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명감 높지만 영향력 하락할 것”

한겨레 창간 30주년 학술세미나 “한겨레 창간정신 잃어버려” 지적
주주들이 꼽는 한겨레 경쟁상대, 조선일보→JTBC→경향신문 순

2018-05-10 16:18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10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겨레와 한국사회, 또 다른 30년’이란 주제의 한겨레 창간 3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한겨레 창간주주의 61.6%가 한겨레 종이신문을 구독하고 있으며 38.4%는 구독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꼽은 ‘구독하지 않는 이유’는 △인터넷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어서(53.2%) △논조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26.9%)이었다.

이번 여론조사는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가 한겨레의 도움을 받아 지난 4월 창간주주 10명 심층인터뷰와 창간주주 250명이 참여한 설문으로 진행됐다. 홍 교수는 “한겨레 창간주주들은 한겨레의 방향성에 적지 않은 불만을 쏟아냈다. 창간정신을 잃어버리고 친 시장주의로 가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제도권 언론으로 안착하려고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밝혔다.

심층인터뷰에 참여한 윤아무개씨(66세)는 “한겨레는 조금 더 민중적이어야 한다. 나는 한겨레를 진보언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게 진보인데, 한겨레는 변화하지 않고 현재의 테두리 속에서 지키려고만 애 쓴다”고 비판했다. 창간주주 양아무개씨(79세)도 “이명박정부에서 박근혜정부로 넘어갈 때 한겨레는 내가 기대한 만큼 하지 못했다. 너무 수동적이고 저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한겨레 구성원들 역시 한겨레의 위기를 ‘확장성 제한’과 ‘위협받는 독보성’에서 찾기도 했다.

창간주주 설문조사 응답자의 87%는 한겨레 기자들이 전문성이 있다고 답했고, 89.6%는 한겨레 기자들이 윤리적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91.2%는 한겨레 기자들은 사명감이 크다는데 동의했다. 하지만 창간주주 김아무개씨(58세)는 “한겨레 기자 집단은 똑똑하고 양심적이고 자부심도 높지만 겸손이 부족해 보인다. 때로는 오만함도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겨레의 주주 의견 반영 정도에는 26%가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

창간주주들은 종이신문 한겨레 경영에 대해 ‘어려워질 것’(31.2%), ‘다소 어려워질 것’(55.2%)이란 부정적 입장이 다수였다. 종이신문 한겨레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란 전망은 61.8%였다. 한겨레의 경쟁상대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30%가 조선일보를 꼽았으며, JTBC라는 응답이 26%로 뒤를 이었다. 이어 21.6%가 경향신문을 경쟁매체로 꼽았다. TV방송 개국에는 44.4%가 적극 찬성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많은 창간주주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한겨레의 입장이 모호해졌다고 지적했다. 창간주주 김아무개씨(50세)는 “한겨레는 보수에게는 여전히 빨갱이 신문이고, 진보에게는 쉽게 변절자로 취급 받는다”고 말했다. 문아무개씨(75세)는 “연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차라리 신문이 없어지더라도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나갔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그래서 자본이 고갈된다면 주주들은 주머니를 털어서 다시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철 교수는 “한겨레가 가졌던 유일한 진보매체의 역할은 더욱 축소되고 있다. 한겨레보다 더 진보적인 매체들이 한겨레와 나란히 온라인플랫폼에 진열돼 독자의 클릭을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주주들의 노령화 역시 한겨레가 극복해야 할 당면과제”라고 덧붙였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창간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한겨레는 그 자체로 우리 언론의 혁신 사례였다”며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하는 언론매체라는 새로운 상을 만들었다”고 평가하면서도 “한겨레의 도드라진 혁신성은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빛을 바랬다. 오프라인 환경에서 보여줬던 도전과 혁신은 이제 전만 못하다”고 지적했다.

▲ 1988년 한겨레 창간호 1면.
한겨레는 1988년 2월25일 창간기금 50억 원을 모금했다. 당시 2만7223명이 모금 출연에 참여했다. 그해 5월15일 한겨레 창간호가 발행됐다. 최초의 국민주 신문으로, 6만3000여명의 주주가 약 192억5000만원을 모금해 사옥을 마련했다. 2016년 12월31일 기준 200주 이하 소액 주주가 전체 주주의 95.22%를 차지하고 있다. 창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지사장을 맡았으며 지금도 한겨레 주식 380주(190만원 상당)를 갖고 있다.

한겨레는 개별 언론사로서 처음으로 윤리강령을 제정해 공표했으며 기존의 한자병용과 세로쓰기 관행을 깨고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단행했다.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하며 편집권 독립제도를 만들었으며 촌지를 거부했다. 1999년 3월 첫 직선제 대표이사가 선출된 이후 2018년까지 9차례 선거를 통해 7명의 대표이사가 선출됐다. 2017년 12월31일 현재 한겨레 계열회사는 씨네21, 한겨레출판 등 총 18개다. 우리사주조합 지분율은 2017년 기준 21.65%다.

한겨레는 1988년 송건호 발행인이 쓴 창간사에서 “한겨레는 기성 언론과는 달리 집권층이 아닌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위에서가 아니라 밑에서 볼 것이다. 기성언론과는 시각을 달리 할 것이다”라고 밝혔으며 “자유롭고 독립된 언론은 권력의 방종과 부패를 막고 국민의 민권을 신장해 사회 안정을 기할 수 있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운동”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