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결정보다 후퇴한 삼성 작업환경보고서 일부 공개”

국민 생명 직결된 노동자 작업 환경 정보공개보다 국가핵심기술 보호가 우선?
산자부 국가핵심기술 판단 ‘측정위치도’ 2010년부터 빠져 “노동자 알권리 침해”

2018-07-28 17:11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삼성전자 등이 고용노동부의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 공개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낸 청구가 일부 받아들여졌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정보일지라도 국가핵심기술로 인정된 삼성의 영업 비밀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측은 그동안 “기업의 이윤이나 국가 경제 발전에 중요한 핵심기술이라 해도 그것이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안전과 건강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며 산업재해 입증을 위해 재해 노동자나 유족이 정보공개 청구를 한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를 촉구해 왔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박은정)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27일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 SDI가 청구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정보공개결정 취소청구’ 사건을 심리한 끝에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일부 인용’은 삼성 측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공동대표(오른쪽)가 지난 2015년 12월22일 방진복을 입고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직업병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노숙농성'을 하던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삼성 측이 정보공개 결정 취소를 청구한 사건은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사업장 △삼성전자 기흥·화성·평택 사업장 △삼성전자 구미·구미2 사업장 △삼성전자 온양 사업장 △삼성SDI 천안 사업장 등으로 총 5건이다.

중앙행심위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정보공개법’상 공개 대상 정보인지에 대해 청구인·피청구인 및 관계인의 의견을 직접 청취한 후 공개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최종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행심위는 “국가핵심기술로 인정된 내용과 그에 준하는 것으로 법인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끼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비공개하고 그 외 나머지는 공개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공개, 비공개 내용은 행정심판 재결서로 당사자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에 반올림 측은 “비공개 정보에 측정위치도가 들어갈지 화학물질명이 들어갈지는 판정 내용을 받아봐야 알 것 같다”면서도 “행심위 결정이 법원 결정보다 후퇴했다는 점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노무사)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난 2월1일 대전고등법원(제1행정부, 부장 허용석) 판결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엔 영업 비밀 사항이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노동자의 생명·신체·건강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는 게 정보공개법상 우선한다고 했다”며 “국가핵심기술이란 논리도 수출하는 사업주가 함부로 정보를 유출하지 말라는 산업 보호적 측면이지 노동자 작업 환경에 대한 내용에 노동자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엔 내용과 취지상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방진복을 입은 모습. 사진=반올림
앞서 반올림에 따르면 대전고법 판결 이후 유족과 대리인이 받아본 2007~2014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작업환경보고서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핵심기술이라고 판단한 ‘측정위치도’가 2010년 이후부터 모두 없었다.

반올림은 “법원은 이미 작업환경보고서상 측정위치도는 ‘공장의 개략적인 도면 위에 유해인자 등의 측정위치를 표시한 것에 불과해 정보공개법이 보호하는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며 “산자부의 국가핵심기술 판단은 측정위치도가 포함된 삼성 보관 보고서에 대한 판단으로, 직업병 피해자들이 고용노동부에 정보공개로 받을 수 있는 보고서와는 전혀 다른 것을 가지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산재 보상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그리고 비슷한 피해를 예방하고 누출이나 화재 등 만일의 사고 시 제대로 대응할 수 있으려면 노동자와 주민 및 관련 기관에 공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정보 접근권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는 영업비밀 주장을 남용하는 기업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권과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조속히 마련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