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잘린 손으로 망치드는 사회를 살고 있다

[미디어 현장]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

2018-06-22 14:25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 media@mediatoday.co.kr
경복궁 3번 출구를 나오면 곧바로 맞닥뜨리는 골목길이 있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3000원짜리 돼지국밥집부터, 생선구이가 일품인 수산식당, 해장라면을 잘 끓이는 분식집까지 다양했다. 회사 인근이라 회식을 할 때도 가끔 이곳을 찾았다. 숨겨진 맛집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곳은 족발집이었다. 가성비는 좋으면서 사람이 붐비지 않기에 자주 애용했다. 하지만 이 가게는 회사가 장충동으로 이사하면서 이용하지 못하게 됐다.

이따금 그 족발이 생각났다. 붐비는 손님에 비해 특별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 장충동 족발을 뜯고 있노라면, 이내 그곳이 눈에 밟혔다. “아직도 손님이 없을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골목길을 다시 찾았다. ‘젠트리피케이션’ 취재를 위해서였다. 그 족발집은 그 자리 그대로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손님이 북적인다는 정도일까. 다행이라 생각했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믿음이 유효한 듯싶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이 골목길이 소위 ‘뜨는 동네’가 되면서 기존 상인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3000원 돼지국밥집은 일본 정종집으로 바뀌었고 생선구이집은 수제맥주집으로 바뀌었다. 해장라면을 팔던 분식집도 자취를 감췄다. 반면, 하늘에는 조명등이 주렁주렁 걸리게 됐고, 이름없는 골목길에는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여졌다.

족발집 주인도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 2년여 전, 족발집 가게가 있는 건물주가 바뀌면서부터였다. 새 건물주는 기존 294만 원이던 월세를 1200여만 원까지 올렸다. 당시 임대료 감정월세가인 304만3000원보다도 4배나 높았다. 3000만 원이었던 보증금도 마찬가지였다. 4배에 가까운 1억 원으로 올렸다.

▲ 사진=빈곤사회연대 페이스북 영상 갈무리
족발집 사장이 족발 한 접시 팔아 받는 돈이 2만8000원. 월세 1200만 원을 내려면 430개의 족발을 팔아야 했다.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2016년 1월, 건물을 매입한 건물주는 2017년 11월 공시지가로만 7억 이상의 시세차익을 보고 있었다. 건물주는 강남 등에 여러 채 건물을 소유한 부동산 투자자였다.

하지만 법은 건물주 편이었다. 갈 데 없는 족발집 사장은 소송을 하며 버텼지만 소용없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청구권’을 5년까지만 보장한다. 즉, 계약기간이 5년을 넘기면 임대료를 50%든 100%든 건물주 마음대로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7년간 이곳에서 장사해온 족발집 사장이 법적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빈털터리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송은 패소했으나 장사를 계속 이어나갔다. 10년 넘게 분식집과 실내포장마차를 하며 저축한 돈에 대출금을 더해서 차린 족발집이었다. 여기서 쫓겨나면 답이 없었다.

건물주도 그런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셀 수 없는 강제집행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족발집 사장 손가락 4개가 부분절단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벼랑 끝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버텼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 6월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체부동 궁중족발이 있던 상가. 간판은 떨어지고 창문 유리는 깨져 있었으며 점포 앞은 1t 트럭 한 대가 가로막고 있었다. 곳곳에는 출입금지 경고문과 호소문 등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사진=노컷뉴스
그나마 구원의 동아줄이라 여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국회 처리가 요원하기만 했다. 법은 자기편이라고 조롱하는 건물주의 비웃음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지게차가 족발집 가게 벽을 허물던 2018년 6월이었다. 열두 번째 강제집행이 있은 지 사흘이 지난 아침, 그는 잘렸던 손으로 망치를 들고는 이내 건물주 머리를 내리쳤다.

▲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
얼마 전 살인미수혐의로 구속된 ‘궁중족발’ 사장 이야기다. 사회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요체다. 그렇기에 때로는 서로 간 피해를 주고 공공질서를 혼란케 하기도 한다. 각자가 자기 행동 영역 안에서 무언가를 망치는 식이다. 물론, 이는 자본주의 구조하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이유는 이를 조정해주는 게 국가의, 그리고 정치의 역할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중족발’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사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