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끄러움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아야 하는가

[미디어오늘 1144호 사설]

2018-04-04 09:46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지난 2월13일 서울중앙지법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신 회장이 법정 구속되자 한 언론사 간부는 “그나마 삼성은 풀려놔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앞서 2월5일 서울고등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신 회장과 이 부회장 모두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뇌물 혐의를 받았지만 삼성은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봤고, 롯데는 공적 가치를 훼손한 뇌물이었다고 판결하면서 운명이 엇갈린 것이다. 언론사 간부의 말인즉슨 “신 회장이 구속돼서 롯데는 당분간 광고물량이 줄어들겠지만 삼성은 이제부터 풀릴 것이니 한숨을 돌렸다”는 것이다.

기업CEO의 운명에 따라 언론 매체의 광고 물량이 결정되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올리 없다. 이재용 부회장의 집행유예 선고는 뇌물의 정의를 따져보고 과거 뇌물 혐의의 판례들을 비교해 부당한 점이 없는지 철저히 따져봐야 할 사안이었지만 일부 소수 언론만의 보도에 그쳤다. 반대로 대다수 언론들은 이재용 회장의 ‘석방’에 무게를 두고 경제 파급력을 고려한 판결이라는 보도를 내놨다. 대표적으로 중앙일보는 “법원 ‘정경유착 없었다’ 이재용 석방”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집행유예 선고도 엄연히 유죄인데 마치 이 부회장이 무죄을 받은 것처럼 제목을 뽑은 것이다. 이처럼 삼성과 언론의 유착은 광고를 무기로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 언론이 비판적인 기사를 쓰지 않으면서 작동한다.

이 같은 유착관계에 놓인 기자 한명 한명의 민낯을 보여준 게 ‘삼성 장충기’ 문자다.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이 기자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보면 참담할 지경이다. 한 경제지 기자는 승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삼성의 면세점 사업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도 했다. 장 전 사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 기자들은 하나같이 단순 안부 및 감사 차원의 인사라고 둘러댔지만 경영권 승계 작업의 핵심이었던 국민연금 내부 상황과 청와대 내부 동향을 전하는 내용은 사실상 ‘보고’에 가깝다. 언뜻 보면 수직관계에 있는 직장 상사와 부하가 나눈 대화 내용처럼 보인다.

▲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지난 1일 ‘삼성 장충기 문자’를 추가 공개했다. 이 가운데에는 단순 안부 차원 문자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고 이를 넘어선 노골적인 칭송내용도 적지 않았다.  그래픽=이우림 기자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더욱 참담한 것은 민낯을 대하고도 당사자들이 속한 매체의 기자들이 ‘영업 잘한 선배’라면서 오히려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고위급 인사와의 친분 관계가 곧 기자의 능력이 되고, 이를 인정받으면 승진하는 구조에 놓여있다 보니 ‘삼성 장충기 문자’ 따위에 분노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는 식이다.

SBS가 지난달 19일과 20일 삼성 편법 승계를 위해 땅값을 조작한 정황을 발견하고 실체를 추적하는 보도를 내놨지만 대부분 언론이 침묵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SBS 보도가 나오자 일명 언론인 모임 채팅방에는 삼성의 반론 입장문이 쉴새없이 올라왔다.

검찰이 다스 소송비 대납 수사를 위해 삼성그룹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노조 와해 전략이 담긴 문건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종합편성채널과 유력 일간지 매체가 철저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검찰이 발견한 문건 중에는 지난 2013년 공개된 ‘S그룹 노사전략’ 문건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당시 삼성은 문건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부인했고 언론은 삼성의 입장을 반영해 문건의 실체를 분석하거나 아예 문건의 존재를 보도하지 않았다. 검찰이 해당 문건을 떡하니 삼성 안에서 발견했는데 이제는 뭐라고 할 것인가. 언론이 어떤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 삼성 옹호에 나설지 아니면 침묵을 지킬 것인지 궁금하다.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 연합뉴스


삼성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오래된 관행으로 치부하고 비아냥만 늘어놓는 것은 어쩌면 이들 입장에선 가장 반길 일일지도 모른다. 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이 만들어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으로 돌아간다.

언론이 삼성이 아닌 독자를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부끄러움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둬선 안된다. 언론사 안팎으로 감시의 눈을 두고 삼성 문제에 왜 침묵을 하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한국 사회 진정한 언론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적어도 장충기 문자 같은 것들이 공개되면 기자들이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