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정치사의 가장 논쟁적 인물이 떠났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영욕의 정치 역정 마감한 김종필… 타계 후에도 ‘국민훈장’ 추서 논란

2018-06-25 08:49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는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순천향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으나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언론은 그의 삶을 ‘3김 시대의 종언’, ‘한일 외교 정상화 주역’, ‘5·16 군사쿠데타 주역’, ‘영원한 2인자’ 등으로 비슷하게 평가했다. 김 전 총리의 영욕의 삶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 있었기에 그를 기억하는 역사적 평가가 크게 갈리지는 않았다.

박정희 정권 탄생의 주역이지만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합해 DJP(DJ+JP) 공동정권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한 그가 진보와 보수 세력 어느 쪽에도 상징적 인물이 되지 못한 탓도 있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늘 논란이었고 주류 정치권에서도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경향신문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가장 논쟁적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경향은 “그는 정부를 무너뜨린 군사정변 주역이었고,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2인자였으며, ‘3김 정치’의 길항 속에 권력의 중심을 탐한 정치인이었다”며 “그의 타계와 함께 한때 한국 사회를 지배한 ‘박정희주의’와 ‘3김 정치’도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김 전 총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3김 정치’다. 3김은 민주화로 열린 1987년 대선 공간에서 호남(김대중), 부산·경남(김영삼), 충청(김종필) 등 지역 기반을 토대로 할거했고, 결과는 12·12 쿠데타 주역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권으로 마무리됐다.

경향은 “3김은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권력 지도를 새로 썼고, 그때마다 김 전 총리는 조연이었다”며 “1990년 1월 노태우의 민정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3당 합당). 민주화 세력의 한 갈래인 경남이 보수대연합에 합류했고, 호남은 고립·포위됐다”고 설명했다.

김 전 총리는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도와 여당 대표까지 올랐지만, 내부 갈등 끝에 탈당해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한겨레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이른바 ‘DJP 연합’을 발표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데 기여했다는 것은 그의 정치적 업적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총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과 DJP 연합을 꼽았다. 한-일 수교로 근대화 성장의 밑천이 마련됐고,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역사적 화해가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김종필 현역 시절의 마지막 드라마는 DJP 공동정권이다”며 당시 김 전 총리에게 보수 인사들은 ‘색깔이 다른 DJ를 왜 밀어 주느냐’고 따졌다고 전했다.

이에 김 전 총리는 “우리가 언젠가 남북통일을 해야 하는데 동서가 갈라져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호남이 정권을 잡게 해 수십 년 묵은 한을 풀어 줘야 한다”고 설득했다. 신당동 자택을 심야에 찾아와 도움을 호소한 DJ에겐 “박정희 대통령이 진 빚을 갚아 드리겠다”고 했다.

한겨레는 “그의 정치인생은 ‘영원한 2인자’ ‘처세의 달인’이라는 꼬리표가 보여주듯 권력을 향한 강한 의지와 좌절로 점철됐고, 산업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대일 굴욕외교의 당사자이자 지역주의·계파주의를 이용한 정치로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는 비판이 공존한다”고 짚었다.

“5·16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을 탄생시켰고, 지역주의와 보스·계파 정치를 통해 1990년대 ‘3김 시대’를 풍미한 주역이다. ‘영원한 2인자’로 늘 권력의 둘째 줄에 머물렀지만, 한국 정치사의 주요 국면이 그의 ‘선택’에 따라 요동쳤다.” 한겨레는 김 전 총리의 정치 인생을 이렇게 요약했다.

중앙일보는 “현실적 힘에 바탕한 실용주의 노선이 김종필 철학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총리가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인생과 철학이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점철된 까닭이라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빛깔 좋은 명분보다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현실을 중시한 그는 야당과 학생운동 세력들로부터 ‘제2의 이완용’이라는 욕을 들으면서도 대일 식민지 배상금 협상을 관철해냈다”며 “개개인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국가 간 협상으로 말소하는 게 가능한가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때 일본으로부터 받은 8억 달러가 없었더라면 한국의 근대화는 요원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적 근대화보다 정치적 민주화에 더 중점을 두었던 다른 신생국들 중에서 선진국의 문턱을 넘은 나라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혜안은 더욱 빛난다”며 “그의 말대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유와 민주주의도 누릴 수 없다’는 게 진리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진영과 이념을 초월해 연대·협력할 줄 알았던 김 전 총리의 정치철학은 갈등과 반목이 지배하는 우리 정치 현실에 큰 울림이 될 수 있다. 특히 절체절명의 고사(枯死) 위기에서도 내홍과 불통만 거듭하고 있는 보수정당들에 그렇다. 이념과 진영논리보다는 실용과 민생, 즉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김 전 총리의 실사구시가 진정한 보수의 가치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일보도 “고인은 3김 시대의 유산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지만 정치권은 JP가 걸었던 정치 역정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일보는 “JP가 평생 주장해 온 내각제는 언제든 개헌 논의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는 핵심 의제다. 지역주의에 안주하다 지방선거에서 궤멸당한 보수진영에는 새로운 가치와 중심축을 만들라는 큰 과제를 남겼다”며 “특히 타협과 양보의 정치로 현대사의 고비고비를 돌파해온 고인의 정치 인생이 극한 대치의 현실 정치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작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겨레는 김 전 총리에 대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논란과 관련해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으로 그를 추모하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다만, 최고 훈장을 추서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통합의 상징성을 의식했을 수 있다. 하지만 최종 결정에 앞서 ‘반대 청원’ 등에 담긴 비판 여론도 유념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는 김 전 총리가 현대사 주역이었고 총리로서 국가에 봉사한 만큼 훈장 추서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김 전 총리를 조문한 뒤 “한국 현대사의 오랜 주역이셨고, 전임 총리셨기에 공적을 기려 소홀함 없이 모실 것”이라며 훈장 추서 방침을 밝혔다. 이 총리는 빈소에 훈장을 먼저 보내고 26일 국무회의에서 사후 의결할 것이라는 입장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