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성추행 조사받던 조선일보 전직 기자 ‘의문’의 무혐의

[장자연 사건 추적 ②] 경찰 “피의자 아내 검사라서 수사 어려워”… 검찰, 목격자 구체적 진술 안 믿고 피의자 주장 인정

2018-04-26 10:04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저는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09. 2. 28. 장자연”

지난 2009년 3월7일 꿈을 제대로 채 펴보지도 못한 신인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기고 간 문건은 방송·연예계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던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과 충격을 줬지만 이런 비참한 일은 단지 고(故) 장자연씨만 겪었던 게 아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 장자연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 구조와 왜곡된 성인식 문제의 구체적인 실태 파악과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여성 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실시했다.

실태조사 결과, 조사 대상(여성 연기자 111명, 연기자 지망생 약 240명 등 총 351명) 중 △연기자의 60.2%는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술 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연기자도 45.3%에 달했다.

지난 2009년 3월7일 신인 배우였던 장자연씨가 자신의 이름과 사인, 지장 날인이 적힌 자필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노컷뉴스
아울러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연기자 48.4%가 이를 거부한 후 캐스팅이나 광고 출연 등 연예 활동에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연기자 58.3%는 술 시중과 성 상납을 거부하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여성 연기자들이 노동(연예활동)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성적·신체적 자기결정권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적 상황 속에 놓여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여성 연기자의 취약한 인권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인 사법기관마저 이들을 외면했다면? 장자연씨가 남긴 자필 문건에 등장하는 사회 유력 인사들, 술자리를 함께한 이들 중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은 장씨의 소속사 대표 김종승씨뿐이다. 지난 2013년 10월 대법원은 장씨에 대한 김씨의 폭행 혐의만을 인정해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미디어오늘은 장자연 사건 관련 검·경 수사기록을 입수해 살펴보던 중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린 14명의 피의자 중 유독 한 사람의 불기소 이유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9년간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있었으며 지난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조아무개(49)씨다. 조씨는 2009년 장자연 사건으로 조사받을 당시 국내 한 사모투자전문회사 상무이사로 재직 중이었다.

조씨를 조사한 경기 분당경찰서는 그의 장자연씨에 대한 강제추행과 강요방조 혐의를 인정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08년 8월5일 장씨의 소속사 대표 김종승의 생일날 조씨가 장씨를 성추행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장씨의 동료 윤아무개씨는 경찰 조사에서 조씨가 술자리에서 했던 말과 행동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 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연기자의 60.2%가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윤씨는 조씨가 김종승의 생일날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한 한 유명 여배우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으며 당시 김씨의 지인들이 김씨에게 어떤 선물을 했는지 명확히 설명했다. 윤씨의 진술에 따르면 저녁 식사 후 이동한 서울 청담동 M 가라오케에서 장자연은 테이블 위에 올라가 ‘마리아’라는 노래를 불렀으며, 조씨가 폭탄주를 만들어 돌렸다. 조씨는 이 자리에서 ‘여자가 팔뚝에 근육이 있으면 보기 싫다’ ‘꽃이 활짝 핀 것보다 꽃봉오리가 있는 애가 좋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도 윤씨는 전했다.

그런데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시 현장에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 모 경제신문 A사장에게 성추행 혐의를 덮어씌우려 했다. 조씨는 A사장이 그 술좌석에 참석해 자신과 서로 통성명을 하는 등 인사를 나눴고, 장자연이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출 때 자신을 향해 넘어져 피했는데 옆에 있던 A사장이 성추행을 한 것처럼 진술했다.

장자연 성추행 혐의 경찰 수사 결과, 검찰에서 뒤집혔다

이에 대해 경찰은 “조씨가 비교적 세상 물정에 밝은 유력 신문사의 기자로 오랜 기간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그의 처는 현직 법조인(검사)으로 일반인에 비해 법적 판단 능력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단순히 강요방조죄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면서까지 거짓 진술을 했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조씨가 거짓 진술한 데에는 반드시 숨겨야 하는 어떤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마침 당시 윤씨가 (예전에 받은) A사장의 명함으로 인해 피의자를 A사장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A사장이 현장에 참석했고, 장자연이 A사장 쪽으로 넘어졌다고 진술함으로써 A사장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가 확정되면 자신의 혐의를 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

경찰이 적시한 조씨의 범죄사실을 보면 그는 장자연이 피의자 김종승의 협박에 의해 자신을 위한 접대 자리에 참석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피해자에게 ‘전 한나라당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라는 신분을 밝히며 김종승의 강요 혐의를 방조하기도 했다.

경찰은 “조씨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해 혐의가 확정될 경우 자신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장자연의 동료 목격자) 윤씨의 진술에 대한 모순점을 분석, 이를 근거로 결백을 주장했다”면서 “그러나 윤씨가 일관되게 강제추행에 대한 목격 사실을 진술하고 있고 기타 참고인 등의 진술로 보아 범행이 인정된다”고 기록했다.

지난 3일 KBS ‘뉴스 9’ 리포트 갈무리.
조씨가 경찰 조사에서 거짓 진술로 사실을 숨기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그가 장자연을 성추행했다는 생생한 모습을 봤다는 목격자까지 있었음에도 검찰은 그의 범죄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김형준 검사)은 2009년 8월19일 장자연 사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조씨를 비롯한 14명의 성매매·성매매 알선·강제추행·강요방조 등 13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특히 검찰은 조씨의 강제추행 무혐의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했는데 조씨의 추행 장면을 목격했다는 동료 윤씨가 진술을 여러 번 번복하는 등 문제가 있어 그대로 믿기 어렵고, 조씨를 포함해 사건이 벌어진 날 함께 있었다는 다른 참고인들이 모두 성추행 사실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는 이유에서다.

경찰 조사에서 제3자에 성추행 혐의 덮어씌우려 했던 전 조선일보 기자

2008년 8월5일 장자연의 기획사 대표 김종승의 생일날 김 대표, 조씨, 장씨, 윤씨와 함께 가라오케에 있었던 사람은 변아무개·이아무개 B 사모투자펀드 공동대표였다. 만약 윤씨의 성추행 증언이 인정된다면 김 대표는 강요죄로, 나머지는 강요방조죄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혐의를 부인한 술자리 참석자들은 구속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진술을 짜 맞추거나 증거를 인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윤씨의 경찰 1회 진술은 여러 가지를 조합해 만든 거짓이었고, 경찰 2회 진술은 피의자(조씨)보다는 실제 A사장에 더 가깝고, 최면 상태에서 한 진술은 조씨를 지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점에 비춰 신빙성에 의심이 있다”며 “조씨에 대한 거짓말탐지 검사 결과가 ‘거짓’ 반응이 나온 사실만으로는 피의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씨가 경찰에서 처음에 성추행 가해자가 조씨가 아닌 A사장이라고 했던 이유는 자신이 갖고 있던 A사장에 대한 명함을 김종승의 생일날 조씨로부터 받은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기록에는 “윤씨가 조씨의 이름을 몰라 명함 속의 인물인 A사장으로 생각한 것일 뿐, 처음부터 장자연을 추행한 남자에 대한 인상착의를 설명한 사람이 조씨라고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다”며 “윤씨는 나중에 조씨가 조사받는 장면이 촬영된 동영상을 보고 분명히 장자연을 추행한 사람이 맞다고 지목했다”고 나와 있다.

검찰은 또 윤씨가 경찰 2회 진술에서 말한 가해자가 조씨보다 A사장에 더 가깝다고 했지만, 이 같은 판단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윤씨의 가해자에 대한 진술은 “나이는 약 40대 중반이고 신장은 약 168 정도, 체격은 보통이고 안경은 착용하지 않았고 얼굴형은 넓은 편이면서 긴 편이고, 머리 스타일은 양 머리가 짧은 편이고, 밝은 계통의 남방을 입은 것으로 기억한다”였다. 앞서 윤씨는 가해자가 “일본어를 유창하게 잘 했다”고도 설명했다.

조씨가 누명을 씌우려 했던 A사장의 경우 당시 49세(60년생)였으며 조씨는 40세(69년생)였다. 게다가 A사장은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조씨는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다만 조씨의 키는 검찰 조사에서 177cm인 것으로 확인됐다.

▲ 배우 고(故) 장자연씨가 지난 2009년 2월27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힌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모습. ⓒ 연합뉴스
김종승 대표 역시 검찰 조사에서 윤씨가 말한 가해자의 인상착의와 관련해 “신장으로 봐서는 이아무개(B 사모투자펀드) 대표인데, 이 대표가 나이는 50대 중반인가 되고 얼굴형도 조그맣고 긴 편이 아니며 머리가 단정한 편”이라며 “그래서 얼굴형만 보면 조씨와도 가깝다”고 진술했다. 그렇지만 김 대표도 “장자연이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춘 것은 사실이나 조씨나 다른 사람이 장자연을 추행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자연 수사 경찰 “피의자 부인이 검사라서 수사가 어려웠다”

그러나 김 대표 역시 조씨와 돈독한 친분으로 조씨의 성추행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실제 김 대표는 자신의 생일날 ‘장자연이 2009년 2월27일자 백상예술대상에서 입었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는 윤씨의 진술에 대해 “그 드레스는 협찬이기 때문에 전혀 사실이 아니고 생일 때는 어깨끈이 다 있고 무릎 바로 밑에까지 오는 검정색 드레스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장자연씨가 백상예술대상에서 입은 드레스는 어깨끈이 없고 신체 노출이 많은 흰색 드레스였다. 이에 대해 검찰은 장자연과 가깝게 지낸 지인을 참고인으로 불러 장자연이 백상예술대상에서 입은 드레스를 장씨가 직접 구입한 것인지, 협찬을 받은 것인지 물었다. 이에 장씨의 지인은 “2007년 또는 2008년 봄에 청담동에 있는 웨딩프라자에서 샘플 세일 행사할 때 구입했다”는 장씨의 친언니 말을 전했다.

윤씨는 검찰 참고인 진술에서도 “조씨는 장자연의 차량 조수석에 타고 올 때에도 ‘이런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하는 식으로 그때부터 말을 많이 걸었다”며 “내가 조씨의 맞은편에 앉아 있어 잘 볼 수 있는 자리였는데 (조씨의 추행 행위 직후) 잠깐 조용해졌다가 다시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분위기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당시 장자연 언니가 술에 많이 취해서 그런지 인상을 쓰거나 기분 나쁘다고 김종승에게 말하지는 않았다”며 “장자연 언니가 술이 취하기 전부터 조씨는 장자연에게 ‘팔뚝이 굵니 뭐니’ 기분 나쁘게 말을 했다. 그런데도 당시 김종승 대표가 가만히 있기에 나는 조씨가 높은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실제 조씨는 아주 ‘높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1995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9년간 사회부·경제부·정치부 기자를 거친 후 2003년 퇴사한 전직 언론인이자 금융회사 임원이다. 2004년엔 한나라당 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당시 여당 후보에 밀려 낙선한  유력 인사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의 아내는 현재 부산지검 검사로, 대검찰청을 거친 후 장자연 사건 때는 서울남부지검에 재직 중이었다. 

이달 초 KBS는 뉴스 리포트와 인터넷 기사를 통해 “장자연 사건 무혐의 결정을 받은 의혹 가운데 강제추행 공소시효(10년)가 확실하게 남은 사건도 있다”고 조씨 관련 혐의 의혹을 언급하기도 했다. KBS는 “경찰과 검찰 수사 결과가 극명하게 엇갈린 사건”이라며 “그의 부인이 검사라서 수사가 어려웠고, 소환을 요구해도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경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미디어오늘은 24일 장자연 사건 피의자로 지목됐던 조씨에게 검·경의 수사 축소·은폐 의혹뿐만 아니라 그 역시도 수사 과정에서 억울하게 수사권 남용 피해를 받았는지 묻기 위해 전화와 문자, 메신저로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관련기사) [장자연 사건 추적 ①] “장자연 사건 수사 때 조선일보 압력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