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년 만에 언론자유분야 모범생이 되다

아시아 언론자유 상황 암담한 가운데 한국만 언론자유 회복세 주목
“문재인 정부, 공영방송에서 10년 째 계속되던 갈등을 종식시켰다”
“여전히 언론 향한 시민들의 의구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지적도

2018-04-25 15:39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국경 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을 둘러싼 아시아의 언론자유 상황은 암담 그 자체다. 바로 북쪽에는 언론자유 세계 최하위 국가 북한(180위)이 있다.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만이 유일하고, 모든 정보전달 체계가 국가의 통제 아래 있다. 북한에선 해외언론의 보도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강제수용소에 갇힐 수 있다. 한국의 바로 옆에는 중국(176위)이 있다. 이곳에는 현재 50여명의 언론인이 구금돼 있는데 상당수가 학대를 당하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은 점점 전체주의체제와 유사해지고 있다. 외신기자들의 보도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SNS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사적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감옥에 갈 수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시진핑은 전례 없는 수준의 검열과 감시를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동원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중국은 정보 검열 시스템, 인터넷 감시 체계를 수출하고 있다. 중국의 욕망은 아시아에서 여러 추종자를 낳고 있다”고 우려했다.

▲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8 언론자유지수를 세계지도로 시각화한 이미지. 색이 진할수록 언론자유가 없는 국가다.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대만과 함께 언론자유국가로 분류되었다. ⓒ국경 없는 기자회
예컨대 베트남(175위)에선 정부비판적인 주제를 블로그에 올릴 경우 최대 15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캄보디아(142위)에선 2017년 30개 이상의 독립 매체가 사라졌고, 언론인들을 근거 없이 감옥에 가두는 일이 벌어졌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중국식 언론 통제는 태국(140위), 말레이시아(145위), 싱가포르(151위)에서도 감지된다”고 밝혔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미얀마(137위)에선 지난해 집단학살에 가까운 로힝야 사태가 벌어졌지만 정부가 관련 보도를 통제하고 있다. 취재를 시도했던 로이터 통신 기자 2명은 지금도 감옥에 갇혀있다.

앞선 사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인도(138위)에선 확인된 것만 최소 3명의 언론인이 지난해 살해됐다. 여성 차별·힌두 우월주의·카스트제도를 비판했던 ‘란케시 파트리케’ 주간지 편집장 가우리 란케시가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아프가니스탄(118위)에선 지난해 15명의 언론인들이 살해됐다. 필리핀(133위)에선 두테르테 대통령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가리켜 “창녀의 자식들”이라고 위협하며 강도 높은 탄압을 예고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43위)의 모습은 매우 특별하다. 대만을 제외한 아시아 전 지역이 언론자유의 후퇴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눈에 띄는 언론자유 개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국경 없는 기자회는 “인권운동가이자 과거 정치범이었던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한국의 언론 자유 상황은 전환의 계기를 맞았다”고 평가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한국 언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벌인 투쟁 과정에서 그들의 투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 관련기사 : 2018 대한민국 언론자유지수 43위… 미국보다 자유롭다 ]

국경 없는 기자회의 오랜 문제의식은 세계적으로 언론인에 대한 적대감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언론혐오’(미디어포비아)가 세계적 추세라는 것. 유럽에서도 언론에 대한 정치인들의 언어폭력이 증가세라는 지적이다. 체코(34위)의 밀로시 제만 대통령은 “기자들을 위해”라고 새겨진 가짜 소총을 들고 기자회견에 나타나기도 했고, 러시아(148위)의 푸틴은 러시아투데이(RT) 같은 극우매체를 통해 대놓고 선동을 확장하고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언론자유지수 순위가 (지난해 대비) 가장 많이 떨어진 다섯 나라 중 네 개가 유럽 국가(몰타, 체코, 세르비아, 슬로바키아)”라고 지적했다. 멕시코(147위)에선 지난해 11명의 언론인이 살해당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 크리스토퍼 들루아르 사무총장은 “언론인에 대한 증오 확산은 민주주의에 닥친 최악의 위협 가운데 하나”라고 우려하며 “언론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지도자들은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선전 선동 대신 사실에 바탕을 둔 대중의 토론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사례는 국경 없는 기자회가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 언론으로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국경 없는 기자회는 “문재인 정부는 공영방송 MBC와 KBS에서 10년 째 계속되던 갈등을 종식시켰다”고 평가하면서도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독립성 보장을 위해 공영방송 경영진을 지명하는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며 시민 중심의 사장선출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이는 현재 언론운동진영이 요구하고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와 흐름을 같이 한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또한 “언론인의 보도를 억압할 수 있는 명예훼손죄가 형법 상 규정돼있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으며 국가보안법 폐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지적들이 가까운 시일 내 법·제도의 변화로 이어진다면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는 더욱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잊어선 안 되는 지점이 있다. 끊임없는 기자들의 각성과 성찰이다.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여전히 언론과 언론인을 향한 시민들의 의구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그만큼 한국 언론과 언론인의 부끄러운 행태는 그 역사도 길고 수준도 심각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