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하나로 아들·딸의 생사가…

[2017년 언론관련 주요 판결] 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고 간 코멘트부터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례까지

2018-07-26 10:44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미디어오늘이 최근 언론중재위원회가 발간한 ‘2017년도 언론관련 판결 분석보고서’에 언급된 주요 판결 사례 가운데 2017년 확정 판결된 7건의 사건을 추렸다. 언론중재위원회는 매년 언론사 또는 언론인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들을 수집·분석한 보고서를 내고 있다. 언론관련 판결은 언론분쟁의 양상과 추이를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로서 언론계에 유용하다. - 편집자 주

▲ 게티이미지.
1. 언제는 탐정이라고 치켜세우더니 - 2008년 SBS

희대의 조작방송이 있다. SBS는 2008년 9월16일자 ‘긴급출동 SOS24’ 프로그램을 통해 강원도의 한 휴게소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소녀를 감금한 채 찐빵을 팔게 했으며, 제작진이 휴게소 주인을 고발해 구속시키고 소녀를 완치시켜 가정으로 돌려보냈다는 내용을 연속 보도했다. 이 사건은 ‘찐빵소녀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훗날 대법원은 방송이 조작됐다며 SBS에 3억 원의 손해배상판결을 내렸다. 21세기 한국의 언론관련 판결사상 최대금액이다.

방송 당시 사설탐정이던 A씨는 휴게소 주인 쪽 의뢰를 받아 사건을 조사했고 사건이 악의적으로 조작됐다고 밝혔다. 그러자 SBS제작진은 ‘A씨가 일체의 법률적 근거가 없는 탐정을 자칭하면서 방송의 조작설을 무분별하게 유포하고 있다’는 내용의 게시 글을 시청자게시판에 올렸다. 이후 A씨가 명예훼손을 주장했고 재판부는 게시 글의 허위사실 적시 및 악의적 의도 등을 인정해 SBS에 4000만 원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 SBS ‘긴급출동 SOS 24’ 방송 갈무리
재판부는 “SBS가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A씨를 치켜세우면서 탐정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으나 이번에는 방송의 허위조작 실태를 은폐하고 A씨가 정당하게 제기한 조작설의 광범위한 유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에서 (SBS) 스스로 A씨의 조사 활동을 ‘불법탐정’ ‘공무원자격사칭’ 등의 표현을 동원해 비방하며 A씨의 인격적 가치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탐정 A씨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이 사건은 평소 도벽과 거짓말이 능숙해 가족도 외면했던 찐빵소녀를 SBS 방송이 마치 세상물정 모르는 지적장애자가 파렴치한 휴게소 주인에게 4년 간 임금착취와 학대를 당한 것처럼 조작했다.” “제작진이 찐빵소녀를 정신지체 장애자로 몰아가는 것 같다. 방송내용에 의하면 찐빵소녀는 재학 당시에는 정상인이었으나 휴게소 가족의 폭력으로 지적장애자가 되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실제로 SBS제작진은 찐빵소녀 변아무개씨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 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고 간 코멘트 - 2014년 동아일보

2014년 2월24일자 동아일보는 서울시공무원으로 재직했던 탈북자 A씨의 간첩혐의에 대해 보도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1심 형사재판으로 A씨가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상태였지만 A씨를 간첩이라고 단정적으로 지칭한 최초 신고자 B씨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 결국 사법부는 A씨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 동아일보에 정정보도와 함께 1000만 원 손해배상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인용보도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사가 언론중재법 등이 정하는 언론의 공적‧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면제된다고 할 수 없고 형사판결로 간첩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된 상태임에도 정반대로 원고를 간첩이라고 단정적으로 지칭하거나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는 B씨의 발언 등을 그대로 보도한 점”을 문제로 꼽았다.

재판부는 “동아일보가 B씨의 언급이 진실에 부합한다는 점을 조사했거나 적어도 위 언급을 신빙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근거를 확인했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논쟁적 사안이 발생했을 때 취재원의 쿼터에 의지해 소송을 피해갈 순 없다. 특히 한 사람의 삶을 간첩으로 규정짓는 사건이었다면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3. 왜곡보도=반복되는 패소 - 2014년 MBN

MBN은 2014년 9월22일자 메인뉴스에서 ‘마취 환자 방치시킨 위험한 압수·수색’이란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서울 강남 서초경찰서 수사과 경찰들이 수술실에 난입해 수술 중인 환자가 위험한 상태로 방치됐다고 보도했다. 보도내용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보도의 핵심내용 대부분이 허위였다는 사실은 더 충격이었다.

▲ MBN ‘압수수색 하다 전신마취 환자 방취’ 방송 갈무리
재판부는 MBN보도와 달리 “환자에 대한 수술이 진행되던 도중에 경찰이 수술실에 무단 진입했다거나 그로 인해 진행 중인 수술이 중단된 사실은 없고, 환자의 코가 절개된 채 방치된 사실도 없으며 사건 보도에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여성은 그 무렵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가 아니어서 (MBN이)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던 중인 환자처럼 보도한 것은 허위라 할 것이고, 그가 압수·수색으로 인하여 수술이 중단되고 위험한 상태로 방치되었다는 내용도 허위”라고 밝혔다.

당시 보도와 관련해 수사팀 책임자였던 B씨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2016년 정정보도와 함께 7000만 원 배상판결을 받아냈다. 당시 B씨와 함께 수사팀에 있던 A씨 또한 보도로 명예훼손을 입었다며 B씨와 마찬가지로 민사소송에 나서 지난해 1000만 원 배상판결을 받았다.

MBN은 서초경찰서 경찰관으로 표시해 A씨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A씨가 속한 팀(압수수색 참여 경찰관은 5명)에서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은 주변인이나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기사를 보고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명예훼손을 인정했다. 왜곡보도의 결과는 이처럼 반복되는 패소다.

4. 기사 하나로 아들·딸의 생사가… - 2014년 문화일보

2003년 귀순한 A씨는 2014년 당시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해 비공개로 증언했다. 이 무렵 A씨는 북한에 있는 딸과 2014년 경 연락이 닿았는데 북한 보위부 직원들이 A씨 딸에게 “남조선에서 조국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할 경우 너희 남매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아버지에게 전하라”고 위협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A씨는 항소심 재판부에서 자신이 증언한 것을 북한 보위부가 알게 됐다고 알렸다.

문화일보는 2014년 4월1일자에서 과거 북한 공작원이었던 A씨가 재판에서 증언한 사실과 이로 인해 A씨의 딸이 북한 보위부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해당 신문은 A씨의 나이와 성별, 북한에서의 경력, 가족관계 등 인적사항과 증언 사실을 비롯해 북한에 있는 딸이 위험에 처하게 된 사실을 재판부에 탄원했던 사실까지 보도했다.

A씨는 해당 기사로 인해 북한에 있는 자녀의 생명이 위험에 빠졌다며 기사 삭제를 요청했고 문화일보는 기사를 내렸다. 하지만 이미 해당 기사를 참고한 다른 언론사에 의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이후 A씨는 문화일보 보도로 인해 딸과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있다는 사실이 북한에 알려졌고, 실제로 자녀의 생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문화일보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문화일보 보도로 A씨 자녀들의 생사에 중대한 위험이 초래돼 A씨에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이 발생했으나 문화일보 또한 공익적 목적에서 사건을 보도했던 점 등을 고려해 3000만 원 배상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북한에 있는 증언자 가족의 생명, 신체 등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피해의 정도가 중대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보도의 위법성은 조각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5.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예 - 2016년 MBC

MBC는 2016년 9월29일 방송된 ‘리얼스토리 눈’에서 ‘육남매의 상속 다툼, 누가 노모를 모시나’란 제목으로 2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두고 육남매 사이에 다툼이 있다는 내용을 방송에 내보냈다. A씨는 재산을 증여받은 형이 유류분반환청구권 소멸시효기간이 지나자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켜 제보하게 된 ‘현대판 고려장’ 사건인데 애초 제보취지와 달리 방송이 육남매의 상속 다툼으로 사건을 왜곡했고, A씨가 언급하지 않은 ‘구치소’라는 자막을 삽입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과 정정 보도를 요구했다.

▲ MBC ‘리얼스토리 눈’ 방송 갈무리
A씨는 ‘부친의 부동산을 팔아 합의금을 마련했다’는 형의 주장에 반론을 내놓는 과정에서 “동생이 사고 쳐서 들어간 걸 (형이) 자랑이라고 말하던가요? 40년이나 지난 일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아무튼 나쁜 사람이에요”라고 인터뷰했고, 이 과정에서 MBC는 임의로 ‘동생이 사고 쳐서 (구치소) 들어간 걸 자랑이라고 말하던가요?’라는 자막을 삽입했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개인의 과거 형사 구속 여부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로서 당사자의 동의가 없는 상황에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방송사업자가 임의로 제3자에게 공개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국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존재하는 나라다. 재판부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해 MBC에 700만 원 손해배상판결을 내렸다. 정정보도 청구의 경우 보도의 공익성과 상당성을 인정해 기각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6. ‘노룩 취재’의 결말 - 2015년 MBN·서울신문·동아닷컴

MBN·서울신문·동아닷컴은 2015년 10월22일 한 교회에서 ‘두 목사가 서로를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A목사와 B목사가 등장하는데, 사실 A목사는 B목사를 칼로 찌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 없던 해당 매체들은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당시 사건을 묘사해 허위사실을 적시했다.

당시 MBN과 서울신문 등은 해당 사건을 보도하며 “B는 ○○교회 담임목사 A를 흉기로 수차례 찔렀고, A는 B가 들고 있던 흉기를 빼앗아 다시 B를 수차례 찔렀다”고 단정했다. 기사 제목도 ‘목사끼리 벌어진 칼부림 사건’으로 단정적이었다.

▲ 서울신문 온라인 보도 갈무리
그러나 검찰은 사건 당시 녹음내용 등을 근거로 B가 칼로 자해한 것이고 A는 B를 제지했을 뿐 칼로 찌른 적이 없다고 판단하고 A가 B를 칼로 찌른 혐의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이에 A목사가 손해배상을 요구했고 MBN이 400만 원, 서울신문이 100만 원, 동아닷컴이 200만 원을 배상하게 됐다. ‘노룩 취재’의 결말이다.

이 중 동아닷컴은 억울했다. 당시 기사는 민영뉴스통신사 뉴스1으로부터 기사를 제공받아 송고했던 것. 하지만 재판부는 “동아닷컴이 뉴스1으로부터 기사를 전달받아 게재했더라도 마치 동아닷컴 소속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것처럼 보도하면서 스스로 사실 확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허위사실을 적시한 기사를 게재해 A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7. 음주운전과 무면허운전 - 2017년 충청투데이

충청투데이 B기자는 2017년 6월1일자로 ‘서산시의회 A의원, 무면허 운전 적발 물의’란 제목의 기사를 송고했다. 그런데 이 기사는 다음날 편집부 편집으로 ‘서산시의회 A의원 음주운전 물의’로 기사 제목이 바뀐 채 출고됐다. A의원은 무면허 운전으로 단속됐을 뿐 음주운전은 한 적이 없다며 손해배상을 주장했다.

▲ 충청투데이 온라인 보도 갈무리
재판부는 명예훼손을 인정해 300만 원 배상판결을 냈다. 재판부는 “B기자가 진실한 내용으로 기사를 작성해 송고한 사실 등에 비춰볼 때 기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송고 당시까지는 문제가 없는 기사를 썼기 때문에 기자에겐 책임이 없다는 판결로, 결국 이 사건은 회사만 배상액을 물게 됐다.

해당 시의원은 왜 무면허 운전을 했을까. 그는 2016년 7월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됐다. 재판부는 “독자들은 A의원이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된 상태에서 다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것으로 인식할 수 있어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고 판단했다. 충청투데이는 ‘음주운전’을 곧바로 ‘무면허운전’으로 바로잡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