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문건’에 괴로워했던 장자연, 억울한 죽음의 진실은

[장자연 사건 추적 ④] 연예소속사·유명 배우들 분쟁 휘말리며 이용당해… 법원 “연예계 구조적 비리 고치고 고인 위로해야”

2018-05-12 09:44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장자연의 문서, 유서라고 주장했으나 사실이 아니었지요. 문서를 실제로 작성토록 한 사람은 당시 이○○(유명 여배우)씨의 매니저였어요. 그렇게 작성된 문서가 곧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기 시작했어요.”

이상호 전 MBC 기자(현 고발뉴스 대표기자)는 2012년 6월5일 케이블TV tvN의 대담 프로그램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방송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가 배우 이아무개씨로부터 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노만경 부장판사)는 2013년 1월23일 배우 이씨가 이상호 기자 등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둘러싼 의혹 중에서 유명 여배우 등이 연루됐다는 이 기자의 주장은 명예훼손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당시 이상호 기자 등이 주목한 건 2009년 3월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인 배우 고(故) 장자연씨가 자필 문건을 작성한 뒤 왜 일주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다.

▲ 2012년 6월5일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방송 화면 갈무리.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소속사 대표인 김종승씨와 장씨의 자필 문건 작성을 도운 유장호 전 소속사 총괄매니저(H스포테인먼트 운영)에게 징역형(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내린 1심 판결문을 보면 장자연 씨가 어떻게 양 소속사 관계자들의 분쟁에 휘말려 희생양이 됐는지 알 수 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고승일 판사)은 판결문에서 “유장호는 김종승의 소속사에 있던 송○○나 이○○을 영입했고 두 사람은 김종승과 법적 분쟁에 있었는데 유장호는 이들의 새로운 소속사 사장으로 이 분쟁에 깊이 관여했고, 김종승과 갈등관계에 있었다”고 사건 배경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때 김종승의 소속사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장자연이 우연히 유장호에게 김종승과의 전속계약 해지 문제에 도움을 청하자 유장호가 이○○이나 송○○ 등에 대한 김종승의 비리 사실이 적힌 문서를 보여주며 장자연에게 이 사건 문서의 작성을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 “장자연, 죽기 전 소속사 관계자들 분쟁에 휘말렸다”

실제 장자연 씨가 남긴 자필 문건을 보면 김종승 대표의 소속사에 있으면서 겪었던 자신의 피해 사례를 나열했을 뿐 아니라, 이○○·송○○ 등 같은 소속사에 있었던 배우들에게 김 대표가 술 접대를 강요하고 드라마 출연과 관련한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장씨가 남긴 이 문건과 관련 “장자연이 이 문건을 작성한 것이 사실이고, 부분적으로 공개된 문서의 내용 중 성 접대 강요 등을 제외한 상당 부분이 사실로 밝혀졌다. 장자연이 이 문서를 작성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자살한 점 등에서 장자연의 자살 원인이 이 문서에 기재됐다는 소속사 사장인 김종승의 부당한 대우 때문일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를 밝혀 연예계의 구조적인 비리를 고치고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해야 할 객관적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장씨의 소속사 전 총괄매니저 유장호 씨는 장씨에게 서명날인과 간인 등이 된 진술서 형식의 자필 문건을 작성토록 한 후 이 문건 내용을 자신의 소속사에 있던 배우 이씨와 정아무개 드라마 감독에게 알리기도 했다.

▲ 장자연 사건 관련 1심(수원지법 성남지원) 판결문 중 일부.
장씨가 죽기 전까지 가깝게 지내며 자주 연락했던 지인 이아무개씨는 경찰 참고인 진술에서 장씨가 문건을 작성한 2009년 2월28일 밤 11시경 장씨는 이씨의 집에 찾아와 자신이 문건을 작성한 이유를 털어놨다고 말했다.

이씨가 장자연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유장호는 장자연에게 ‘할 얘기가 있다’면서 사무실로 오라고 해 갔더니 유씨가 ‘자연이 어려운 사정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미 이○○이나 송○○, 그리고 알만한 여배우들의 술자리 접대, 성 상납 비리가 적힌 여러 문서를 보여주며 ‘김종승 대표에 대해 형사적인 준비를 하고 있고 이 문서들이 공개되면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유장호가) 자연이에게 ‘네가 당한 것과 비리를 적어서 주면 신원보장도 해주고 계약도 풀어줄 테니 계약이 풀리고 나면 우리한테 오든지 다른 데로 가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해 문서를 작성하고 왔다고 했다”고도 증언했다.

이씨는 자신과 친한 동생이었던 장씨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를 “28일(자필 문건 작성) 이후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추측했다. 그는 “자연이가 전부터 우울증 증세로 나와 함께 병원도 같이 다녔고 회사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참았다”면서 “문건을 작성한 이후 4일가량을 집에만 처박혀 있었다고 했던 것으로 봐서 아마도 유장호 말만 믿고 단순하게 문건을 작성한 것을 괴로워하다가 자연이가 정신과 약을 먹고 잠도 오지 않아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나쁜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자연 측근 증인 “자연이는 문건 작성 후 괴로움 견디지 못해…”

이씨는 이후 김종승과 유장호 재판의 증인으로도 출석해 “그(김종승의 명예훼손 고소 협박) 이전부터 장자연이 김종승과 일을 해왔고, 자신이 불리한 조건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일 때문에 자살했다면 예전에 했을 것”이라며 “나는 장자연이 문건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해서 자살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문건 작성 이후에 장자연이 달라진 점이 있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내가 전화할 때마다 장자연이 잠에 취해 못 일어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괴로워서 계속 먹었다고 했고, 몸이 아프다고 하면서 나오라고 하면 나오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아울러 검·경 조사 결과 장씨가 문건 작성 후 2009년 3월2일 유장호의 사무실에 찾아가 유씨가 보관하고 있던 문건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이씨는 “나는 장자연이 문서를 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면서도 “장자연에게 문건을 돌려받으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장자연이 ‘알아서 하겠다’며 ‘(유장호가) 안 줄 것’이라고 얘기한 사실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장호 씨는 검찰 조사에서 “장자연이 문서를 돌려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 2009년 3월7일 신인 배우였던 장자연씨가 자신의 이름과 사인, 지장 날인이 적힌 자필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노컷뉴스
유씨가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대로라면 그는 장씨가 자필 문건을 작성한 후 2009년 3월1일 장자연과 연락해 저녁 7시경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유씨는 “그날 장자연이 나에게 3장의 편지를 줬다. 당시 장자연이 뭐라고 하면서 저에게 편지 3장을 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2월28일 작성된 A4용지 4장에 못 다한 이야기들을 편지 3장에 적어 나에게 건네준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검‧경이 발견하지 못한 이 3장의 편지와 관련해 법정 진술에서도 “3월1일경 장자연은 자신이 쓴 편지(A4용지 3장)을 줬는데, 편지의 내용은 자필 문건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내용, 법률적으로 잘 알아봐 달라는 당부의 내용, 김종승과 관련해 조심해야 할 사람들 등이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런 내용 외에 장자연이 (김종승 등이) 자신의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 달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장자연은 소속사 전 매니저에게 문건을 돌려받지 못했다”

장자연이 소속사를 옮기기 위해 유장호의 도움을 받아 자필 문건을 작성한 후 자살하기 전까지 불과 일주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벌어진 일들을 추적해 보면, 결국 장씨는 자신이 작성한 문건을 매우 불안해하고 이후 닥쳐올 상황에 매우 괴로워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검찰 조사 결과 유장호는 3월1일 장씨를 만나기 전 이날 오후 자신의 소속사 배우 이○○을 만났다. 유씨는 이 배우에게 문서를 보여주거나 ‘장자연 문건’ 내용을 말해줬고, 이 배우는 김종승 대표와 가깝게 지내던 정아무개 감독에게 전화해 ‘장자연이 작성한 문서가 있고 그 내용 중에 정 감독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 김종승을 야단쳐주라’라고 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13년 6월4일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는 장씨가 사망 직전 마지막 받은 문자 중 유장호가 보낸 내용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 문자는 유장호가 장자연에게 정 감독을 함께 만날 것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정 감독은 고발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씨가 장자연 문건 내용을 공개하며 자신과 소송 중이던 김종승을 야단쳐 달라고 하는 한편, 유장호가 찾아갈 테니 도와줄 것을 부탁해왔다”며 “장자연이 나를 만나게 되면 문건의 내용이 연예계에 널리 알려진다고 우려해 만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2013년 6월4일 고발뉴스 방송 화면 갈무리.
이 같은 사실은 유장호 등에 대한 법원 공판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유장호는 장자연과 2009년 3월9일 정 감독님을 만나기로 약속했고, 장씨는 로드매니저에게 이날 일정을 비워놓으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정 감독과 만남이 성사되지 못하면서 장자연은 더욱 불안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자연 사건을 수사했던 분당경찰서 관계자는 고발뉴스 측에 “문건 작성 즈음 장자연씨는 제3의 기획사와 계약을 맺게 됐는데, 뒤늦게 문건 작성을 후회하며 유장호에게 수차례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돌려받지 못해 괴로워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장자연이 사망 전 유장호가 운영하는 H스포테인먼트가 아닌 G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체결한 것도 사실이다.

드라마 감독 “장자연 문건 이용에 유명 여배우도 개입돼 있다”

이상의 수사 결과 검찰은 유장호가 자신의 소속사 연예인 두 명이 전 소속사 대표인 김종승과 소송이 진행 또는 예상되는 상황에서 김종승을 압박하는 데 사용할 목적으로 장자연에게 문건을 작성하도록 한 다음 보관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남아 있는 문건 4장 중 2장은 송○○와 이○○에 대한 언급이 있는 점 △장자연의 지인 이씨가 장자연으로부터 그와 같은 형식의 문서를 보고 적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 점 △유장호는 장자연이 죽기 이전에 문서의 존재를 알리고 장자연이 사망하자 수사기관에 제출하지 않고 언론 등을 통해 문서의 존재를 알린 점 등에 비춰 장자연이 유장호에게 이용당했다고 결론 내렸다.

1심 재판부 역시 “유장호가 소속사에 들어온 송○○나 이○○이 김종승을 상대로 한 법적 분쟁을 하는 데 있어 유리한 상황을 얻고자 장자연의 문서와 자살을 이용하려고 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유씨는 검·경 조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나는 장자연을 나와 소속사를 위해 이용할 이유도 없고 이용하려 한 적도 없다”면서 “매니저와 연기자가 아닌 친구로서 도와주려고 했던 게 전부였다. 자살 후 우울증으로 묻히는 것이 억울했고 안타까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물론 법원이 판결문에서 밝혔든이 장자연의 죽음에는 부모와 일찍 사별한 장씨의 개인 가정사에서 비롯된 열등감, 악화한 우울증, 소속사 대표와의 갈등, 자필 문건의 유출 우려 등 여러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자연 문건’ 내용의 진위와는 별개로 장자연이 왜 이 문건을 남기고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밝히는 것도 장자연이 세상에 남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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