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 합산규제 직무유기, 이번에도 KT 웃었다

일몰법 만든 후 재논의 못한 채 폐기, KT 반기고 케이블 강력 반발… 인수합병, 결합상품 등 유료방송 종합정책 필요

2018-06-19 14:43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유료방송업계 최대 쟁점인 합산규제가 허무하게 사라진다.

2015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격론 끝에 ‘유료방송 합산규제’ 3년 일몰 법을 만들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사실상 동일 시장이지만 별도의 규제를 받던 케이블,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의 시장독점을 통합해 규제하는 개념으로 한 사업자군이 33% 이상의 점유율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전병헌, 최민희 의원이 적극 규제 도입을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의 반발 끝에 여야는 ‘3년 일몰’로 법을 제정하고 추이를 지켜본 뒤 재논의키로 합의했다.

오는 27일이면 3년이 지난다. 그러나 국회는 그동안 단 한 차례도 합산규제 ‘재논의’를 못해 자동 폐지 수순을 밟는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지방선거가 있었고, 이후에는 다른 정당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규제 일몰 전까지 상임위를 열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하반기 원구성 논의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이번 일몰에 따라 사업자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최대 수혜자는 KT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KT의 IPTV인 올레TV와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의 합산 점유율은 30.54%(올레TV 20.2%, KT스카이라이프10.3%)로 규제 상한인 33.33%에 임박해 자칫하면 ‘개점휴업’ 할 뻔 했다. 지난 2월 실적발표 때 윤경근 KT 최고재무책임자는 “합산 규제는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미디어 분야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스카이라이프 역시 안도하겠지만 KT와 상황이 다르다. 일몰이 연장되면 KT는 스카이라이프 가입자나 OTS(스카이라이프와 올레TV를 동시에 시청하는 가입자)를 IPTV 단일 상품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가입자를 통신사에 몰아줄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일몰에 안도하고 있다. 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초창기 IPTV가 들어섰을 때 채널이 많지 않아 위성방송으로 실시간 채널을 보고 IPTV로 VOD를 보는 OTS 가입자를 유치했다. 지금은 IPTV가 더 많은 채널을 확보해 상황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반면 KT의 경쟁 IPTV인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그리고 케이블 진영은 일몰에 반대한다. 특히 케이블TV방송협회는 지난달 기자 스터디를 개최하고 합산규제 일몰 연장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고 성명도 냈다.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는 KT를 합산규제로 묶어 둔 다음 공격적 마케팅, 인수합병 등으로 KT와 격차를 좁힐 수 있어 일몰 연장을 원한다. 다만, KT의 경쟁 통신사들은 케이블처럼 강하게 반발하지는 않는데 장기적으로 합산규제가 다른 IPTV에도 ‘장벽’이 될 가능성 때문으로 보인다.

▲ 2017년 하반기 기준 유료방송 합산점유율. 디자인=이우림 기자.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정작 ‘심판’은 보이지 않는다. 합산규제는 임시로 규제를 도입한 다음 시장 상황을 분석해 논의하자는 취지로 일몰 도입했지만 국회와 정부 모두 논의가 지지부진한 채 3년이 지났다.

국회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법 등 현안 논의에 여야가 대립하면서 합산규제 논의가 뒷전으로 밀렸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5월 합산규제 일몰 여부 논의 일정 협의가 있었으나 야권이 드루킹, 방송법 등 현안을 함께 논의하자고 주장하면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논의는 했으나 ‘답’은 없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합산규제 연구반을 만들었지만 논의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유료방송 발전방안’을 만들었으나 합산규제에는 다양한 규제 방안을 열거한 후 “향후 시장상황을 보겠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정부가 전문가들과 논의할 때마다 유료방송을 하나로 간주하는 게 적절한지, 33% 규제가 적정선인지 등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생산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데는 통신업계 중심의 과도한 ‘로비’도 한 몫 했다. 규제 이슈 때마다 통신사가 국회의원을 적극 만나고 언론에 광고도 많이 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통신 관련 규제 이슈 때마다 사안이 SK에게 유리한가, KT에게 유리한가가 본질보다 중요해지는 이유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황창규 KT 회장은 2015~2016년 당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지급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는 합산규제, SK-CJ헬로비전 인수합병 등 KT의 이해관계가 직결된 규제를 논의하던 때다.

근본적으로 치열한 업계 이해관계 탓에 유료방송 종합 정책 수립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점이 문제다. 핸드폰과 방송을 묶는 결합상품을 가진 통신사의 IPTV가 방송을 공짜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시장을 잠식한다는 점에서 규제론이 있지만 정부는 시장 상황을 살피고만 있다. 케이블TV 권역폐지와 유료방송 간 인수합병 허용 여부에도 정부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는 “방송통신위원회, 과기정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가 일몰 이후 대책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며 “특히 이전 정부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인수합병을 불허했는데 시장획정을 비롯해 독점 사업자 판단 기준, 이용자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방안 등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