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서 간 곳에 천국은 없었다

[원성윤 칼럼]

2018-07-21 10:31       원성윤 더 좋은 문호리책방 사장·전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 media@mediatoday.co.kr

나를 어지럽힌 세월이 있었다.

2017년, 나를 끔찍이도 아꼈던 부모님이 생명의 소임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갔을 때, 우울증이 찾아왔다.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도 찾아왔다. 회사엔 병가를 내고 생후 50일을 갓 넘긴 딸아이를 둘러업고 거제로 갔다. 고향 통영을 두고 옆 동네를 간 건, 과거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였다. 거제도를 쭉 한 바퀴 돌았다. 내게 붙어있던 회한도 부채 의식도 모두 털어내자는 심정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사표를 냈다. 모두가 말렸다. 말을 들을 리 없었다. 10년 기자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한 언론계 선배가 있었다. 양평 문호리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동네 산책을 한다며 반려견을 이끌고 걸어서 북한강에 나갔다. 석양이 드리운 풍경, 바다를 방불케 하는 드넓은 북한강, 수상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낯선 동네에 이토록 강하게 끌리긴 처음이었다. 동네엔 멋진 미술관도, 맛난 빵집도 있었다. 부모님이 없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공간은 존재 자체로 고통이었다.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야근에 치여 살던 아내도 이 생활을 끝내기로 했다.

이사를 했다. 책방과 학원을 열었다. 먹고 사는 건 중요한 문제였다. 지체할 수 없었다.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다. LPG 가스비 57만 원 요금 통지서는 시작이었다. 책방 화장실 소변기 밸브가 터졌다. 분수처럼 물을 뿜어냈다. 집 상수도관도 얼어붙었다. 포크레인이 와서 땅을 파고 관을 녹였다. 후회했다. 어리석었다. 도망쳐서 간 곳에 천국은 없었다.

전기 요금이 아까워 온풍기도 아껴가며 틀었다. 홀로 책방에 앉아 점퍼 모자를 뒤집어쓰고 입김을 불어가며 책을 넘겼다. 독감이 왔다. 난방 텐트 아래 드러누웠다. 딸 아이 체온은 39도였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책방 첫 달 매출은 10만 원이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우리는 어떻게든 실마리를 찾아야 했다.

▲ 원성윤 (더 좋은 문호리책방 사장, 전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