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리스트’야말로 특검이 필요하다

[시시비비] 안타까운 죽음의 진실, ‘침묵’을 끝내라

2018-04-26 09:08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media@mediatoday.co.kr
시민들이 고(故) 장자연 씨를 다시 세상에 불러냈다.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장 씨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힘을 보탰다. 4월 2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을 사전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번에는 안타까운 죽음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2009년 사건 발생 당시 경찰과 검찰의 수사는 상식 밖이었다. 장자연 씨가 남긴 문건에는 연예계, 재계, 언론계 인사 30여 명이 등장한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40명이 넘는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27곳을 압수수색하고 14만여 건의 통화내역을 조사했다면서, 고작 7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 송치했다. 검찰은 한술 더 떠서 단 두 명, 장 씨의 전 소속사 대표와 전 매니저를 기소했다. 그마저도 죄목이 각각 폭행과 명예훼손이었다. 접대 강요, 성상납 강요 부분은 전혀 밝히지 못했고, 장 씨는 우울증 탓에 목숨을 끊은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조선일보 방 씨 일가 수사, 안 했나 못했나?

최근 몇몇 언론을 통해 경찰과 검찰이 과거 수사과정에서 핵심 관련자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당시 장자연 씨와 유족 계좌에 고액 수표 수십 장이 입금됐다고 한다. 1억 원 넘는 돈이 들어왔고, 입금한 사람은 20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은 ‘김밥값으로 줬다’는 따위의 주장을 펴며 대가성을 부인했고, 검찰은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어준 모양이다. 수사결과 발표에는 고액 입금 부분이 쏙 빠졌었다.

한편 조선일보 방 씨 일가는 수사에서 ‘성역’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장자연 씨가 남긴 문건에 나오는 ‘조선일보 방 사장’의 실체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조선일보 사주와 관련된 사람을 장 씨가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경찰은 ‘조선일보 방 사장’이 방상훈 사장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방상훈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 주관한 2007년 10월 모임에 장자연 씨가 동석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그를 조사하지 않았다. 수사를 지휘한 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경찰에 방용훈 사장을 수사하라고 수사지휘를 했지만, 범죄 혐의를 입증할, 범죄를 구성할 근거가 안 나와서 못했다”고 말했다. 방상훈 사장의 아들 방정오 씨(TV조선 대표이사전무)도 2008년 10월 장 씨와 술자리를 함께했다는 구체적인 진술이 나왔지만 검찰조사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조사가 이뤄진다면 검찰은 관련자들을 철저하게 수사할까?

“어둠의 세력 밝혀내라”던 조선일보, 재조사 여론에 ‘침묵모드’

그동안 조선일보는 장자연 씨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다른 ‘전략’을 취해왔다.

2009년 사건 직후에는 일종의 봉쇄 전략을 폈다.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단어 자체를 틀어막으려 했다. 조선일보는 국회에서 “조선일보 방 사장”을 언급한 이종걸 의원을 비롯해 국회의원, 정당인, 시민단체 활동가, 언론인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 고소했다. 또 ‘보도에 참고 바란다’는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해 실명 보도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기세에 눌려 극소수 인터넷매체를 제외한 대부분 언론사들이 ‘○○일보’, ‘고위임원’ 등의 표현을 썼다.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시민단체 인사들은 ‘우리가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는지부터 명확하게 밝히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등 언론시민단체들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2011년 조선일보는 ‘부실수사의 피해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당시 SBS는 이른바 ‘장자연의 편지’를 추가 보도했고, 경찰은 이것이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부실수사 때문에 아직도 온갖 풍설이 나돈다’, ‘일부 정치세력의 악의적 공격으로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들의 누명을 벗겨주지 못했다’며 수사당국을 질타하고 “장자연 사건 뒤에 숨은 어둠의 세력을 밝혀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장자연 씨가 ‘스포츠조선 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으로 착각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펴며, 경찰 조사 일부를 인용해 전직 스포츠조선 사장 A씨를 슬쩍 언급하기도 했다.

2018년 미투운동으로 장자연 씨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지금, 조선일보는 ‘침묵 모드’다. 어둠의 세력을 밝혀내라던 호기롭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지면에서도 방송에서도 ‘드루킹 의혹’만 넘쳐난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씨 사건을 “검찰이 관련된 인권 침해 또는 검찰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시민들은 검찰이 부실수사를 뒤집고 진상규명을 해낼지 걱정스러워 한다. ‘장자연 리스트’야말로 특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미 2009년 민언련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고 장자연에 대한 성상납강요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을 국회에 청원한 바 있다.

어쩌면 이번이 장자연 씨 죽음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조선일보에게도 특검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