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고부열전’이 불편하다

[비평] EBS ‘다문화 고부열전’ 이주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강화 우려…작위적인 해피엔딩도 문제

2018-07-30 10:46       이소현 대학생 기자 sohyun@mediatoday.co.kr

EBS ‘다문화 고부열전’이 불편하다. ‘다문화 고부열전’은 다문화 가정에서 일어나는 고부 간 갈등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로 2013년 10월18일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총 248편이 방영됐으며, 목요일 밤 10시45분 EBS 1TV에 편성됐다. 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고부가 ‘역지사지’ 여행을 떠나 갈등의 골을 메워가는 것이 프로그램 제작의도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의 질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과연 교육방송채널에서 제공할 가치가 있는 콘텐츠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방송에서 ‘여성’과 ‘외국인’의 인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2018년 7월19일자 ‘자꾸 소비하고 싶은 며느리, 아껴 쓰라는 시어머니’ 편에서는 오랜만에 외출하는 임신 8개월 차 며느리 응웬티옥짬을 비난한다. 시어머니 이정순 여사는 그녀에게 “‘다녀오겠습니다’ 해야지. 제 멋대로 나가 돌아다녀서 아직 그걸 몰라” 라고 꾸짖는다. 이에 PD가 “(며느리가) 왜 자꾸 나가려고 하는 걸까요?”라 묻자 시어머니는 “돈 쓰고 싶어 그러죠. 신랑이 번 돈으로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려고 나가는 거죠”라 답한다.

▲ 2018년 7월19일자 ‘자꾸 소비하고 싶은 며느리, 아껴 쓰라는 시어머니’ 편의 한 장면.
성우는 “좋은 핑계거리 잡은 며느리 외출을 나섭니다.”, “너무 좋아하네…이렇게 외출을 좋아하니 못 말려 못 말려…”라며 비꼬는 뉘앙스로 혀를 찬다. 방송은 며느리가 살림에 무책임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과소비하는 습관을 문제 삼는다. 며느리의 잘못된 부분을 객관적으로 지적할 순 있지만, 모욕적인 발언을 일삼으며 며느리를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는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2018년 7월19일자 ‘섬마을 형제와 결혼한 자매, 속 터지고 안쓰러운 시어머니’ 편에 등장하는 캄보디아 출신 텟 마니의 남편은 외딴 섬에서 종일 집안일과 육아에만 전념하는 아내를 뒤로 한 채 당구장을 찾는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텟 마니가 왜 애기를 같이 돌보지 않느냐고 묻자 “애? 애는 당신이 봐야지”, “애 봐서 허리가 아파?”라고 무심하게 답한다. 이처럼 방송에서는 육아와 모든 집안일을 여성만이 전담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시각이 자주 비춰지지만 이에 대한 지적은 찾기 어렵다.

‘고부열전’은 시청자들에게 다문화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 줄 우려도 있다. 2018년 6월28일 ‘잘 웃던 며느리 시어머니 눈치 보는 사연은?’ 편에서 시어머니는 베트남 며느리 김보리씨의 ‘위생’ 문제를 지나치게 지적한다. 김 여사는 “어제 샤워를 했냐”며 며느리를 혼내고 며느리가 목욕할 날짜를 달력에 표시해 두기까지 한다.

▲ 2018년 6월28일 ‘잘 웃던 며느리 시어머니 눈치 보는 사연은?’ 편의 한 장면.
며느리가 등을 긁적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성우는 ‘또 긁어 또 긁어 시어머니가 좋게 볼 리가 없지’라고 말한다. 대부분 방송에서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원인을 이주여성에게 두고 이들은 ‘고집 있거나’ 또는 ‘비위생적’으로 묘사한다. ‘여성’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방송 행태를 납득하긴 어렵다.

특히 지난 2017년 11월16일자 ‘며느리의 결혼조건 때문에 괴로운 시어머니’편은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논란이 불거졌다. 방송에는 베트남에서 시집온 탄니(21)씨와 남편 이유성(38)씨와의 결혼을 둘러싼 사연이 담겼다. 당시 탄니의 결혼 조건은 ‘매달 부모님에게 부칠 용돈을 줄 것’, ‘처갓집을 새로 지어줄 것’, ‘한국에서 대학을 보내줄 것’이었고, 당시 이 결혼이 효도라 여겼던 18살 탄니는 한국에 왔다.

하지만 집안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무심한 태도를 일관했고 자기 힘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겠다는 그녀의 의견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사기 결혼 아니냐”, “미성년자를 데려와 노예 취급하는 것 아니냐”, “국제결혼을 너무 가볍게 다루고 있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EBS 홈페이지에는 해당 편이 삭제된 상태다.

▲ 2017년 11월16일자 ‘며느리의 결혼조건 때문에 괴로운 시어머니’편의 한 장면.
방송이 주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고부 관계 개선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는 때로 감동과 재미를 준다. 많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속마음을 털고 서로를 잘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문화와 언어 차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훈훈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방송의 작위적인 흐름에 문제가 적지 않다. 방송패턴은 대부분 동일하다. 전반부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을 극적으로 몰아가고,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며느리가 살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또 한 번의 갈등을 겪지만 후반부에서는 둘 만의 시간을 가지며 서로를 이해했다고 다독인다. 초반에 고부 관계를 극적인 갈등 상황으로 몰아가다가 ‘여행’, ‘둘 만의 시간’, ‘몇 마디 대화’로 갈등을 해소했다고 마무리 짓는 흐름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올 법 하다. ‘소통’과 ‘문화’에 차이를 둔 이들에게는 작위적인 문제해결이 아닌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절실하다.

EBS ‘고부열전’ 시청자 임정미(52)씨는 “이웃에 다문화 가정이 많은데 TV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갈등만 겪으며 살고 있지는 않다. 너무 갈등을 조장하고 가족구성원끼리 반목을 극대화해 드라마틱한 화해를 조장하는 뻔 한 스토리 전개가 식상하다”고 말했다. ‘고부열전’ 시청자 게시판에도 “고부열전의 취지가 다문화 며느리가 참고 희생하고 인내하고 본인의 의사표현은 묵살당해도 마무리만 잘되면 해피엔딩인 프로였나”와 같은 비판적 의견이 눈에 띈다.

‘고부열전’이 ‘올바른 교육 방송’, ‘다문화 시대 흐름에 발맞춘 콘텐츠’로서 가치를 지닌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방송의 구성방식과 내용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다른 문화권에 사는 이들이 겪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 진심을 나누는 과정을 보여줘 시청자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