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디어 ‘원수’를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분석] ‘약한 고리’ 공략한 넷플릭스, LG유플러스와 제휴·유재석 출연 오리지널 콘텐츠 선보이며 눈길…통신사 제휴로 안정적 망 받고 가정 진출, ‘범아시아’ 콘텐츠로 경쟁력 확보

2018-05-02 11:33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넷플릭스의 파격적 행보가 연일 주목받고 있다.

최근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 탑재를 홍보하는 내용의 광고를 발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회사의 제휴 사실이 드러났다. LG유플러스는 올해 하반기부터 LG유플러스의 IPTV와 OTT(Over The Top, 인터넷동영상서비스)서비스인 비디오포털에 넷플릭스 콘텐츠를 선보인다. 

이번 제휴는 예상 밖의 일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한국 진출을 공식화했을 때부터 통신사와 계약을 추진했다. 당시 통신사에서 일했던 관계자는 “모든 통신사와 계약을 논의했지만 배분 비율 등 조건이 안 맞아 무산됐다”면서 “우리 입장에서는 당시만 해도 국내 이용자에게 매력적인 넷플릭스 콘텐츠가 충분하지 않아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도 없었다”고 했다.

▲ 넷플릭스와 LG유플러스가 제휴를 맺었다. ⓒgettyimagesbank

넷플릭스는 왜 통신사와 제휴를 추진했을까. 김조한 칼럼니스트는 지난해 출간한 저서 ‘플랫폼 전쟁’에서 “원수였던 케이블TV·유료방송 기업을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게 넷플릭스의 전략"이라고 했다. 지난해에만 넷플릭스는 30개국 유료방송 사업자와 제휴를 맺었다.

넷플릭스가 이 같은 제휴를 선호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데이터 비용 절감과 안정적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서다. 넷플릭스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운영에 막대한 ‘데이터 비용’이 든다. 이용자가 접속할 때마다 미국 서버에서 영상을 가져오는 대신 ‘망’을 갖춘 통신사들이 국내에 데이터를 복사한 ‘캐시서버’를 두면서 해외 서비스를 원활하게 했다. 그러나 통신사가 캐시서버 제공 대가를 천청부지로 올려도 저항하기 힘들고 속도를 제어할 안정적 서비스 공급이 힘들다는 문제가 생긴다. 넷플릭스가 통신사와 제휴해 안정적 망을 공급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모바일이나 PC전용 서비스가 아니라 ‘N스크린 서비스’다. N스크린 서비스는 다양한 기기에서 즉각 이어보는 서비스인데, 특히 넷플리스는 고화질과 고음질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TV를 주요 기기로 삼았다. 넷플릭스가 가정의 셋톱박스를 장악한 케이블이나 IPTV 사업자와 제휴를 통해 패키지로 묶이면 TV진출이 수월해진다. 현재 LG유플러스는 300만 명 가량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반대로 LG유플러스도 이번 제휴가 필요했다. 넷플릭스는 흔히 시장의 후순위 사업자와 제휴를 맺고 시장을 잠식하는 방식으로 ‘약한 고리’부터 깬다고 알려졌다. 후순위 사업자 입장에서는 경쟁사를 제압하기 위해 넷플릭스를 활용할 이유가 충분하다.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지난달 16일 주주총회에서 “홈미디어와 사물인터넷(IoT) 업계 1등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통신시장 ‘3등’ LG유플러스는 차세대 미디어 부문에서 ‘적극적 제휴’를 통해 반전 기회를 엿보고 있다. LG유플러스는 HBO와 독점 계약을 맺었고 최근에는 네이버와 제휴해 인공지능 스피커시장에 진출하고, 구글과 제휴해 ‘유튜브 키즈’를 선보였다. LG유플러스는 통신3사 가운데 유일하게 TV제조사가 계열사로 있어 홈미디어 시장은 중요한 무대다.

우여곡절 끝에 통신사와 제휴를 맺어 안정적 망을 공급받으며 가정에 진출하면 넷플릭스 서비스는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국내 가입자 추정치는 20만~30만 명으로 현재까진 영향력이 미미하다. 한국 OTT산업 자체가 성장이 더딘 데다 여전히 유력 콘텐츠 다수를 푹(지상파)과 티빙(CJ E&M)이 쥐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번 제휴를 발판으로 다른 통신사와 제휴 가능성도 높아졌고 동시에 안정적 망을 공급받으면서 한국 시장에 투자 규모도 키울 가능성이 높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범인은 바로 너' 제작발표회. 사진=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는 지난 1일 오리지널 예능 ‘범인은 바로 너’의 제작을 발표했는데, 공교롭게도 ‘런닝맨’에 출연한 유재석, 이광수가 주축이고 과거 런닝맨 PD들이 제작을 맡았다. 넷플릭스가 아시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런닝맨’의 제작진과 출연진을 택한 것은 타깃이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이라는 점을 뜻한다.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와 통신사 제휴가 시너지를 내 넷플릭스의 규모가 커진다면 오롯이 ‘한국 이용자를 위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도 가능하다.

넷플릭스는 앞으로 한국 미디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또다른 IPTV사업자인 KT와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제휴 가능성을 고민하면서도 이번 제휴가 ‘망사용료 인하’ 요구로 이어지는 걸 우려할 가능성이 높다. 통신 분야를 주로 취재하는 전자신문이 지난달 26일 “넷플릭스와 제휴, 반갑지만 않은 이유”란 제목의 사설까지 내고 “망 사용료 산정이나 수익 분배 등에서 저자세로 임하기보다 당당하게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콘텐츠 사업자 입장에서는 기회다. 넷플릭스와 계약해 전 세계 190개국에 진출할 수 있다. 지난 1월 넷플릭스 로버트 로이 콘텐츠 수급 담당 부사장은 “우리 역할은 한국 콘텐츠 팬 층을 전 세계로 넓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콘텐츠 공급에 적극인 JTBC와 스튜디오드래곤의 콘텐츠는 이미 해외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소개되고 있다.

적지 않은 언론이 넷플릭스의 ‘성공 여부’에 주목하지만 중요한 건 넷플릭스가 한국에 미치는 ‘효과’ 그 자체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 당시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방대한 양의 이용자 정보를 기반으로 한 넷플릭스의 추천 시스템을 배워야 한다”면서 “지상파 방송사를 식당에 비유하면 지금까지 손님이 많이 왔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어떤 연령대의 손님이 어느 시간에 방문해 어떤 반찬을 선호하는지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없었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넷플릭스 진출 이후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와 OTT서비스를 통합한 ‘옥수수’를 선보이면서 콘텐츠 추천기능을 도입했다. 지상파가 만든 OTT플랫폼 ‘푹’ 또한 지난달 업데이트를 통해 ‘콘텐츠 취향 분석’과 추천 기능을 도입했다. 푹과 티빙 모두 지난해 실시간 방송을 무료로 전환하는 등 서비스 변화를 추진했다. 한국에서 넷플릭스는 단순히 가입자 수로 평가받을 수 없다. 이미 넷플릭스는 국내 뉴미디어 동영상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