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때 공익소송 패소한 시민단체에 방통위 “소송비 내놔라”

MB때 시작하고 박근혜 정부 때 승소한 소송, 문재인 정부 방통위가 소송비 요구…“승소했으니 요구하는 게 당연” vs “공익소송 성격 감안해야”

2018-04-09 18:03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시민단체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인권운동사랑방은 최근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 때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하고 박근혜 정부 때 패소한 공익소송에 대해 현 정부 방통위가 갑자기 소송비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인권운동사랑방은 지난달 말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각각 소송 패소에 따른 소송 비용 1650만 원과 2313만 원을 지급하라는 ‘최고서’(채무자에게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청하는 문서)를 받았다. 함께 제시된 소송비용 계산서에는 방통위측 1, 2, 3심 변호사 착수금 및 성공보수를 비롯한 소송 비용이 쓰여 있었다.

앞서 두 단체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공익 소송’을 벌인 바 있다. 한총련에 홈페이지 호스팅을 제공했던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방통위가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다수 담겼다는 이유로 한총련 사이트 폐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불복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인권운동사랑방과 또 다른 시민단체 ‘노동전선’은 같은해 방통위가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이 북한을 찬양한다는 이유로 삭제를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 시민사회단체가 이명박 정부 때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하고 박근혜 정부 때 패소한 공익소송에 대해 현 정부 방통위가 급작스럽게 소송비를 요구하고 나섰다. 디저인=이우림 기자. ⓒ gettyimagesbank

이들 단체는 문제가 된 게시글을 쓰거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경찰의 요구에 따른 방통위의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위반’이라는 판단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가보안법은 UN 인권이사회가 폐지를 권고하는 등 악법이고 △사법부가 아닌 방통위가 법 위반을 판단할 자격이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2015년 패소 판결을 받았다.

방통위는 소송비 청구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3년 만에 소송비를 청구한 이유에 대해 “지난 1월 감사원 재무감사 지적사항으로 나온 것”이라며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소송이 끝난 당시에 행정처리를 했어야 하는데 기존에 행정이 누락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승소했으니) 당연히 정산해야 하는 것이고, 오히려 기존에 하지 않던 게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요구하지 않던 소송 비용을 현 정부 방통위가 급작스럽게 요구하고 나선 데 대해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소송의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는 “당시 경찰이 인터넷 공간을 광범위하게 장악하려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경찰의 실적주의에 따른 과도한 표현의 자유 침해가 벌어졌기 때문에 대응한 것이다. 게시물의 잘잘못을 떠나 모두 지운다면 북한에 대한 토론조차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대 국회 때 경찰로부터 제출받은 ‘불법 정보 삭제요청 건수’를 보면 삭제요청한 인터넷상 불법정보가 2010년 7만9382건, 2011년 7만7300건에 달해 2012년1만2541건, 2013년 1만3996건과 비교해 월등히 양이 많다. 당시 경찰이 무리하게 온라인 게시물에 대응했다는 점이 드러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사적인 문제로 분쟁이 발생한 게 아니라 정책, 법 적용에 문제가 있다는 차원에서 제기한 공익소송”이라며 “소송비용이 엄청나게 나오게 되면 공익소송 자체를 위축시키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해 철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류 활동가 역시 “다른 민사재판과 같은 방식으로 소송 비용을 국가가 제기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공익소송에도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게 지나치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앞서 2007년 부산녹색연합 등 부산지역 환경단체들은 ‘명지대교 건설 공사착공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패한 뒤 부산시로부터 소송비용을 청구받자 “공익소송에서 패소한 원고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현 제도는 소수의 시민으로 하여금 공익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압박이 될 수 있다”며 문제 개선을 위한 서명운동과 입법청원운동을 벌였다.

송상교 변호사는 지난해 9월4일 한겨레 기고를 통해 “공익인권소송이나 경제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가 당사자인 사건에 대해서는 소송 당사자가 패소했다고 하더라도 소송비용의 부담을 감액하거나 면제하는 규정을 도입할 수 있다”면서 “적어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경우 국가가 국민에게 거액의 소송비용을 청구하는 것을 제한하는 규정이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