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공’ 노동자 출신 진보정당 대표 정치인이었던 노회찬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23일 사망 확인… ‘민노당 비례 8번’ 국회 첫 입성, 소수자 보호·국회 특권 폐지에 목소리

2018-07-23 13:23       손가영 기자·권도현 대학생 기자 ya@mediatoday.co.kr

1980년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래 37년 간 진보 정치 자리를 지켰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3일 62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1956년 부산 태생의 노 원내대표는 고려대 재학 중인 1982년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딴 뒤 인천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노 원내대표는 이후 1987년 6월 인천·부천을 기반으로 한 노동자 계급 정치조직인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결성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 2005년 4월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한국의 진보’ 1편에 용접공으로 깜짝 출연한 노회찬 의원. 사진=노회찬 의원 홈페이지
노 원내대표는 인민노련 결성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수배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89년 경찰에 검거된 그는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받고 1992년까지 2년6개월 간 만기 복역했다.

그는 이후 민주노동당이 전신 격인 ‘국민승리21’의 기획위원장을 맡으며 진보 정당 운동에 발을 담갔다. 노 원내대표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부대표를 역임, 2002년 민노당 사무총장을 거쳐 2004년 ‘민노당 비례대표 8번 후보’로 당선돼 국회에 첫 진입했다.

노 원내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 당시 “50년 쓰던 고기판에 삼겹살을 구우면 까매진다. 이젠 판을 갈아야 한다”는 ‘판갈이론’을 내세우며 ‘어록 스타’로 사회 이목을 끌었다.

그는 이후 진보 정치인으로선 드물게 ‘3선 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2012년 19대 국회의원(노원 병), 2016년 20대 국회의원(창원 성산)으로 당선됐다. 노 원내대표는 20대 국회 입성과 동시에 정의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사망 전까지 역임했다.

노 원내대표는 19대 의원 당선 후 이른바 ‘떡검 검사 명단’ 발표로 9개월 만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대법원은 노 원내대표가 2005년 ‘안기부 X파일’을 입수해 삼성그룹으로부터 금전·향응을 받은 검사 7명 실명을 공개한 것을 두고 2013년 2월14일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의 형을 확정했다.

노 원내대표는 20대 임기 동안 국회의원 특권 폐지 및 소수자 인권 보호에 목소리를 내왔다. 노 원내대표는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 발의자는 총 12명으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은 박주민·서형수·표창원 의원 등 3명 뿐이었다.

▲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7월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노 원내대표는 17대 국회때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그는 17대 임기 동안 대체복무제 도입을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올해 노 원내대표는 성폭력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 무고 수사 및 재판진행을 유예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및 고령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막기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