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노회찬

[원성윤 칼럼]

2018-08-01 13:36       원성윤 더 좋은 문호리책방 사장·전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 media@mediatoday.co.kr

새벽 0시 25분, 종로 1가. 해산 작전이 시작됐다. 경찰이 방패로 아스팔트를 ‘쿵쿵’ 치기 시작했다. 1000여 명의 시민은 인도 위로 도망치듯 올라왔다. 토끼몰이였다. 도로에는 노회찬과 심상정이 있었다. “의원님들은 저희가 소중히 모시겠습니다” 경찰의 따스한 말이 건네지자 “의원만 사람이고 우리는 사람도 아니냐”는 차가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노·심은 팔로 서로를 묶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의원님들 힘내세요, 의원님들 멋집니다”라는 찬사가 날아왔다. 2008년 6월30일, 노회찬을 처음 만난 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로 뜨겁던 아스팔트 위였다.

문재인을 만났다. 이명박 정부 실정이 쌓이고 있던 때였다. 노 대통령이 타계한 뒤 그는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노무현 재단 이사장인 그에게 ‘지금도 종종 노 대통령을 생각하냐’ 물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노 대통령이 수사받을 때만 해도 절망적인 상황처럼 보였어요. 진보 개혁세력이 숨도 못 쉴 것 같았죠. (중략) 결국 그 바탕은 노 대통령이 목숨을 던진 데서 온 것입니다. 소중한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게 책임을 다하는 거겠죠.” (기자협회보 2011년 11월30일)

월요일 아침, 고인이 잠든 마석 모란공원에 들렀다. 추모객의 발길은 여기서도 끊이지 않았다. 묘지를 감싼 검은 천막이 아늑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생전 선글라스가 단 하나였던 고인에게 바친 블루 코팅 스포츠 고글도 올려졌다. 초록색 소주와 백화 수복, 쨍한 파란색 캔맥주, 흰색과 노란색 헌화용 생화들이 묘를 장식했다. 쇠라의 점묘화처럼 촘촘하게 그의 곁을 배웅했다. 그를 중심으로 주변 묘지 비석엔 ‘해고’ ‘파업’이란 단어로 점철된 치열했던 단어가 나열돼 있었다. 민주열사 묘역에 묻힌 고인의 묘엔 아직 비석이 없었다.

▲ 7월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추모객들이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을 추모하는 액자를 묘소 앞에 두고 있다. ⓒ 연합뉴스
그는 이승을 떠나던 날 국회에 도착했지만 갑자기 동생 집으로 차를 돌려달라고 했다. 45세에 암으로 떠난 진보신당 정책위 의장 이재영, 같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촛불 의인’ 수의사 박상표, 35살에 떠난 노동당 부대표 박은지. 최근 수년간 진보 정치의 과제를 남기고 떠난 동지들 곁으로 가겠다 결심했다.

노회찬은 지난 4월17일 JTBC 미공개 인터뷰에서 ‘10년 이내에 정의당 출신 대통령이 나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10년 이내는 돼야죠. 다음 선거나 그다음 선거, 그게 정당의 임무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우리 등 너머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역사는 산 자가 유지를 받들어 채워진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그러했듯, 노회찬의 친구 심상정 그리고 정의당이 진보정치의 페이지를 써 내려 갈 차례다.