 잘못 기술한 메모 등을 끌어와 이 모임에 참석한 이가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이 아닌 ‘스포츠 조선 사장’이라고 결론 냈다”고 지적했다.

▲ 지난달 28일 KBS ‘뉴스 9’ 리포트 갈무리.
조선일보 역시 이 같은 검찰의 잘못된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2011년 3월9일자 지면 기사를 통해 “장씨가 쓴 ‘조선일보 사장’은 조선일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의 전 사장인 것으로 명백히 확인됐다”며 “장씨가 문건에 ‘조선일보 사장’이라고 쓴 것은 자신에게 성 상납을 강요한 연예기획사 대표 김씨가 평소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그냥 ‘조선일보 사장’으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장자연과 만난 ‘방 사장’은 방상훈 동생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그러나 장씨가 ‘조선일보 사장’이라고 착각했을 만한 사람 중 실제 장씨와 만난 것으로 확인된 인물은 방상훈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다. 2007년 10월 신인배우였던 장씨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중식당에서 방용훈 사장과 스포츠조선 사장 등 9명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 동석했다는 것은 법정 증언에서도 거듭 확인된 바 있다.

방상훈·방용훈 형제와 방성훈 현 스포츠조선 사장은 사촌 관계다. 방성훈 사장은 방상훈 사장의 삼촌인 방우영 전 조선일보 회장의 장남이자 현 조선일보 이사다. 그는 방상훈 사장(30.03%)에 이어 조선일보 2대 주주(21.88%)로 알려졌다. 향후 조선일보 지배 구조에서 두 사람은 경쟁 관계라는 시각도 있다.

스포츠조선 전 사장의 법정 증언에 따르면 2007년 10월 저녁 자리엔 당시 CNN 한국지사장, 주한미대사관 공사, 민아무개씨, 한아무개 사장이 참석했다. 그리고 이 자리의 식사비는 방용훈 사장이 냈다.

하지만 경찰은 방용훈 사장에 대해선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KBS는 “당시 경찰 관계자는 ‘방용훈 사장이 식사자리에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김종승 대표의 신병 처리에 집중하다 보니 조사를 하지 못했다’며 ‘방 사장’에 대한 핵심 진술을 확보하고도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토했다”고 보도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KBS 측에 “누가 주재했든 간에 그 사람을 조사할 이유는 없는 거죠. KBS 사장이 주재했다고 그 사람을 조사해요? 불러서 안 오면?”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한 검사는 ‘경찰이 방용훈 사장과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혼동한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한겨레21의 질문에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이 검사는 “경찰에 방용훈 사장을 수사하라고 수사 지휘를 했지만, 범죄 혐의를 입증할, 범죄를 구성할 근거가 안 나와서 못했다”고 해명했다.

방상훈 아들 방정오 TV조선 전무는 유흥주점에서 장자연과 술자리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차남인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전무도 검찰의 소환조사를 피해간 사람 중 한 명이다. 장씨의 로드매니저였던 김아무개씨는 경찰 조사에서 “2008년 10월28일 자신이 운전해 여의도로 가던 중 김종승이 정아무개 감독에게 ‘조선일보 사장 아들이 그 자리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언급했고, 장자연을 집에 데려다줄 때도 그런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10월28일은 장씨 모친의 기일이었다. [관련기사 : 방사장 증인 출석 논란…재조명되는 장자연 사건의 진실은?]

▲ 조선일보 주주 구성.
김종승 대표는 지난 2012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 대한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명예훼손 사건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이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한 유흥주점에서 방상훈 사장 아들 방정오씨도 동석한 술자리를 가졌으며, 그 자리엔 장자연씨와 한아무개씨, 한씨의 후배 등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자리 술값 200만 원은 김 대표가 결제했다.

김 대표는 법정 증언에서 동석한 방정오 전무에 대해 “그는 오래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면서 “장자연, 한아무개씨 등이 서로 친하다. 장씨가 오디션 끝나고 가다가 한씨를 만난다고 하니 잠깐 왔다 간 자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방 전무는 지난 2009년 경찰 조사에서 ‘(술자리에) 늦게 갔다가 일찍 나온 것은 맞다’면서도 ‘장자연은 얼굴도 모른다. 이 사건은 나와 전혀 무관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장씨의 매니저 김씨는 “김 대표의 심부름으로 룸에 양주 1~2병을 가져가니 룸에 남자와 여자가 섞여서 몇 명 있었으며 술집 아가씨들도 있었다”며 “그날 주점 밖에서 늦은 시간까지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장자연이 차에 와서 누군가와 통화했고 어머니 기일이라고 하면서 울다가 다시 주점으로 내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김성훈(김종승의 가명) 사장님 강요로 얼마나 술접대를 했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방사장님이 잠자리를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장자연씨가 자필로 남긴 문서에 등장하는 ‘조선일보 방 사장’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 역시 국민이 검찰 과거사위와 대검 진상조사단에 바라는 진상규명 과제다. 술 접대와 성 상납 강요죄는 공소 시효(7년)가 끝나서 처벌할 수는 없지만, 성범죄는 공소시효가 최소 10년이어서 법적인 단죄도 가능하다.

이제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배우입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장씨와 같은 피해자가 더는 생기지 않도록 그에게 약속하는 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