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재판과 막장 언론의 민낯

[기고] 재판 방청을 통해 본 언론의 소명의식

2018-07-24 15:20       류재민 디트뉴스24 기자 media@mediatoday.co.kr
‘아침드라마=막장’이라는 공식이 있다. ‘막장’이라는 단어 속에서는 불륜과 치정, 반전 등 자극적인 소재가 종합선물세트로 들어 있어 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이런 부류의 아침드라마가 막장이란 비판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재판이 흡사 한편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관련 언론보도에 막장 드라마 필수 요소들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유명 정치인이 연루된 ‘성(性) 스캔들’이다 보니 취재 열기가 뜨거운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활자를 빌린 적나라한 표현이 ‘낯 뜨거울’ 정도였다는 점이다. 재판 중에 나온 선정적‧자극적 내용이 중계되듯 보도됐다. 그러면서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여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 지난 7월13일 오전 수행비서 성폭력 의혹으로 재판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회원들이 ‘증인 역고소’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일, 안 전 지사의 5차 공판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이날은 안 전 지사 부인인 민주원 씨가 오후 증인으로 출석했다. 재판이 열린 서울 서부지법 303호 법정 앞은 아침 일찍부터 방청을 하려는 일반인과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법원은 일반인 30석, 취재진 30석을 선착순 배분했다.

민 씨는 1시간여에 걸친 증언에서 안 전 지사와 피해를 주장하는 고소인 김지은 씨와의 ‘관계’에 치중했다. 성폭력 범죄와 관련해 피고인 아내가 법정에 나와 증언하는 건 이례적이다. 재판부도 민 씨 증언을 판결에 얼마만큼 반영할지 미지수다. 다만 언론은 이날 민 씨의 증언을 그대로 보도해 논란을 부추겼다.

민 씨는 이날 지난해 8월 중국 대사 부부와 충남 보령 상화원 리조트에서 있었던 모임 때 김 씨가 새벽녘 부부 침실에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김 씨가 침실에 들어와 자고 있는 부부를 3~4분간 쳐다보는 내내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 씨는 “나도 그때 왜 가만히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검찰과 재판부는 석연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검찰과 김 씨 측은 침실에 들어간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기자의 눈에 이날 민 씨 증언의 핵심은 당시 김 씨가 안 전 지사 부부 침실에 들어갔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이 부분은 사실 여부에 따라 안 전 지사의 혐의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은 이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김 씨가 남편을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애인을 만나는 여인 같았다”, “땅에 낙서하면서 귀여워 보이려 했다”, “남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등 김 씨 행실을 비판하는 느낌과 묘사 위주로 보도했다. ‘사실적 증언’보다는 김 씨의 사생활이나 행실에 대한 ‘평가적 증언’에 초점을 맞췄다. 이렇다 보니 사건의 본질은 흐려지고, 상황은 ‘여론재판’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언론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재판보도는 이날만은 아니었다. 앞선 공판에서도 증인으로 출석한 안 전 지사의 운전기사가 “김 씨가 서울 호텔을 직접 예약했다”는 증언이 그대로 보도되면서 김 씨 측은 반발했다. 김 씨 측 변호인은 재판부에 “재판 일부만 비공개하다보니 공소사실에서 중요한 진술은 비중이 적고, 일부 조항만 언론에서 여과 없이 왜곡해서 보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언론을 향해 “말 한마디 등에 실린 텍스트 의미보다 전체적인 맥락인 콘텍스트가 중요하다. 이 사안과 관련된 쟁점과 어긋난 자극적인 이야기가 나가면서 위력이나 법리적인 판단과는 다른 쪽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재판은 ‘공개’가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 재판에서 김 씨 측은 ‘2차 피해’를 우려해 증인 신문을 비공개 요청했다. 때문에 김 씨 측 증인들 증언은 보도되지 않은 반면, 안 전 지사 측 증인들의 말은 집중 조명됐다.

증언의 불균형이 이루어졌다면 언론은 형평을 기했어야 했다. 하나의 예로, 상화원 리조트 사건 진술에서 중국 대사 측이 안 전 지사에게 보내 온 “옥상에서 만나자”는 문자메시지를 착신으로 받아본 김 씨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부부 침실 앞에 대기했다는 김 씨 측과 검찰 주장은 대부분 다뤄지지 않았다.

언론은 또 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증명할 상화원 리조트에 대한 현장 취재 노력도 전혀 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검찰과 변호인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은 뒤 그 중 ‘클릭 수’를 높일만한 소위 ‘막장 단어들’만 빼서 경쟁하듯 쏟아낸 식이다.

기사는 드라마가 아니다. 팩트(사실)를 전달해야 한다는 건 ‘초보기자’도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사 데스크는 흥미위주로 편집하고 제목을 뽑았다. 언론 스스로 윤리의식과 공정보도를 포기한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는 나아가 재판을 과장‧왜곡하고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기자로서, 자극적인 내용은 자제하고,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쟁점에 접근한다는 언론의 소명의식을 배운 시간이었다.

▲ 류재민 디트뉴스24 기자
오는 27일 7차 공판으로 안 전 지사에 대한 재판부 심리는 끝날 예정이다. 검찰이 안 전 지사에게 몇 년 형(刑)을 구형하느냐와 그에 따른 재판부 판결만 남았다. 안희정 재판 보도는 막장을 연출했지만, 판결만큼은 공명정대하게 내려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