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계약직 아나운서들 “우리도 김장겸에 속은 피해자”

‘부당해고’ 주장하는 계약직 아나운서들 “재시험 아닌 ‘업무평가’ 반영했어야”…MBC “‘부당해고’ 아닌 ‘계약 기간’ 만료”

2018-05-28 14:07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안광한·김장겸 사장 시절 MBC 아나운서국은 전례 없이 탄압 받았다. 최근 MBC가 밝힌 ‘블랙리스트’ 감사결과 최대현 아나운서는 동료 아나운서 32명의 ‘성향’을 분석한 문건을 만들었다. 지난 2012년 공정방송 파업에 참여했거나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이면 ‘강성’ 또는 ‘약강성’ 등으로 분류됐다. 그렇게 9명이 방송과 관련 없는 부서로 발령났고 5명은 쫓기듯 MBC에서 떠났다.

기존 아나운서들이 빼앗긴 마이크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돌아갔다. 안광한 전 사장은 2014년 9월12일 임원회의에서 노골적으로 특정 아나운서들을 언급했다. 이들을 방송 업무에서 배제하면 ‘인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경영진은 기존 아나운서들을 대체하려고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빌미로 입맛에 맞게 활용했다.

‘MBC 정상화’를 기치로 새 경영진이 들어선 지금, 기존 아나운서들은 제 업무를 찾았고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계약 기간은 만료됐다. ‘계약 만료’라는 회사와 ‘부당 해고’라는 계약직 아나운서들 주장이 맞서는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계약직 아나운서 9명이 집회를 열었다.

▲ 지난 2016년과 2017년 계약직으로 입사한 MBC 아나운서들이 28일 오전 본인들은 '계약 만료'가 아닌 '부당 해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집회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장소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 사진=노지민 기자.

“MBC 건물에 ‘5년 만의 신입 공채’라고 써 있는 문구를 보고 우리도 이번 채용 지망생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무작위로 뜨는 채용 공고에 지원했고 운 나쁘게 그때 합격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이선영 아나운서는 본인들이 지난 체제의 피해자라고 호소했다.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취업 준비하는 아나운서 지망생 모두의 이야기다. 누구나 우리가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민 아나운서는 “MBC 선배들도 ‘시대적 비극’이라고 말했다”며 “우리는 (계약) 갱신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1년 단위 계약이지만 1년만 일할 의사로 입사하지 않았고 사측도 실제로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는 “왜 기존에 (정규직으로) 뽑힌 사람들은 철밥통을 유지하는지 의문”이라며 “비정규직에만 적용되는 불합리함”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MBC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애썼다는 입장이다. 최근 진행된 MBC 공개 채용 및 특별 채용에 계약직이었던 드라마·예능 PD 13명과 아나운서 1명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이들은 “재시험을 통해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입사할 ‘기회’를 부여했다는 것은 사측이 일방으로 부여한 미명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원칙대로라면 업무내용을 평가하고,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전환 여부를 결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회사는 신입 공채와 동일한 ‘신규 채용’ 시험을 보게 했다”며 “우리가 시험을 거부할 것을 우려해 일부러 계약직 아나운서 11명만 TO를 모르게 했다”고도 주장했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우리 계약직들은 ‘안광한 키즈’도 ‘김장겸 키즈’도 아니다. MBC는 피해자를 상대로 한 가스라이팅을 그만두고 회사 곳곳에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들에게도 업무 평가를 통해 정당한 전환 기회를 부여하라”고 요구했다. (관련기사=최대현 아나운서, 계약직 아나운서 11명 영화 단체관람에 “해사행위”)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과 만난 이들은 자신들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곡해될 가능성도 우려했다. 이선영 아나운서는 “힘내라는 MBC 선배들도 있지만 우리 목소리가 정당 싸움에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들도 있다. 의도와 다르게 MBC 안에 있는 선배들을 비난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며 “(우리가) 대중들이 납득할 만한 충분한 설명을 드리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준상 아나운서는 “파업 전에 노조에 가입하려고 갔지만 규약 상 가입 자체가 안 됐다. 집행부도 마음만은 고맙지만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이 문제를 공론화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선배들이 경영진에게 알려졌다가는 불이익이 갈 수도 있으니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탁종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 소장은 “이들 모두 김재철 체제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며 향후 한빛센터가 장소와 노무·법률 상담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지난 2016년과 2017년 계약직으로 입사한 MBC 아나운서들이 28일 오전 본인들은 '계약 만료'가 아닌 '부당 해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집회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장소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 사진=노지민 기자.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이날 MBC에 ‘계약직 아나운서 대량해고 철회 성명문’을 전했다. MBC 사옥 앞에서 성명문을 받은 보안관리팀 관계자는 이를 사장 비서실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MBC는 지난 22일 공식 입장을 내어 “이번 채용에서 MBC 내 모든 계약직 사원과 비정규직 사원들을 뽑을 수 없었던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퇴사한 아나운서들은 계약직 사원들로 해고가 아니라 계약기간이 만료돼 퇴사했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MBC는 “MBC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필요한 인력의 경우 지속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