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과 무값 폭등... 한겨레 창간 30년

최저임금과 감자값 폭등을 연결짓는 언론, 평양냉면과 무값 폭등 연결하는 정부

2018-05-15 08:51       이정호 기자 leejh67@mediatoday.co.kr

평양냉면 때문에 무값 폭등, 최저임금 때문에 감자값 폭등

정부가 최근 무값이 평년의 2배 넘게 치솟자 수급안정대책을 내놓으면서 보도자료를 냈다. 정부는 이 자료에서 무값 급등의 원인 중 하나로 평양냉면 매출 증가를 들었다. 정부는 “한파 피해로 겨울무 저장량이 평년보다 56% 감소해 공급량이 부족”하다고 했다. 여기까지 하고 말았어야 했다.

이어 정부는 무값 급등의 또다른 원인을 “최근 평양냉면이 인기를 끌면서 육수, 고명용 소비 등 일시적 수요도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냉면 육수를 우려낼 때나 면발 위에 고명용으로 무채를 올리는데 이 때문에 무 소비가 일시적으로 많아져 가격상승의 한 원인이라는 거다. 이를 두고 동아일보는 오늘 사회면(14면)에 ‘평양냉면 인기에 무값이 뛰었다고?’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면발을 무로 만드나?”는 시민들의 시큰둥한 반응을 소개했다. 충무로의 유명 평양냉면사장에게 “정상회담 직후 며칠 매출이 약간 올랐지만 평년 수준으로 돌아왔다. 무 소비량도 지난해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 무값 인상 원인에 평양냉면은 들먹이지 말았어야 했다.

▲ 2018년 5월15일자 동아일보 14면

그런데 인과관계가 없는 2개의 사실을 교묘히 짜깁기하는 건 언론도 마찬가지다. 17년 전 요맘때 봄 가뭄이 심했다. 논두렁이 쩍쩍 갈라져 농민들 시름이 깊어갔다. 노동계가 가뭄이 절정인 2001년 6월 12일 파업에 들어가자 신문은 일제히 파업노동자를 비난했다. 파업 다음날 아침 조선일보는 1면 머리에 ‘이 가뭄에 연대파업 비상’이라고 썼고, 중앙일보는 ‘엎친 가뭄에 덮치는 파업’이라고 비판했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지만, 논리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 된다.

언론은 사회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파업)을 자연재해(가뭄)와 묶어 버렸다. 파업과 가뭄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무관한 두 사건을 묶어 버린 결과 가뭄으로 지친 국민들의 분노는 모조리 파업노동자에게 몰렸다. 이런 비약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최근 일부 신문은 모든 물가인상의 원인을 최저임금 탓으로 돌린다.

중앙일보는 지난 2월 ‘감자 값이 기가 막혀...1년 전보다 77% 폭등’이란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기사 첫 문장을 “감자값이 1년 전보다 77%나 폭등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썼다. 다음 문장은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식비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라고 썼다. 중앙일보는 감자값 인상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고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신문을 본 독자는 “최저임금 때문에 감자값이 올랐네”라고 오해하기 충분하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문화일보도 ‘최저임금 인상 여파... 인건비가 부른 물가급등’이란 기사에서 비슷한 문장 전개를 보여줬다. “올 4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 영향으로 가사도우미와 아파트 경비원 등에 전가(轉嫁)되면서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또 감자 등 농산물값이 크게 뛰고 외식비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등 ‘체감 식비’가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두 문장은 가격 인상 때문에 서민이 고통 받는다는 이미지를 그렸다. 그러나 농산물 값이 크게 뛰는 건 서민에게 고통이지만, 가사도우미와 아파트 경비원들 최저임금 인상은 서민에겐 위안이다. 그 아파트 경비원이 바로 서민이니까. 물론 휴게시간 늘리기 등 온갖 편법으로 경비원 인건비가 최저임금 인상과 직접 연동되진 않지만.

한겨레 1면 30년전 창간호와 닮은꼴

한겨레신문이 창간 30년을 맞아 1면 편집을 30년전과 닮은꼴로 내왔다. 1면 왼쪽에 썼던 30년전 창간사대로 기념사설의 위치도 같았다. 오른쪽 사진도 같은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실었다. 한겨레는 창간 특별기획으로 4~6면 3개 면을 털어 ‘노동’을 조명했다.

한겨레는 ‘현장, 몸으로 쓰다’란 문패를 달고 기자가 제조업 현장에 들어가 일하면서 르포기사를 썼다. 요즘 ‘노동’을, 그것도 ‘공장노동’을 소재로 기사를 쓰면 철 지난 얘기처럼 치부하는 게 언론계 현실인데 한겨레는 용케도 창간 30주년 특별기획을 노동에서 찾았다.

▲ 한겨레신문이 창간 30년을 맞아 1면 편집을 30년전과 닮은꼴로 내왔다. 사진 역시 30년전과 같은 백두산 천지 사진이다.

한겨레 4면 제목은 ‘공장노동 한달... 컨베이어벨트에 저주를 내뱉었다 “말해라”’였다. 기자는 파견업체를 통해 2시간만에 뚝딱 취업해 쉼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치어 몇시간을 보내고 파김치가 돼 점심 먹을 때쯤엔 팔이 부들부들 떨려 밥도 못 푸고 버벅거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