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사러 갑니다’ 실시간 보고로 노동자 옭아매는 근태관리

[부당노동행위 연재기획 (05)] 도둑맞은 노동시간

2018-07-01 09:04       정윤영 르포작가 media@mediatoday.co.kr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애국지사와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행사와 참전 유공자를 위로하는 공연들이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여러 단체들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위문품을 전달했다는 기사가 하루 종일 신문을 장식했다. 국가보훈처 역시 어느 때보다 바쁘게 유공자와 가족들을 찾아가 감사 마음을 전했다.

국가보훈처는 국가 안전에 이바지한 유공자들과 그 가족들의 ‘희생을 사랑으로’ 보훈하겠다는 표어 아래, 여러 복지 서비스를 마련해 드리고 있다. 특히 거동이 힘든 고령의 국가 유공자 노후복지 정책 가운데 하나로 이동보훈복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재가 복지 서비스인 보비스(Bohun Visiting Service)는 대상이 되는 유공자의 집을 직접 방문해 대상자 요구에 따라 제공하는 서비스로, 맞춤형 복지 서비스로 일컫기도 한다. 보비스는 국가 보훈처 슬로건에 걸맞는 ‘따뜻한 보훈‘이라고 평가받는 보훈처 대표 사업이다.

보비스 사업은 보훈처 소속 복지사와 차량을 담당하는 운전 요원, 그리고 보훈 섬김이가 한 팀을 이루어 사업을 담당한다. 그런데 최근 보훈 섬김이 노동자들이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과 관련해 진정을 내고 1인 시위를 하는 등 보훈처 대표 사업임을 자랑하는 재가 복지 서비스를 두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2007년 만들어져 10년 넘게 성공적인 복지 서비스로 평가받은 보비스 사업이 어떤 이유로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지, 일선에서 사업을 담당해온 보훈 섬김이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보훈 섬김이는 맥가이버?

서울 지역 보훈 섬김이로 일하는 K씨는 2009년 보훈처에 입사해, 올해로 일한 지 딱 십 년이 되었다. K씨 가족 중에 국가 유공자가 있어, 맞춤형 복지가 얼마나 필요한 서비스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보훈처에서 섬김이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그 길로 지원했다. 그녀뿐 아니라 섬김이로 입사한 노동자 대부분 국가 유공자를 가족으로 둔데다, 평소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이 많다. 봉사활동에 보람을 느끼는데, ‘봉사하면서 돈벌이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 내 일이 있고 직장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고, 보훈처라는 국가기관에 소속돼 일한다고 말할 때마다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섬김이와 운전 요원, 복지사 모두 처음 시행하는 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고 그만큼 열정을 다해 일했다. ‘복지 인력’은 한 팀을 이루어, 섬김이가 현장에서 유공자를 찾아가면 복지사는 행정적인 지원을 담당했다. 재가 복지 서비스에 만족하는 대상자들이 점점 늘어나, 현재 국가 유공자 1만 2천 명이 서비스를 받고 있다.

보비스 보훈 섬김이들은 가사노동부터 건강관리와 목욕, 온갖 편의지원까지 말 그대로 ‘토탈 케어’를 담당한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많고 고령인 탓에 하나부터 열까지 섬김이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간단한 청소부터 여름이면 에어콘 청소, 김장철엔 방문 시간 내내 마늘을 까고, 때마다 커튼이며 이불을 갈아 끼운다. 거동이 힘든 대상자에게는 은행업무와 장보기같은 심부름이 주를 이루고, 와상환자들에게는 목욕과 안마, 하루 종일 혼자 있어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르신들과는 대화하는 게 주된 일이 된다.

맞춤형 서비스라는 이유로 가끔 너무하다 싶을 만큼 무리한 일을 요구받을 때도 있긴 하다. 옷장에 있는 옷을 전부 정리하라거나 대형화분을 옮겨달라, 손빨래 해달라, 방역을 해달라는 주문들이 그렇다. 일이 힘들다는 이유로 어르신 요구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고, 어르신이 원하는 건 다하는 탓에 그녀는 섬김이를 ‘맥가이버’라고 부른다.

자존심이 상하고 어이없는 요구들이 많지만, 모두 봉사하는 거라 생각하면, 그래도 보람되었다.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월 60만 원을 받고도 일을 하는 건 그 보람 때문이었다. 지금은 월 130만 원을 받지만 생활하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생활비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 하는 섬김이도 있지만, 투잡을 뛰어가며 일을 계속하는 섬김이도 적지 않았다. 보훈처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부심을 댓가로, 보람을 성과로 여기고 일하는 섬김이들이지만, 일을 그만둬야겠다 싶은 순간은 항상 있다. 사업 초반과 달리 대상자가 많아지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도 생겼다. 뜬금없이 보여줄 게 있다며 옷을 벗거나 섬김이들을 만지려는 성희롱과 추행은 나열하기도 어려울만큼 자주 있는 일이다. 최근 고충 처리반이 생기긴 했지만, 실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섬김이는 없다. ‘눈치껏 이러지 마시라’고 웃으며 상황을 모면하고, 그저 대상자가 외로워서 그런 걸 거라며 스스로 위로할 뿐이다.

섬김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일은 또 있다. 도난사고와 관련된 신고들이다. 고령의 대상자들이 소중한 물건을 장롱 깊숙이 넣어뒀다가 잊거고서는 섬김이들을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많다. 집에 온 사람이라고는 섬김이밖에 없다는 이유다. 물건은 찾으면 나오기 때문에 곧바로 풀려나지만 용의자가 되어 경찰서에 앉아있으면 말할 수 없이 자괴감이 든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일에 트라우마가 된 섬김이들도 많은데, 섬김이들이 범죄자 취급을 받는 일은 아주 흔하다.

그러나 섬김이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건 ‘청소아줌마’ 취급이다. 가사노동은 섬김이들 하는 일이지만 그 말에 자부심이 무너져 내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르신들이 섬김이를 ‘파출부 아줌마’로 생각하는 건 복지사들 영향이 적지 않다고 K씨는 생각한다. 복지사들이 섬김이한테 청소 먼저 하라고 주문하는데다, 대상자에게 ‘청소 아줌마한테 (집안일) 다 시키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기 때문이다. ‘집에서 청소만 하라’는 복지사 주문에 그렇게 하고는 있지만, 가사 노동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정말 대상자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그녀는 차분했던 목소리를 높였다.

“섬김이들은 무리한 요구를 받아도 말대꾸도 못해요. 대상자들은 거절하면 복지사한테 이른다고 협박하고, 복지사들은 말대꾸한다고 방문하는 집을 먼 곳으로 보내요. 도대체 어디까지 서비스를 해야 되는지 모르겠고 비참할 때가 많아요. 그리고 집안 청소하는 걸 원하지 않는 어르신도 계세요. 얘기하고 싶은데 섬김이들이 청소한다고 바쁘니까 와도 반가워하지 않아요. 당연히 만족도가 떨어지죠.”

족쇄 채우는 근태 관리에 대상자와 신뢰까지 깨져

대상자 만족도가 떨어지기 때문일까, 섬김이들의 근태 관리가 강화되고 행동을 제약하는 규제들이 많아졌다. 서비스는 대상자 집에서만 제공해야하고, 시간은 두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한다. 대상자가 나가고 싶다고 얘기해도 집에만 있어야 하는데다 기계적으로 두 시간을 지키려다 보니 서로 불편할 때가 많다. 대상자가 조금만 늦게 와도 복지사는 기다리지 말고 다른 집으로 이동하라고 말한다. 그럼 대상자는 30분도 못 기다려주냐고 화를 내고, 복지사는 빨리 이동하라며 시간을 재촉한다.

섬김이는 화난 대상자와 시간 지키라고 윽박지르는 복지사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욕을 들어야한다. 그럴 때 마다 K씨는 정확하게 지키라는 두 시간은 대상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시간이 아니라 섬김이가 노동하는 시간인가 싶고, 대상자가 아니라 행정 편의에 맞춰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섬김이들은 업무시간 뿐 아니라 세세한 업무내용을 복지사에게 보고해야 한다. 방문 시간과 업무내용을 일지에 적어 보내기는 하지만 어르신 일상을 집에서 돌보는 섬김 노동 특성상 업무 내용을 일일이 자료화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복지사는 근태 점검이라며 수시로 전화를 걸어 뭐하고 있는지 묻고, 업무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문자 보내라고 주문한다. 복지사의 전화를 받고 문자에 답하느라 휴대폰을 쥐고 있으면 대상자는 ‘만날 핸드폰만 한다’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는다. K씨는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섬김이와 대상자 사이에 신뢰만 깨져간다며 울분을 토했다.

“심부름하러 마트 갔다가 연락이 오면 콩나물 사진 찍어서 보내야 돼요. 왜 보고도 안 하고 마트 가냐고 따져 묻는데, 감시하겠다는 말로밖에 안 들려요. 복지사한테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서 늘 불안해요. 어떨 때는 정말, 내가 죽으면 심장이 조여서 죽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르신들도 ‘너 뭘 잘못했길래 복지사가 너 잘하냐고 물어보냐’ 하세요. 이게 섬김이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거잖아요.”

그런데다 작년 QR 인증제도가 생기면서 섬김이들 불안은 더 커졌다. 대상자 집집마다 QR 코드 인식기를 부착해 섬김이들이 편리하게 출퇴근을 기록할 수 있도록 자동화시스템을 도입한 거라고 보훈처는 설명하지만, 시범 운영하고 있는 지청 소속 섬김이들은 부작용이 너무 많다는 입장이다.

일단 사생활 침해문제가 있다. QR코드 인식을 위해 스마트 폰에 앱을 깔면, 자동적으로 섬김이의 이동경로가 실시간으로 입력된다. 섬김이가 집에서 나온 순간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 8시간을 통째로, 강제적으로 보고하는 셈이다. 복지사가 알 수 없는 위치가 감지되면 지금 어디에 있냐며 전화가 걸려 오고, 대상자 집에서 5M만 벗어나도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QR시스템이 족쇄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또 보훈처 설명처럼 근태관리가 간편해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출퇴근 시간뿐 아니라 업무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문서화해야한다. 일지 작성을 이중으로 하는 셈이다.

개인 스마트폰에 업무용 앱을 까는 것도 큰 문제다. 데이터 요금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해킹의 위험까지 높다는 얘기를 들으니 께름칙한 게 사실이다. 차라리 QR 전용 휴대폰을 지원해달라고 했지만 복지사 대답은 ‘돈 드니까 안 된다’였다. K씨는 QR 인증제를 앞두고 복지사들이 내뱉은 말에 QR 시스템에 더 의구심이 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복지사들이 ‘너희들 이제 짤 없어. 1분이라도 시간 늦으면 돈 뗄 거야’ 이렇게 말하는데… (한숨) 우리 돈 안주려고 QR하는 거 아니잖아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면 복지사도 좋고 섬김이나 대상자들 모두한테 좋아야하는 거 아닌가요? 누구 좋자고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보훈처 얼굴이라고 칭찬받는 보훈 섬김이들, 23억 못 받았다

1098명 보훈 섬김이들의 불만과 설움이 폭발한 건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이후였다, 섬김이만이 아니라 복지사와 운전 요원 모두 무기계약직으로 바뀌면서 고용안정을 보장받았다. 무기계약직이 되면서 식대와 교통비, 휴일 수당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섬김이들만 수당을 받지 못했다. 복지사나 운전 요원과 달리 섬김이들은 최저시급에 근무시간을 곱해 임금을 계산하기 때문이었다. 명백한 임금 차별이었다.

똑같은 보훈 인력임에도 섬김이들만 받지 못한 돈, 그러나 받았어야 할 돈만 23억이었다. 3월, 보훈 섬김이들이 보훈처를 상대로 노동부에 체불임금 진성을 내고 노동위에 차별 시정을 신청하자, 보훈처장은 보훈 섬김이에게도 ‘차별 없이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언론에 발표했고, 섬김이들도 한시름 놓으며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했다.

시간이 지나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기계약직 전환으로 정년만 줄어든다는 생각만 커졌다. K씨를 포함한 보훈 섬김이들은 ‘이래선 안 되겠다’싶어 정의당 이정미 대표를 무작정 찾아갔다. 누군가 섬김이들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필요했다. 이 대표는 노조가 필요하겠다며 노동조합 설립을 권유했고, 섬김이들은 곧바로 ‘전국사회복지유니온’을 찾아갔다. 노조를 만든다고 하니 섬김이들은 그동안 쌓인 울분을 토해내며 주저 없이 가입서에 서명을 했다. 3일 만에 700명이 모였고, 현재 섬김이 1098명 가운데 957명이 조합에 가입했다.

▲ 4월2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전국사회복지유니온 관계자들이 QR코드 도입 반대와 인권 침해 반대, 체불임금 지급 등 국가보훈처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조를 설립하고 천 명에 가까운 섬김이들이 임금 차별과 QR제도 반대, 복지사의 갑질 문화 근절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기자회견도 열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서 새삼 보훈처라는 국가 기관이 크고 단단한 벽처럼 느껴졌다.

단체교섭이나 공식적인 대응은 아직 없지만, 그래도 변화는 있다고 섬김이들은 입을 모았다. 섬김이를 향해 반말하고 윽박지르는 일이 줄어들었고, ‘청소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는 등 복지사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자기와는 상관없는 줄만 알았던 노동조합이지만 막상 활동을 하고보니, ‘이건 꼭 해야 되는구나.’ 싶은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K씨는 보비스 사업 초창기가 그립다고 했다. 그 때는 섬김이와 복지사, 운전 요원까지 보비스 노동자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 도와가며 일하던 때였다. 십년 간 성공적인 복지서비스를 목표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추구해 왔지만, 섬김이와 복지사 사이에는 규제와 상명하복식 소통구조만 남았고, 그러면서 대상자와 섬김이 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희생을 사랑으로’ 돌보던 섬김이들에게 ‘유공자 어르신’은 점점 기계적으로 관리하고 정해진 의무만 해야 하는 ‘대상자’로 바뀌어갔다. K씨는 무엇보다 신뢰가 깨진 것이 속상했다. 보훈처에 섬김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깨져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K씨는 신뢰 회복을 위해 보훈처의 대표 사업이며 자랑인 재가 복지 서비스를 성과를 위한 사업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섬김이들을 사업 성과를 위한 ‘밑바닥’ 도구로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녀는 ‘왜 섬김이를 달달 볶는지 알 수 없다’면서 ‘섬김이를 옭아매서 뭐가 좋을까? 그런다고 만족도 높아질까?’ 꼭 묻고 싶다고 했다. K씨의 물음은 천 명 섬김이가 묻고 싶은 물음이기도 했다. 십 년 넘게 일해 온 천 명 섬김이들 물음에 보훈처가 답할 차례이다. 만족도 지수가 아니라 ‘국가 유공자의 곪아있는 삶’을 들여다보고, ‘QR에 목숨 걸지 말고 국가 유공자를 감싸주는’ 섬김이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