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 때문에 ‘버스업계 구인난’, 사실일까

준공영제 이후 버스업계는 채용 비리가 생길만큼 구직난에 시달려

2018-05-09 09:06       이정호 기자 leejh67@mediatoday.co.kr

노동시간 단축 때문에 ‘버스업계 구인난’, 사실일까

한국경제신문이 ‘준비 안된 주 52시간... 산업현장 우왕좌왕’이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로 또 노동시간 단축에 딴지를 걸었다. 한경은 1면에 이어 4,5면까지 털어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한경의 오늘자 4면 관련기사 ‘특례업종 제외 버스기사.사회복지사 업무 공백 비상’이라고 했다. 한경은 이 기사에서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버스기사의 노동시간 단축 때문에 1만 2천명을 신규채용해야 하는데 버스회사들이 ‘구인난’ 때문에 ‘운행 대란’이 우려된다고 했다. 요즘처럼 심각한 구직난에 사람을 못 구해 운행에 대란을 빚는다니. 버스업계를 잘 모르는 소리다.

▲ 버스기사 구인난을 우려하는 오늘자 한경 4면(위쪽)과 지난해 11월 7일 한겨레신문 9면 버스기사 채용비리 기사
2000년대 초에만 해도 자격증만 있으면 버스기사는 누구나 취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 준공영제가 실시되고 나서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버스기사가 되려면 뒷돈을 줘야 하는 게 당연시 됐다. 준공영제로 고용여건이 다소 나아지자 너도나도 버스기사 취업에 매달리는 바람에 업체 뒷돈을 줘서라도 입사하려는 기사들이 줄을 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연 채용비리도 자주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부산 시내버스 업계의 ‘뒷돈 입사’는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됐다. 그나마 청렴하다는 서울시도 예외가 아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해 11월 7일자 9면에 ‘버스기사도 채용비리... 노조지부장이 청탁 중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조지부장이 채용 대가로 돈을 받아 회사 대표한테 건네준 의혹을 보도했다. 전,후임 노조지부장 사이 갈등 때문에 불거져 나온 당시 채용 비리 의혹을 담은 녹음파일엔 적나라한 버스업계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당시 녹음파일을 전해 준 노조 간부는 “500만원 이상을 줘야 기사로 취업된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했다.

뒷돈까지 주고 입사하려는 판에 ‘구인난’이라니. 채용 공고만 내면 노선버스 기사들은 줄을 섰다. 오히려 언론이 걱정해야 할 데는 따로 있다. 가파른 산비탈 노선이 많고 낡은 차량이 많은 마을버스 업계의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 마을버스 기사들은 딱 두 종류로 나뉜다. 마을버스엔 30대 젊은 기사와 50~70대 중고령 기사만 있다. 한 마을버스 회사에 40대 장년층 기사는 많아야 1~2명에 불과하다. 젊은 마을버스 기사들은 장시간 저임금을 견디면서도 오직 시내버스로 옮겨 타려는 사람들이다. 50~70대 중고령층 기사들은 오갈데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의 혜택을 입은 시내버스 업계로 30대 젊은 마을버스 기사들이 대거 몰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위험한 마을버스는 오롯이 중고령층 기사들의 독차지가 될 게 뻔하다. 언론은 낡은 차에 늙은 기사들이 모는 마을버스 업계의 위험천만한 현장을 취재하는 게 실체적 진실에 더 근접하는 길이다.

정작 버스기사 구인난에 시달리는 곳은 따로 있다. 준공영제를 실시하는 서울, 부산, 인천 바로 옆에 있는 준공영제 미실시 지역이 그곳이다. 준공영제 실시로 인해 기사들 처우개선이 일부 이루어지자 준공영제 미실시 지역의 기사들이 준공영제를 하는 지역의 버스회사로 이직하고 있다.  그 바람에 준공영제 미실시 지역에선 구인난이 일어나고 있다. 

평생 담담하게 ‘노동’을 담았던 거장의 죽음

▲ 세계일보 25면 에르마노 올미 감독 부고기사
영화 '나막신 나무(1978년)', '성스런 술꾼의 전설(1988년)' 등을 만든 이탈리아 영화감독 에르마노 올미가 지난 6일 86세의 나이로 숨졌다. 올미 감독은 이탈리아 북동부 도시 아시아고에서 지병으로 영면했다.

노동과 인간 정신을 끊임없이 사색했던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이다. 올미 감독은 1952년 전기회사에 노동자로 입사해 산업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40여 편을 만들었다. 영화는 스스로 체득했다. 신인 배우들을 적극 발굴했는 올미 감독은 노동자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이탈리아 후기 네오리얼리즘을 이끌었다.

주목받은 작품 ‘나막신 나무’는 19세기 롬바르디아 평야의 한 소작농 가정의 일상을 세밀하게 담았다. 요란한 정치적 수사도 없이 고된 농업 노동자를 담아내 조용하게 불평등을 고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밀레의 그림처럼 담담하고 어두운 농업노동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메라는 동정 어린 감상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이 촘촘하게 노동을 그린다. 고단한 노동 뒤로 걸어가는 농부의 어깨 위로 소리없이 안개가 내려앉는다. 아이들은 난로 옆에서 다 식은 저녁 밥을 먹고 있다. 영화는 어떤 기교도 부리지 않고 3시간 동안 농부를 지켜본다.

거장의 죽음을 부고기사로 애도한 신문은 많지 않았다. 세계일보가 25면에 ‘伊 영화 거장 올미 감독 별세’라는 딱 2문장짜리 1단기사를 실었다. 너무도 인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