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다음날 하이힐에 정장 입고 현충원 강제 봉사

[6·13 언론 사각지대] 여성 노동자 소품 취급 없어져야… 새벽에 집 앞에서 노무팀 만나기도… 여성 노동자의 삶 일깨운 ‘상애원’

2018-05-05 09:03       이정호 기자 leejh67@mediatoday.co.kr

권수정(45) 정의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1번 후보는 1995년 6월5일 아시아나항공에 스튜어디스로 입사했다. 권 씨는 입사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화장하고 검은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현충원에 모이라고 지시 받았다. 권 씨는 현충일 조문객에게 묘비 안내 자원봉사를 했다. “말 한마디에 쉬는 날 모두 불려 나온 그때를 생각하면 참 우스워요.” 지금 드러나는 항공사 오너의 갑질은 빙산의 일각이다.

권 씨는 충북 괴산에서 나고 자랐다. 경찰인 아버지와 독실한 감리교인 어머니 아래 딸만 넷인 집안의 장녀였다. 권 씨도 자연스레 모태신앙 속에 자랐다. 당연히 집안은 보수적이었다. “감리교는 좀 낫지 않아요?”라고 했더니 “도긴개긴”이라고 했다.

1988년 고등학교부터 청주로 나와 유학했다. 수학과 물리를 좋아해 물리학자를 꿈꿨다. 넉넉지 않은 살림 때문에 국립대를 가야 했다. 집에서 가까운 충북대를 놔두고 굳이 충남대(91학번)를 택한 이유는 옆에 카이스트가 있어서다. 학부는 충남대로 가지만, 대학원은 카이스트로 가서 물리학자가 되고 싶어서다.

그러나 물리학은 녹록지 않았다. 머리가 안 따라갔다. 그제야 부모가 원했던 교사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1994년 5월 대전의 한 중학교로 교생 실습을 갔다. 한 달 남짓 교생 실습하던 중에 그 학교 교사가 휴가 나온 군인 친구랑 여성을 성폭행해 구속됐다. 2천만 원을 내야 사립학교 교사가 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실습 마지막 주에 짓궂은 학생을 체벌하는 자신을 보면서 교사의 꿈을 접었다.

대학 4학년. 막막했다. 재스민차를 시키는 과 선배에게 반해 스튜어디스로 방향을 틀었다. “전 그때 재스민 차를 처음 알았어요. 차 맛이 너무 좋았어요.” 그 선배가 스튜어디스였다. 6개월 바짝 영어 공부해 아시아나 공채시험을 봤다. “충청권에서 300명이 지원했는데 2명만 뽑혔어요.”

“어쩌다 노조 일을 하게 됐냐”고 물었다. “고등학교(1988~1990년) 때 바로 옆 청주대엔 늘 최루탄 냄새가 났어요. 보수적인 가풍 때문에 대학 때도 운동권과 거리가 멀었어요.”

권 씨는 입사 한 달도 안 된 1995년 6월29일 음악회에도 동원됐다. 거기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봤다. 회사는 여기저기 행사장에 소품처럼 승무원을 동원했다. 손톱, 머리, 복장검사도 질렸다.

비행 중에 면세품을 팔다가 불려갔다. 관리자는 “같은 액수의 영수증 2개 나왔다. 둘이 짜고 친 거냐”고 따졌다. 바쁘게 일하다가 실수한 직원을 범법자 취급했다. 권 씨가 입사한 1995년부터 4년간 임금은 동결됐다. 이런 불만이 1999년 4월 노조결성으로 이어졌다.

아시아나항공노조는 회사와 1년을 교섭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2001년 6월12일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때 열심이었던 권 씨를 눈 여겨 본 노조 위원장이 대의원 출마를 권했다. 이렇게 2002년부터 노조 간부가 됐다. 권 씨는 2005~2007년 공공연맹(현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으로 파견 나왔다가 현장으로 돌아갔고, 노조 위원장을 마치고도 다시 돌아가 비행기를 탔다. 2013~2014년 민주노총 여성위원장 땐 노조 전임도 아니었다. 유럽 장거리 비행을 다녀와 곧바로 민주노총 회의에 들어갔다. 중소기업중앙회 계약직 여성노동자가 2014년 성희롱 문제를 제기했다가 정규직 전환대상에 탈락하고 해고(계약만료)되자 자살했다. 권 씨는 민주노총 여성위원장으로 이 사건에 적극 개입했다.

2001년 3천여 아시아나항공노조원은 회사의 집요한 탄압으로 크게 줄었다. 노조 하면 진급 밀리고, 많이 탈퇴 시키면 빨리 진급하는 관행이 생겼다. 2011~2012년 노조 위원장할 땐 회사 노무팀이 새벽에 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오너 일가를 비판하는 피켓팅 하러 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비행 때마다 엉뚱하게 시비 거는 고객들 때문에 배후를 의심하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 심리치료도 받았다.

정의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권 씨는 2006년 원주의 사회복지시설 ‘상애원’ 싸움을 떠올렸다. 권 씨는 “10여 명을 이끌고 재단의 폭압에도 끝까지 복지노동자의 자존감을 지켰던 박은자 지부장을 보면서 여성노동자가 마음 놓고 일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선거운동에 나서면서 권 씨는 세상의 수많은 여성 직딩들에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실패하고 좌절할지라도 거기서 멈추지 말고 곁을 돌아보면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